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람 기자

“이러다가 삼성이 조만간 갤럭시 헬스 내놓는 거 아니에요?”

지난해 연말 정부가 원격의료 추진을 예고했을 무렵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유지현) 관계자들과 나눈 농담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얘기지만 몇몇은 웃음을 터뜨렸다. "당장은 아니겠지" 혹은 "대놓고 그럴리가" 하는 심리적 거리감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 교묘한 방식으로 말이다. 지난 17일 대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와 6개월 시범사업 후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내용의 의정협의안을 마련했다. 전국의 병원이 문을 닫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협의 과정에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덕분에 한참 맞아야(?) 할 매를 덜 맞은 곳이 있다. 바로 식품의약품안전처다. 식약처는 같은날 운동·레저를 목적으로 한 심맥박수 측정기기를 의료기기와 구분하는 내용의 ‘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의료기기법(2조)에 따르면 “질병을 진단·치료·경감·처치 또는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은 모두 의료기기다. 식약처가 2003년 의료기기법을 제정한 뒤 변함이 없던 의료기기 정의를 난데없이 손보려는 이유는 뭘까.

이와 관련해 다음달 출시를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5를 겨냥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갤럭시5에는 세계 최초로 심박측정 센서가 탑재된다.

식약처가 규정을 바꿔 주면 갤럭시5는 보통의 전자제품으로 둔갑해 번거로운 절차 없이 예정일에 맞춰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의료기기라면 의료기기 제조허가를 비롯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하필이면 의정협의에 관심이 몰린 날 규정 개정을 예고한 것은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식약처가 간과한 것이 있다.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원격의료에 목을 매는 이유를 간파하고 있다. 삼성에게 차세대 먹거리를 주기 위한 사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의사협회가 사실상 원격의료를 수용하기로 한 날 심박측정 센서를 단 갤럭시5가 규제의 틀을 벗어던지게 된 것이다. 정부가 "삼성을 위한 원격의료"라는 강력한 상징을 스스로 만든 셈이다.

‘원격의료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정책 바로알기’라는 사이트를 방문하면 보건복지부는 10문10답 코너를 통해 “고가의 장비 없이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시된 스마트폰으로는 복지부가 원격의료를 위한 자가측정 영역으로 제시한 혈액·소변·심전도 검사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제 갤럭시5에 심박측정 센서가 달리면 갤럭시6에는 혈액·소변 검사기능을 넣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스갯소리로 떠돌던 '갤럭시 헬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삼성을 위한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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