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건설노동조합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무교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송ㆍ배전현장 전기원 노동자의 산업재해와 관련해 인권위가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전기원 노동자 황기만씨(사진 가운데)가 증언을 위해 자리에 함께 했다. 정기훈 기자

군대를 전역한 직후 22년간 전기원노동자로 일했던 황기만(49)씨는 2009년 12월 양팔을 잃었다. 인천시 강화도에서 전기 배선작업을 하던 중 두 손으로 2만2천900볼트의 살아 있는 전기를 만졌기 때문이다.

“제가 작업하던 3가닥 전선에 전기를 모두 끊었다고 해서 안심하고 전봇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진 전선을 뺀 나머지 2가닥만 전기가 끊겨 있었던 거죠. 한국전력공사도 회사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어요.”

말을 하는 황씨의 두 팔은 노란색 겨울점퍼 소매 안에 깊이 감춰져 있었다. 그는 현재 별다른 수입 없이 산재 급여로 생활하고 있다. 큰 사고를 당한 탓에 전기원노동자 생활을 그만뒀지만 여전히 건설노조(위원장 이용대)의 조합원이다. 황씨는 노조와 함께 전기원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노조는 13일 오전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기원노동자의 노동실태를 알린 뒤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황씨는 “한전이 현장에서 일하는 전기원노동자들을 파리목숨 취급하고 있다”며 “현장에 한전 감독관만 제대로 배치돼 있거나, 전기를 직접 만지지만 않으면 수많은 전기원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원노동자 산재 발생률, 건설업 3배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집계한 송·배전선로 감전사고 현황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617명의 전기원노동자들이 작업 중 감전으로 중대재해를 당했다. 이 중 104명이 숨졌다.

노조는 전기원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이 전체 산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건설업 산재발생률보다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와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2012년 진행한 ‘배전현장 전기원노동자 작업환경 노동실태’ 설문조사 결과는 이 같은 추산을 뒷받침한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2.46%가 “최근 3년 사이 같이 작업하는 작업조의 중대사고를 1회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25.96%는 사망사고였다. 사고를 일으킨 작업공법은 ‘활선배전’이 65.88%로 가장 높았다. 활선배전은 전기를 살려 둔 채 진행하는 전기공사를 말한다. 활선배전은 다시 고압선을 손으로 만지는 '직접활선'과 도구를 사용하는 '간접활선'으로 나뉜다. 같은 조사에 직접활선 사고율이 57.94%인 반면 간접활선은 7.95%로 훨씬 낮았다.

한전 안전사고 페널티 완화로 '엇박자'

문제는 전기원노동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진행되는 직접활선 공사가 ‘신공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이 산재발생의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활선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비용절감을 위해서다.

더군다나 한전은 이달 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과 관련해 당초 계획보다 5조1천억원을 늘린 14조7천억원의 부채를 2017년까지 줄이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세부 이행계획으로 제시된 것은 원가절감이었다.

한전이 협력업체에 대한 ‘업무처리 기준’을 완화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기원노동자들이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전은 2년에 한 번 심사를 통해 협력업체를 선정하고, 해당 회사를 통해 전기원노동자를 간접고용한다.

한전은 지난해 안전사고 발생시 협력업체에 내리는 페널티를 “중상·경상시 6개월 계약해지”에서 “중상 15일·경상 5일 계약해지”로 줄였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반면 전기원노동자들은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조는 최소한 미국·일본과 같이 도구를 이용해 전기를 만지는 간접활선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석원희 노조 전기분과위원장은 “해마다 5%가 넘는 전기원노동자들이 한전의 방만한 경영으로 목숨과 팔다리를 잃고 있다”며 “매일 사지로 내몰리는 전기원노동자들을 위해 국가가 인권보호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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