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 오후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이정훈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이 농성 중인 옥천나들목 광고탑에 대형 희망천을 연결하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윤성희 기자

파란 봄하늘을 등지고 선 사내는 연방 손을 흔들었다. 손이 흔들리는 방향으로 깃발도 같이 나부꼈다. 완연한 봄이었던 지난 15일 오후 서울·인천 등 전국 곳곳에서 희망버스 97대가 출발했다. 이날 버스에 탑승한 3천500여명의 참가자들은 이정훈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이 154일째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충북 옥천군 옥천IC 인근 광고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힘내라 이정훈”, “힘내라 민주노조”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정훈 지회장은 부당노동행위 의혹을 받고 있는 유성기업 특검과 유시영 유성기업 사장과 관계자 처벌을 요구하며 154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그는 희망버스가 유성기업에 오길 남몰래 기다렸다. 희망버스가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울산에 갔을 때도, 밀양 송전탑 건설 중단을 요구하며 밀양을 찾았을 때도 이 지회장과 유성기업 조합원은 언젠가 유성기업으로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고 했다.

높이 22미터 광고탑 꼭대기에 합판 4개를 덧대어 만든 2평 남짓한 고공농성장에서 이 지회장은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농성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 이후 하루 3번 농성장으로 올라가는 보온도시락의 식사량을 반으로 줄였다. 식사량이 많아지면 대·소변 양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3천500여명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고공농성장 주변을 에워쌌다. 이 지회장은 “승객 한 명 한 명 농성장 근처로 올 때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가슴 벅차 했다. 이어 “유성기업 특검과 유시영 사장을 비롯한 부당노동행위 당사자들이 처벌을 받을 때까지 이 자리에서 죽든가 살든가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은 동료와 잠은 가족과 … 노동자 권리로 만들겠다”

유성 희망버스는 버스마다 다른 꿈을 싣고 달렸다. 희망버스 2호차는 민영화 반대, 5호차는 심야노동 철폐, 6호차는 손배·가압류 없는 세상 만들기를 주제로 정했다. 5호차에 탑승한 권순만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일은 동료와 하고, 밤에는 가족과 함께 잠을 자는 것은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돼야 한다”며 “유성으로 가는 희망버스가 그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순석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 조합원은 “심야노동을 하면 수명이 13년 단축된다는 말이 있는데 유성기업에서는 99년부터 2011년까지 7명의 노동자가 자살과 과로사로 사망했다”며 “퇴근버스를 타고 가는 노동자가 깨어나지 못 하는 현실을 바꿔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참가자들은 고공농성장에 도착한 직후 집회를 열었다. 유성 희망버스를 기획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전국의 양심이 여기에 다 모였으니 이정훈 지회장은 상당히 반가울 것”이라고 운을 뗀 뒤 “자본과 기업이 사람을 좌절과 절망의 늪으로 몰아 죽게 하니 노동자가 힘을 합쳐 야만의 문명을 뒤집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집회에는 이 지회장의 부인 한영희씨가 고공농성 중인 남편에게 쓴 편지를 낭독해 주목을 끌었다. 한씨는 농성장으로 남편이 올라간 날이 결혼기념일이었다는 사실을 밝혀 참가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씨는 “안 그래도 마른 남편이 농성을 하며 더 말라 반쪽이 됐다”며 “남편이 꼭 승리해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유성기업 사측과 경찰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의 공장 출입을 막으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윤성희 기자


"같이 밥 먹는 우리는 한 식구"

전국에서 모인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5시께 충남 아산 유성기업 본사 앞에 도착했다. 유성기업 지회 조합원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공장 쪽문 쪽으로 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충돌했다. 충돌이 격해지자 경찰은 최루액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했다.

조합원과 참가자들은 “공장 안에 집회 신고를 했다”, “유성기업 직원인데 왜 공장에 못 들어가게 하냐”고 항의했다. 회사 관계자는 경찰 뒤에서 “유성기업 직원이 아닌 사람은 나가라”고 요구했다. 1시간 가량 몸싸움을 벌인 참가자들은 공장 밖으로 나갔다.

홍종인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은 “노동자가 노조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면 불법이라며 구속되는데 회사가 노동자를 폭행하고 노조 파괴를 일삼으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을 받는다”고 비판했다.

김성훈 금속노조 KEC지회장은 연대발언을 통해 “복수노조 체제에서 조합원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 있는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더 많은 희망버스가 조직돼 유시영 사장을 구속하고,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에는 밥과 콩나물국이 배식됐다. 참가자들은 일회용 식기에 고봉밥을 담고, 그 위에 콩나물국을 부었다.

굴다리 밑과 길가에 삼삼오오 자리를 잡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고된 노동 후 허기를 달래려는 듯 한 그릇씩 맛있게 비웠다. 한 참가자는 “밥을 같이 먹으니 우리는 한 식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유성(流星)에 희망을 담은 밤

유성 희망버스 문화제는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참가자들은 곳곳에서 해고노동자 한마당과 파견 미술팀과 함께 하는 벽보놀이 등을 진행했다. 이날은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풀문(Full Moon) 파티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참가자들은 한진·밀양 등 그동안 희망버스가 다녀간 현장을 이야기했다. 이어 유성기업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문화제의 포문은 인디밴드 ‘와이낫’이 열었다. 참가자들은 와이낫의 펑키한 기타리듬에 몸을 맡겼다. 보컬인 전상규씨가 꽹과리를 치면서 노래를 하자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무대 앞에서 막춤을 췄다. 전씨는 “나는 쓰러져도 너는 우리를 무릎 꿇게 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참가자들은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2011년 회사가 고용한 용역직원이 노조 조합원을 폭행했던 아산공장에 오랜만에 희망의 기운이 곳곳에 번졌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희망버스는 다양함과 발칙함을 통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희망’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민주노총도 노동자의 희망·비정규직의 희망·모든 노동자의 희망으로 우뚝 설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16일 아침 기자회견을 열고 “유성 희망버스는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에 제동을 걸고, 노동자들의 결의를 다지는 장이었다”며 “회사는 조속히 노사합의에 나서고 국회는 반민중적 노동법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전국 35개 지역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유성기업 담 앞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한 후 오전 9시께 1박2일 동안 진행된 유성 희망버스 일정을 마쳤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