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버스공영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가운 일이다. 진보진영은 수십 년간 버스공영제를 요구해 왔다. 시민들의 평등한 버스 이용권과 버스 지원 세금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버스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버스산업은 다른 산업과 비교해 비효율성이 도드라지는 산업이다. 공공성을 위해 수익성을 훼손해서가 아니다. 수익이 나는 노선에서는 지나친 증차로 손해 보고, 벽지 노선에서는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으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감차를 해서 공공성을 훼손하는, 수익성과 공공성 모두를 놓치는 비효율성이 문제인 산업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무엇보다 제도의 후진성을 들 수 있다. 버스산업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근거하고 있는데, 버스사업자들의 로비로 인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상태다. 대표적인 것이 노선에 대한 소유권 부분이다. 버스노선은 광역시·도나 국토교통부가 계획하고 관할하면서도 정작 소유권에 대한 규정이 없다. 버스사업자들이 노선을 사유화해 심지어 매매까지 하는 실정이다.

버스노선에 대한 사업자들의 무단점유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법률적 근거가 없는 가장 독특한 재산권으로 보인다. 이런 기형적 구조에 대해 수차례 법률 개정 논의가 있어 왔다. 하지만 개정안은 번번이 폐기됐다. 전형적인 토호형 자본가인 버스사업주들이 지역 의원들에게 어떤 로비를 했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제도적 허점이 있다 보니 황당한 일들이 많다. 서울시의 예를 한 번 보자. 서울시는 2004년부터 기준을 정해 민간 버스사업자들의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해 주는 준공영제를 시행 중이다. 서울시는 1년에 3천억원 정도를 민간 버스사업자들에게 지원한다. 버스요금 인상을 억제하고 적자노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제 이 돈은 공공성 비용이라기보다 버스사업자들의 잇속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시가 적자를 보전해 주니까 쓸데없이 증차를 해서 의도적으로 적자를 만들기도 한다. 복수의 업체가 비슷한 노선을 운영하면서도 감차를 하지 않고 빈 차로 운행하기도 한다.

서울시가 노선을 조정하거나 감차를 할 요량이면 노선은 재산권이라고 반발한다. 서울시가 준공영제를 실시할 때도 민간사업자들은 각종 특권을 요구했다. 노선이 사유재산이니 자신들이 버티면 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란 자신감 때문이었다. 준공영제 시행을 앞두고는 버스사업자들이 친인척 명의로 버스회사를 세운 후 공익성도 효용성도 없는 노선을 마구 만들기도 했다. 어차피 시가 세금으로 보전해 줄 것이니 우선 만들면 돈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들 생각대로 실제 그렇게 됐다.

준공영제를 시행하지 않더라도 지자체들은 지역의 버스회사들에 대해 재정보조금·벽지노선지원금·유가보조금 등 각종 항목으로 지원을 한다. 지역에서 보통 20~30년 넘게 버스사업을 해 온 사업주들은 지역 정치인들을 후원한다. 재작년에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떠들썩했던 전주 시내버스 사례는 극단적이다. 민주버스노조의 증언에 따르면 전주 시내버스 사업주들은 버스의 운임 현금통을 아예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 횡령을 밥 먹듯이 했다. 회삿돈을 제 돈처럼 빼 쓰면서도 매년 적자타령을 했고, 시로부터 100억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았다.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도 이들 버스회사들은 지자체나 시의회로부터 어떤 감사도 받지 않았다.

버스산업 사업주들은 법률관계가 불분명한 노선에 대한 재산권과 정경유착을 무기로, 시민 세금을 제 돈처럼 써 가며, 버스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수십 년간 기득권을 누렸다.

버스공영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추악한 담합을 해체시킬 힘이 있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보면 공영제가 민영제보다 비용이 더 들어갈 이유가 없다. 비용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사업자들이 돈을 못 빼돌리게 만든 다음 중복과잉투자로 인한 낭비를 줄이면 된다. 그럴 경우 버스 공공성을 높여도 오히려 운영비가 낮아질 것이라는 게 버스산업 구조를 아는 사람들의 대체적 평가다.

공영제는 사업적으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힘이다. 버스사업주들이나, 이들에게서 로비를 받는 정치인들은 사활을 걸고 공영제를 막으려 할 것이다. 버스노선에 대한 재산권을 근거로 자본이 파업을 벌일 수도 있다.

최근 지자체에 지원금을 올려 달라며 10곳의 노선에 2주 가까이 버스 투입을 중단한 파주 버스업체들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공영제는 이런 버스사업주들에게서 노선을 빼앗아 와야 한다. 차량도 적정가격에 인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논리’가 아니라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들이 버스공영제를 주장하려면 누구와 함께 공영제를 추진할 것인지, 어떻게 사회적·정치적 힘을 마련할 것인지에 관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필자 생각에 지금까지 공영제에 관한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오랫동안 이를 대안으로 주장해 온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협의회일 것 같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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