▲ 한 펌프카 노동자가 콘크리트를 쏟아붓기 직전 지하의 작업자들과 의사를 주고받고 있다. 펌프카 노동자들은 하루 15시간 내외로 일한다. 차고지가 멀 경우 새벽 3~4시에 집을 나서야 한다. 정기훈 기자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노동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건설기계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혹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노무 제공의 종속성이 약하고, 고가의 건설기계를 보유했다는 이유에서다. 고용상 지위는 사장님에 가깝다. 그런데 평범한 노동자들보다 더 오래 일하고, 쉽게 임금을 떼인다. 다쳐서 죽거나 생계가 끊어져도 하소연할 곳 하나 없다.

일요일이 뭔가요, 쉬는 날인가요?

열아홉 살 때부터 크롤러크레인을 운전한 조아무개(38)씨. 지난해 여름 충남 서산에 있는 건설현장에서 집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왔다가 날벼락 같은 얘기를 들었다. 그를 본 아내는 대뜸 "이혼하자"고 했다. 갓 돌이 넘은 핏덩이 같은 아이를 두고 석 달 동안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억울했죠. 먼 타지에서 쉴 새 없이 일한 죄밖에 없는데….”

조씨가 소속된 부산지역의 건설기계 임대업체에는 정해진 휴식일이 없다. 비가 오면 그날만 쉰다. 전국의 크롤러크레인은 부산·울산·여수·인천 등 항만지역에 몰려 있다. 내륙 깊은 곳에서 공사를 하려면 크롤러크레인 기사들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 한두 달씩 집을 비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4년 전 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 크레인지회가 결성되면서 그나마 격주 일요일을 쉬는 업체가 하나둘 생겨났다. 하지만 조씨가 속한 업체는 예외다. 그는 “주 5일제, 주 40시간 얘기를 들으면 딴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고 했다.

“막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선배들이 '애들이 얼굴 몰라봐도 각오하라'고 했어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이제야 알겠네요.”

현재 조씨는 강원도 평창에서 일하고 있다. 10건의 일을 맡으면 8~9건은 먼 타지에서의 일이다.

시키는 대로 일하다 죽고 다쳐도…

대책 없이 긴 장시간 노동도 건설기계 노동자들을 괴롭힌다. 경기도 지역에서 7년째 펌프카를 운전하고 있는 장아무개(40)씨는 “지금 11살인 딸이 3~4년 전에 엄마한테 내가 형사인 줄 알았다고 했다더라”며 씁쓸해했다.

장씨의 출근시간은 오전 6시30분이다. 그런데 펌프카와 같은 대형 건설기계는 건설현장에 멀리 떨어진 별도의 차고지에 세워 놓는 경우가 많다.

“운이 없어 차고지도 멀고 공사현장도 멀 경우 출근시간만 3시간 이상 걸려요. 펌프카는 속도제한까지 있습니다. 수시로 야근을 하다 보니 보통 집에 오면 자정이 넘어요. 서너 시간 후면 집에서 나가야 하니까 딸이 오해할 만도 하죠.”

쉴 틈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도 몸을 다치면 다시 '사장님'으로 돌변하는 이들이 건설기계 노동자다.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건설현장 건설기계 관련 사고현황'을 보면 2011년 한 해 137명의 건설기계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했다. 부상자를 더하면 2천12명이다.

노동계는 한 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4분의 1 가량이 건설기계 작동 중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회적으로 이들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없다.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이들에게 산재는 재기불능의 나락을 뜻한다. 24년 경력의 덤프트럭 노동자 전아무개(57)씨가 그런 케이스다. 전씨는 지난해 롯데건설이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에서 진행하는 군부대 시설공사에 참여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했다.

