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곳곳에 걸려 있는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단결 투쟁' 플래카드.
대학 하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 파업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 소아스대학에서도 이달 4일과 5일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 요구안도 닮았다. "원청인 대학이 직접 고용하라." 최근 영국 워릭대에서 박사과정(고용관계 및 조직행동)을 마친 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소아스대 파업현장을 취재했다.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이 기사는 <매일노동뉴스>와 <프레시안>에 함께 실린다.<편집자>

청소노동자, 노조 인정·생활임금 확보

지난 2006년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정의(Justice for Cleaners) 캠페인이 시작된 것은 저임금 때문이었다. 이슈는 빠르게 넓혀졌다. 매니저들에 의한 직장내 괴롭힘 문제, 비인격적인 대우 등으로 확산됐다. 체불임금 사건 이후 요구안은 좀 더 선명해졌다. 노동조합을 (단체교섭 당사자로) 인정할 것, 런던생활임금(London Living Wage)을 지급할 것, 대학이 청소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할 것 등이다.

2007년부터 캠페인의 요구안은 이 3가지로 대표됐다. 지부를 중심으로 청소노동자와 직접고용된 소아스대 행정인력, 교수·학생들이 적극 나섰다. 덕분에 이듬해인 2008년 '직접고용' 요구를 제외한 두 가지를 관철시켰다. 첫째, 노조 인정이다. 영국에서는 노조(주로 노조의 사업장 단위 지부)가 결성된 뒤 사용자로부터 교섭 당사자로 인정(recognition)을 받아야 비로소 단체교섭권을 갖게 된다.<상자2 참조>

청소노동자들은 사용자인 ISS로부터 유니손 소아스지부를 (청소노동자들의 임금 및 노동조건 등에 관한) 교섭의 상대방으로 인정하겠다는 확답을 받아 냈다. 둘째, 런던생활임금을 청소노동자들에게 적용하기로 했다. 생활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기본적인, 그러나 수용 가능한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을 말한다.<상자1 참조>

샌디 니콜 지부장은 "런던생활임금이 적용되면서 최저임금 수준이었던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이 25% 가량 인상됐다"고 말했다.

이상한 소집명령과 추방, 그리고 '루카스홀'

노조 인정과 런던생활임금 자체만으로도 성과였다. 하지만 승리의 흥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청소노동자들에게 2008년 7월의 그날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반면 그 공포는 '절망'이 아니라 '직접고용' 없이는 차별과 부당대우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확인시켜 준 '희망'이 됐다. 지부 노조 대표 중 한 명이자 자신도 청소업무를 하고 있는 레닌은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업체 매니저가 갑작스럽게 미팅을 소집했다. 아침 7시까지 다 모여야 한다고 했다. 문이 닫혔고, 누구도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웅성거리는 사이 이민국 직원들이 들어왔다. 완전 무장한 직원들이었다. 행진이라도 하듯 우리에게 진격하는 느낌이었다. 우리를 하나하나 살피고 다녔다. 등록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업체는 (이민국 관련 건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대학 당국도 관여한 바 없다고 했다. 누구도 믿기 어려운 얘기들을 그들은 했고, 동료 9명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바로 추방당했다. 우리 눈앞에서."

노동자들은 그날 이후 미팅이 이뤄졌던 그 강의실을 '루카스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소아스대에 기부자 등의 이름을 붙인 강의실이 있다는 데 착안, 노동자들은 강제추방 이후 출산한 동료의 아이 이름을 그 강의실에 붙였다. 대학은 알지 못하는 (혹은 인정하지 않는) 루카스홀이 소아스대에 있는 이유다. 루카스홀에서의 경험은 청소노동자들에게 체인처럼 얽힌 자신들의 고용관계의 정점에 학교 당국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3월4일과 5일 진행된 파업에서 노조 지부가 내건 요구는 "병가수당·휴가·연금 등에서 소아스대 노동자들이 받는 것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단지 병가수당 등의 수준을 상향조정하라는 것이 아니라 '직접고용'을 통해서만 요구조건을 관철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부 홍보물에는 "직접고용 요구의 핵심은 우리를 대학의 다른 노동자들보다 덜 중요한 존재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연대의 힘 … "스페인어 가르치며 요구안도 설명"

그날 이후 청소노동자들은 물론 소아스대 공동체가 술렁였다. 소아스대는 평등과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내건 학교가 아니던가. 학생들은 학교를 일주일 동안 점거하고 대학 고위 관리직들에게 항의했다. 추방사건을 비롯해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착취하는 행위가 대학에 만연해 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지부는 학생들과 함께 파업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파티도 조직했다.

