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편집자>

우리나라 주요 규제의 원조는 박정희 대통령

최근 대통령이 주제하는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7시간 넘게 진행됐다. 경제 5단체와 중소기업인·자영업자를 비롯한 민간부문 60명과 정부 부처 관계자 등 160여명이 참석했다. 방송 3사가 생중계하는 등 규제개혁이 국정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한민국의 발전이 정부의 각종 규제 때문에 가로막혀 있고, 기업들은 각종 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하고 있으며, 국민의 어려운 삶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 때문이라고 몰아가면서, 규제만 완화하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처럼 논의가 모였다.

물론 일부 부처 공무원들이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때문에 불필요한 규제를 만든 측면도 있다. 제정할 당시에는 필요했지만 기술의 발전이나 사회 변화에 부응하지 않게 된 규제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규제의 담당자인 공무원이 국민의 적이 아니듯이, 규제의 본말인 ‘규칙과 제도’는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이 아니다. 무질서한 시장에서 국민을 지키고, 약육강식을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공정한 경쟁을 위한 룰을 만들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규제 대부분은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돼 전두환·노태우 정부 시기에 완성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의 업적과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대도시의 일정 비율을 그린벨트로 묶어 과도한 난개발을 억제하고 도시의 녹지 비율을 보장하도록 한 그린벨트 관련 규제는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수도권의 과잉 인구집중을 막고 지방의 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해 국토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도록 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은 2003년 법으로 제정됐지만, 관련 정책의 원조는 박정희 대통령 시기에 시작됐다.

20년간 진행된 규제완화, 효과가 있었나?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김영삼 정부 시기에 관치금융과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을 지양하고, 세계화를 위해 도입된 금융자유화와 외환자유화 등의 규제완화 정책은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어렵게 이룩한 경제를 파탄내고 전 국민의 삶을 나락으로 내몰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금융지원의 조건으로 대대적인 규제완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정부 상설기구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규제 총량제 등 다양한 형태의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했다. 참여정부 때도 규제완화 정책은 계속됐다.

그런데 규제개혁과 완화를 국정과제로 삼아 지속적으로 추진한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재벌대기업의 투자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과 수출 증가를 기록했지만 국민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했다.

기업 프렌들리를 표방하면서 ‘전봇대 뽑기’로 상징되는 규제완화의 정점은 이명박 정부 시기였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92조원에 달하는 부자감세를 추진했다.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문어발식 기업 확장으로 재벌 대기업 소속 기업들의 숫자는 두 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청년실업은 심화되고 비정규직만 더 늘어났으며 내수는 지속적으로 침체됐다. 따라서 우리 국민은 규제완화 정책의 한계를 지난 20여년 동안 처절하게 체감했다. 신자유주의적인 규제완화는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충분히 학습한 것이다.

국민은 규제완화 선택하지 않아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술을 가진 우리나라가 불필요한(?) 의료법상 규제 때문에 이를 활용한 원격의료를 활성화하지 못해 기업의 투자가 저해되고, 경제성장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원격의료제도를 도입하려는 논리다.

병원이 영리자법인 설립을 통해 투자를 유치해 호텔도 경영하고, 외국인 환자들을 자유롭게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성장 동력이고 창조경제가 된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의료 민영화를 규제완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의 철학이다. 영종도에 대규모 카지노를 허용하면 외국자본들이 들어와 호텔과 리조트를 짓고, 외국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투자가 활성화되고 관광산업이 육성된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의료 영리화가 아닌 의료 보장성 확대를 주문했다. 투표한 3천만명의 유권자들은 규제완화가 아니라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재벌 대기업의 전횡을 막는 경제민주화를 선택했다. 실제로 5년에 한 번씩 이뤼지는 국민투표 격인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 후보 모두 규제완화와 감세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국가 정책이 국민의 선택이었고, 주요 대선후보의 공약으로 확정됐다. 물론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기초연금이나 3대 비급여를 포함해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장하겠다는 내용의 각종 공약이 과감하게 축소·왜곡되는 시점에 지난 대선 때의 약속을 언급하는 것이 쓸데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감세나 기업들만을 위한 규제완화를 국정의 중심으로 몰고 가는 것이 지난 선거에서 국민의 뜻이었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선거 때는 중요하지 않았다가 선거가 끝나니 상황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본래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이 원하는 복지국가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인지 이제는 답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의료 민영화는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

원격의료가 국민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의료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가 실제로 고용을 창출하고 국민의 건강을 보장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러한 것을 못하게 하는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선진국 어디에서도 원격의료를 국가정책으로 추진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오히려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기관을 공공화하고 의료보장을 국가가 책임지고 있다.

전체 국가 GDP의 17%를 의료비로 지출하는 미국보다 평균 8~9%를 지출하는 유럽 나라들의 평균수명이 훨씬 길고, 영아 사망률이나 만성질병 발병률이 현격하게 낮다는 통계들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준다.

각종 보건의료 규제를 완화하는 미국보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공공지출을 늘린 유럽의 나라들이 보건의료부문 고용률이 더 높고 인구 대비 종사자 숫자도 더 많다. 심지어 국민의 건강과 관련한 각종 규제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독일이나 스웨덴은 세계적인 표준을 선도하면서 의약품이나 각종 의료기기부문에서 중심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의료 공공성 강화만이 정답이다

불필요한 규제는 줄여 나가야 한다. 또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정부의 역할 미비와 공공부문의 과소다. 우리나라는 보건의료부문 종사자 숫자가 환자 대비로나 인구 대비로 모두 OECD 평균의 30%에 불과하다.

보건의료부문에서는 양질의 고용창출이 가능하다. 일자리를 만들 충분한 여력이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고 의료수가가 낮으니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인력조차 제대로 고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 종사자들이 힘들게 일하는데도, 의료이용에 대한 국민의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 국민의 70%가 민간보험에 가입해 있고, 연간 22조원에서 28조원에 이르는 비용이 민간보험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 하지만 민간 보험회사들은 일용직이나 계약직인 보험판매원과 설계사들을 양산할 뿐이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전문인력을 더 고용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나아지게 하지도 못하고,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낮춰 주지도 못한다.

규제를 암 덩어리로 인식하고 규제의 당사자인 공무원을 적으로 규정해서 국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규제완화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 대한 재벌 대기업들의 억압과 시장지배를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정부의 직무유기와 역할 방기를 허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보건의료부문도 마찬가지다.

이미 민간부문 과잉으로 90%가 넘는 민간의료의 비효율성과 공공부문의 과부족이 문제이지, 의료 민영화와 영리화가 부족해 국민이 건강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보건의료부문의 고용을 늘리고 헬스 관련 산업을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원격의료가 아니라 의료의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영리의료법인 자회사의 설립이 아니라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것이 정답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실체가 없는 규제와의 전쟁이 아니다. 각종 분야에서 공공성을 높이고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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