산재보험·근로기준법 등
적용 안 되는 자영업자로 분류


표준임대차계약은 유명무실


1개월 계약을 맺은 그에에게 주어진 일은 섬에 도착한 콘크리트 골재를 실어 나르는 일이었다. 6월의 어느 날, 전씨는 섬 북단에 위치한 레미콘 공장으로 모래를 싣고 가고 있었다. 내리막을 달리던 중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덤프트럭과 함께 언덕 아래로 굴렀다. 의사는 척추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진단을 내렸다. 사고를 당한 지 10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전씨는 아직도 병원에 누워 있다. 일을 맡긴 하청업체가 지난해 연말까지는 치료비를 부담했지만 이후에는 그의 몫이 됐다. 2천만원이 들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병상을 지킨다. 간병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1급 장애자가 됐습니다. 평생 하던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된 거죠. 아픈 것은 둘째 치고, 어떻게 식구들을 먹여 살릴지 걱정입니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사업증이 있다고 산재처리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건설노동자들의 퇴직금에 해당하는 퇴직공제부금이라도 지급됐다면 상황은 조금 나았겠지만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예외다.

건설기계 임금은 털고 남으면 주는 돈?

노동부가 집계한 산업별 체불현황에 따르면 전체 산업의 체불액은 2010년 1조1천629억원에서 2012년 1조1천771억원으로 별 차이가 없다. 같은 기간 건설업 체불은 1천463억원에서 2천451억원으로 급증했다. 건설업에서만 체불이 증가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떼인 돈은 아예 빠져 있다. 현행법상 이들이 일하고 받지 못한 돈은 체불임금이 아닌 채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37년차 굴삭기 조종사인 봉아무개(56)씨는 지난해 10월 여수시가 발주한 관기-거석 간 도로공사 현장에서 두 달 반 동안 일했다. 그에게 일을 맡긴 ㄱ건설은 작업이 끝난 지 4개월이 지나도록 일한 대가 1천500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전문건설업체가 난립하면서 여러 현장에 동시에 참여하는 건설회사가 많아진 탓이다. 원청으로부터 공사 진행 상황에 따라 지급되는 기성금이 제대로 내려와도 다른 현장 운영자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원청에서는 이미 장비대를 지급했다고 해서 ㄱ건설에 달라고 얘기하니 이미 다른 현장에서 썼다고 하더라고요."

봉씨가 일했던 곳에서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임금도 밀려 있었다. 이들까지 항의에 나서자 ㄱ건설은 어디선가 자금을 끌어와 밀린 임금을 정산했다. 그러나 봉씨와 같은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지급대상에서 제외됐다.

“현장에서 망치를 쓰면 노동자고 기계를 쓰면 사장인가요? 건설기계 노동자들 임금은 쓰고 남으면 주는 돈인가요?”

건설노조가 건설경제연구소에 의뢰해 조합원 1천539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해 6월 발표한 ‘건설기계 실태조사 및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굴삭기 조종사 4명 중 3명이 임금체불을 겪었다고 답했다. 최근 3년간 이들이 받지 못한 임금은 대당 평균 1천480만원이었다. 등록대수(9만1천600여대)를 통해 전체 체불규모를 추정해 보면 무려 1조3천556억원에 달한다. 2012년 전체 산업 체불규모(1조1천771억원)보다 크다.

'단가 후려치기' 풍랑 속 살아남기

낮은 임대료도 문제다. 정부가 자가용 건설기계는 등록제한을 두지 않다 보니 수급생태계가 깨진 지 오래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건설사들의 단가 후려치기다. 노조 산하 전국 14개 건설기계지부들은 지역별 상황에 맞게 적정단가를 정한다. 그런 가운데 최근 건설기계 등록대수가 크게 늘면서 지역별로 형성돼 있는 단가 가이드라인을 깨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강원도 지역에서는 3년 전부터 15톤 덤프트럭 50만원·굴삭기 55만원으로 임대단가가 정해져 있다. 대다수 건설사들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임대료를 정한다.

그런데 지난해 8월부터 춘천지역 관광단지인 ‘무릉도원’ 조성공사에 나선 코오롱글로벌은 15톤 덤프트럭의 하루 운임을 36만원으로 매겼다. 노조 강원도건설기계지부가 본사 상경투쟁 등으로 강하게 반발하자 그제야 코오롱글로벌은 노조와 교섭을 갖고 단가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전라남도 목포지역의 경우 25톤 덤프트럭 하루 단가는 36만원(하루 8시간)이다. 하지만 올해 1월 포스코건설은 목포시가 발주한 대양일반산업단지 조성공사 토목공사를 진행하며 단가를 하루 10시간 24만원으로 책정했다. 노조 광주전남건설기계지부는 공사현장 봉쇄투쟁 등으로 항의했다. 지난달 27일 포스코건설과 목포시 등이 참여한 가운데 교섭을 갖고 우선 하루 8시간 노동에 합의했다. 임대단가는 추후 조정할 예정이다.