청소노동자들은 '3개월 체불임금을 사흘 만에 받아 내는' 노조의 힘을 경험한 데 이어 학생과 교직원 등 대학 공동체의 힘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는 일도, 처한 상황도 달랐지만 모두가 소아스대 공동체를 형성하는 하나하나의 주체였기 때문이다.

지부는 특히 학생들과의 접촉을 확대하려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안 중 하나가 언어교환 프로그램이다. 대부분 라틴아메리카 출신인 청소노동자들은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학생들로부터 영어를 배우면서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왜 캠페인을 하는지 자연스럽게 얘기할 기회도 얻었다. 레닌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병가수당이나 연금 액수를 말하면 너무 낮다며 놀라지만 그게 왜 직접고용과 직결되는 요구인지 이해하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더라"며 "이해할 때까지 끊임없이 얘기하고 토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손 지역 조직활동가인 루스 레빈은 "우리 캠페인 핵심은 ISS 같은 업체가 고용관계에 개입하면서 발생하는 사업장 내 이중노동시장 구조를 없애기 위한 것(against the two-tier workforce)임을 알려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연대의 힘은 지난해 말 진행된 소아스대 공동체 투표에서도 확인됐다. 학생과 교직원, 조합원 등 1천300여명이 참가한 투표는 "청소업무를 다시 대학이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찬성률이 무려 98%나 됐다. 샌디 니콜 지부장은 "지부 조합원이 청소노동자를 포함해 200여명인데 1천300명이나 투표에 참가했다는 사실도 놀랍고, 그 가운데 오직 30명만이 반대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학 교수들은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4일과 5일, 파업에 대한 연대의 뜻으로 수업을 취소했다.

파업집회를 마치고 피켓라인 주변을 정리 중인 레닌에게 물었다. 이제 파업이 끝났으니 다시 본연의 업무(청소)로 돌아간 것이냐고. 너스레를 떨던 레닌은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한국의 청소노동자들, 고용형태는 물론 노동조건·파업 요구안까지 놀랍게도 닮은 한국의 '동지'들에게 꼭 전해 달라며 몇 마디 덧붙였다.

"물리적으로는 (한국과) 멀리 있지만 우리 노동자들의 마음은 단단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원청에게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싸움이겠지만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평등권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연대의 뜻을 담아 한국에서 건너온 붉은 머리띠의 글귀처럼 단결(unite)하고 투쟁(fight)해야 합니다. We all send our best wishes for your fight. Venceremos(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글·사진=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 goforit09@hanmail.net
 


생활임금이란?

소아스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둘째 날인 지난 5일, 버밍엄대학도 노조들(유나이트 및 유니손)과의 오랜 임금협상 끝에 올해 8월1일부터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아스대나 버밍엄대처럼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적용하는 곳은 더디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2001년 생활임금 캠페인이 시작된 이후 2012년 140곳이었던 생활임금 적용기업은 지난해 말 현재 277곳으로 증가했다.

생활임금은 액수로만 보면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다. 생활임금이 주목받는 것은 액수 때문이 아니다. 생활임금은 필요한 것들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기본적인, 그러나 수용 가능한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을 말한다.

최저임금은 실질생활비와 직결되지 않는다. 영국 저임금위원회(Low Pay Commission)가 내놓은 최저임금 산정기준은 "고용에 영향을 주지 않고 시장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를 생활임금 산정기준과 견줘 보면 둘의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국의 생활임금은 런던과 그 외 지역으로 나뉜다. 런던지역 생활임금은 시간당 8.80파운드(1만5천584원)이고, 런던 외 지역은 7.65파운드(1만3천550원)이다. 올해 10월부터 적용될 최저임금 6.31파운드(1만1천174원)보다 적게는 1.34파운드 많게는 2.49파운드 많은 금액이다.

산정기관과 방식도 다르다. 런던생활임금은 런던시가, 그 외 지역은 러프버러대학 사회정책연구센터에서 결정한다.

우선 런던 지역을 보자. 생활임금은 두 가지 단계를 거쳐 산정된다. 첫째 기본생활비용(Basic Living Costs) 조사다. 가구당 최소의, 그러나 용납 가능한 수준의 비용을 측정하고, 이에 부합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지를 계산한다. 둘째는 소득분배(income distribution) 방식이다. 임금의 중간값(median)의 60%를 측정한다. 2012~2013년 생활임금을 예로 들면 기본생활비용 방식으로 시간당 7.10 파운드, 소득분배 방식으로 7.80파운드가 각각 계산됐다. 둘의 평균 7.45파운드가 빈곤선 임금(poverty threshold wage)이 된다. 생활임금은 빈곤선 임금에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15%를 추가한다. 그래서 나온 값인 시간당 8.55파운드가 런던생활임금이다.

