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부터 시행하고 있는 고용형태공시제도가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만 대상으로 하면서 제도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직접고용 노동자보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더 많이 사용하는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회피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1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정부의 고용형태공시시스템(work.go.kr/gongsi)에 고용형태 정보를 공시해야 하는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은 2천950여곳이다. 노동부는 다음달 16일부터 30일까지 기업들이 공시정보를 수정할 수 있는 기간을 설정했다. 5~6월 미공시·오공시 개선과 현장실사를 거쳐 7월부터 공시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해당 제도는 정규직·기간제는 물론 사내하청과 파견·용역까지 포함하는 고용형태를 기업들이 공개해 자율적인 고용구조 개선을 유도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은 공시대상에서 제외한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된다.

정부는 대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기 위해 공시대상을 300인 이상으로 정했다. 그런데 상시근로자가 300명 미만이면서도 사내하청이나 파견을 상시근로자보다 훨씬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분야가 전자업종과 조선업종이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관계자는 “안산·시화공단의 전기·전자제조업체는 정규직이 300인 미만이면서도 사내하청은 그보다 많은 사업장이 부지기수”라며 “이들 기업의 고용형태가 고용불안과 저임금을 부채질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부가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0년 사내하도급 실태를 보면 조선업종의 경우 정규직은 5만3천600명이었다. 반면에 사내하청은 이보다 훨씬 많은 8만5천명으로 조사됐다. 300인 미만 중소 조선업체도 300인 이상 기업의 고용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비정규직 공장’으로 유명한 기아자동차의 완성차 조립 협력업체 동희오토 같은 기업은 고용형태 공시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제도 취지가 무색한 실정이다. 기아차의 경차 모닝·레이를 생산하는 동희오토는 정규직이 150여명에 불과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는 8배 이상 많은 17개 업체 1천300여명이나 된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브랜드의 완성차를 생산하면서도 정규직은 고용하지 않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300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 고용 남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정부가 고용규모와 상관없이 고용형태를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 관계자는 “처음 실시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300인 이상 대기업을 우선 대상으로 했다”며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취지에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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