장옥기 지부장은 “적정단가는 지역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오랜 기간 투쟁으로 쌓아 올린 것”이라며 “한번 허물어지면 지역 노동조건을 동반 하락시키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 내겠다”고 말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고충에 정부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제도적인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8년 건설기계 표준임대차계약서를 도입했다. 여기에는 △하루 근무시간(8시간) △임금지급 기한(60일 이내) △근로기준법에 근거한 초과수당 지급이 명시돼 있다.

현장 실태는 딴판이다. ‘건설기계 실태조사 및 분석’ 보고서를 보면 “표준임대차계약서를 대부분 작성하며 효력이 있다”고 답한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26.9%에 불과했다. 벌칙조항이 없어 하청업체가 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건설기계 대여금 지급보증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처벌 조항(영업정지 2개월·과태료 2천만원)이 있는데도 허술한 관리·감독 탓에 지키는 곳이 거의 없다.

표준임대차계약서 쓰면 뭐 하나 …직영 늘려야

노조 경남건설기계지부는 1월 말 설날을 앞두고 20여곳의 지역 내 공공공사 현장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공공공사였음에도 지급보증제를 지키는 현장은 단 2곳에 그쳤다.

유정자 지부 총무부장은 “현장점검을 전혀 하지 않아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황”이라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건설기계 노동자가 직접 자신을 고용한 업체를 지자체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건설경제과 관계자는 “초창기라 이행하는 곳이 드물지만 건설업체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어 조만간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인력부족으로 그동안 현장점검이 어려웠지만 상반기 중 실태조사와 함께 후속조치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청의 책임범위를 넓히는 것이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원청에서 일하는 직영 건설기계 노동자가 늘수록 산재나 체불임금 등으로 인한 고통이 줄 것이란 설명이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 소장은 “생산수단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에게 당장 산재보험부터 적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민적인 공감대도 부족하고 법 개정 과정도 복잡하다”며 “50억원 미만 공사에 일정비율 적용되는 원청의 직접시공 의무를 100억원으로 늘리는 식의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정 임대단가 들여다보니…

"하루 50만원 넘게 버니 좋겠다고요?"



"에휴, 모르는 소리 마세요."

권혁병 노조 강원도건설기계지부장이 지부가 요구하고 있는 건설기계 적정 임대단가를 설명하며 내뱉은 말이다.

그의 얘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건설기계 월평균 가동률을 알아야 한다. 지난해 건설경제연구소의 '건설기계 실태조사 및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덤프트럭 노동자들의 최근 3개월(2~4월) 월평균 가동률은 35.7%다. 한 달 10일 안팎으로 일한다는 의미다.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하면 기름값만 20만원 이상이 고정적으로 지출된다. 차량 보험료·타이어 교체비 등 고정비용과 고장이 날 때마다 발생하는 수리비, 감가상각비를 계산하면 하루 일해 10만원 남기기도 어렵다. 여기에 매달 대당 1억원이 넘는 기계 할부금이 빠져나간다. 강원도지역의 경우 전국 최고 수준의 임대단가가 형성돼 있는데도 한 달 순수입이 160만원을 넘기면 덤프트럭 운전자 중 고수입자로 분류된다. 실제 건설노조가 덤프트럭 운전사 8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최근 3년간 연평균 수입은 1천713만원에 불과했다.

권 지부장은 “매년 건설기계 대수가 늘고 사용자들이 싼값에 부릴 수 있는 비조합원들을 고용하는 바람에 지역 적정단가를 지키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며 “장마철 같은 비수기에도 밀린 기름값이나 기계 할부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심지어 노숙자가 된 조합원도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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