런던 이외 지역은 러프버러대의 최저소득기준(minimum income standard)에 따라 계산된다. 노동자가 가난의 효과(건강 악화·자녀 발달수준 저하·사회적 배제 등)를 피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금액을 뜻한다. 예를 들어 2명의 자녀가 있는 커플이 있다고 치자. 둘 모두 주당 37.5시간의 노동을 하고 자산조사 결과에 따라 지급되는 복지수당을 받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이는 매우 기본적인 예산이다. 가족은 임대주택에 살고 있으면서 차가 없고 연금기여분을 납부하거나 채무상환을 위해 돈을 쓴다. 이렇게 계산된 금액이 7.45파운드다.<표 참조>

생활임금(Living wage) 이슈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영국 정부의 재정지출 감축에서 비롯된 각종 사회적 임금 삭감과 일자리 감축으로 인한 삶의 질 악화와 맞물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2012년 말, 노동당 당수인 에드 밀리밴드는 2015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할 경우 다수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넘어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법적 강제사항은 아니지만 다수의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도록 정부가 적극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생활임금에 대한 관심과 도입을 선언한 기업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이로 인해 임금이 인상된 노동자들의 수는 많지 않다. 저임금 일자리가 많은 소매점·외식산업·여행 관련 부문에서 생활임금 지급을 인정한 기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회계법인 KPMG는 현재 영국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20%인 500만명이 생활임금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또 하나 살펴봐야 할 대목은 생활임금이 아웃소싱된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에게까지 적용되는지 여부다. 소아스대의 사례처럼 아웃소싱된 청소노동자들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적용대상을 직접고용 노동자로 한정하는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는 런던 퀸메리대학의 생활임금 적용효과에 관한 것이다. 해당 연구는 아웃소싱됐던 청소노동자들을 대학이 직접고용하면서 이들에게 생활임금을 적용한 사례를 다뤘다. 연구를 담당한 제인 윌스 교수는 "거의 비용증가를 가져오지 않았음에도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은 물론 서비스의 질이 무척 향상된 효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

 

노조 결성 뒤 단체교섭권 인정절차 거쳐야

영국에서 노동조합이 단체교섭권을 인정받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자율협약. 대개의 경우 노사 간 자율적인 협약에 기반하고 있다.

둘째는 사용자의 노조 인정을 강제하는 경우다. 2000년 이후 노조가 독립기구인 중앙중재위원회(Central Arbitration Committee·CAC)에 '사용자의 노조 인정을 의무화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도입됐다. 만약 노조가 어느 정도 규모의 조합원이 있고, 노조 인정을 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어떤 경우는 투표를 통해) 증명하면, CAC는 노조 인정이 이뤄졌다는 것을 발표한다.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교섭단위 내 최소 10% 이상의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교섭단위 내 전체 노동자의 과반이 투표에 참여해 4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 그 노조는 단체교섭 파트너로 인정받는다.

셋째로 준자발적 인정 제도도 있다. 이는 CAC를 통한 인정 절차가 개시된 이후부터 최종 인정 결정이 내려지기 전이나 혹은 CAC가 투표를 명령하기 전에 사용자가 노조 인정에 동의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부여된 노조 교섭권은 취소될 수도 있다. 자율협약의 경우 사용자는 해당 협약이 만료되면 자동적으로 인정을 취소할 수 있다. 준자발적 협약은 최초 3년 동안 효력을 인정받는데, 그 이후에는 사용자에 의해 종료될 수 있다. CAC에 의해 교섭권 인정이 강제된 경우 사용자는 반드시 법적인 인정취소 절차를 이행해야 한다. 즉 CAC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노동자들의 투표를 거쳐야 한다. 교섭단위에 속한 노동자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CAC가 강제한 인정을 종료시킬 수 있다.

최근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하락으로 대변되는 노조 영향력 축소 문제와 더불어 사용자에 의한 교섭권 인정 취소문제가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노조에 대한 인정 취소(derecognition)는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보수-자민당 연립정부가 출범한 이듬해인 2011년에 몇 개의 사례가 발생했다. 때문에 사용자들이 '인정 취소'를 무기로 임금삭감이나 노동조건 악화를 강제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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