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페드로는 피켓라인에 서서 필자와 인터뷰를 하던 중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자 이내 동료와 함께 춤을 췄다.

▲ "둘러보세요. 청소노동자 없이 소아스대학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지 살펴보세요. 오늘은 파업 마지막날입니다. 일자리에서 동등한 대우와 존엄을 요구하는 파업을 지지해 주세요. 청소업무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업무입니다. 소아스대 당국이 직접 노동자들을 고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공동체를 지켜야 합니다."
▲ 유니손 소아스지부

 대학 하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 파업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 소아스대학에서도 이달 4일과 5일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 요구안도 닮았다. "원청인 대학이 직접 고용하라." 최근 영국 워릭대에서 박사과정(고용관계 및 조직행동)을 마친 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가 소아스대 파업현장을 취재했다.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이 기사는 <매일노동뉴스>와 <프레시안>에 함께 실린다.<편집자>

러셀 스퀘어역에 내려 런던대 소아스(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in London, 이하 소아스대)를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흥겨운 라틴음악을 따라갔더니 그곳이다. 필자가 찾아간 5일보다 파업 첫날이었던 4일, 모인 사람이 더 많았고 행사도 다채로웠단다. 어제 올 걸, 아쉬워할 새도 없었다. 파업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추고, 또 구호를 외치고 연설을 했다. 하루 종일 그랬다. 한국에서 익숙해진 파업의 풍경과는 조금 달랐다. '저항의 축제' 같았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소아스대에서 13년째 일을 하고 있다는 페드로는 필자와 인터뷰를 하던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자 춤을 춰도 되겠냐고 물었다. 내미는 손을 어찌할 줄 몰라 얼굴이 빨개진 사이 마침 지나가던 한 노동자를 부르더니 익숙한 듯 함께 춤을 췄다.

소아스대 청소노동자들이 가입한 유니손 소아스지부(UNISON SOAS branch) 샌디 니콜 지부장(branch secretary)은 "소아스 청소노동자의 90% 이상이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등 남미에서 온 이민자인 만큼 이들 커뮤니티에서 보내 준 연대와 지지가 큰 몫을 한다"고 말한다. 첫날 파업 집회에는 이들 나라 출신 이민자들이 자주 찾는 레스토랑과 퍼브(pub)에서 가수들이 찾아와 '노래'로 연대를 했다. 지난 캠페인 기간에는 영국 주재 에콰도르 부대사가 와서 지지연설을 하는 등 지역 공동체의 힘도 대단하다고 한다. 이들이 외치는 대부분의 구호는 '영어'였지만 스페인어도 적잖게 사용됐다. 일부 홍보물은 한 면이 영어, 다른 한 면은 스페인어로 돼 있기도 했다.

"둘러보라, 청소노동자 없이 학교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이틀째. 학교 곳곳은 치우지 않은 쓰레기로 가득 찼다. 화장실 세면대에는 노동자들이 놓고 간 홍보물이 눈에 띄었다.

소아스대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68명으로 모두 지부 조합원이다. 골드만 삭스가 주식의 다수를 보유한 덴마크 회사 ISS 소속이다. 이들은 병가수당·휴가·연금 등 노동조건을 소아스대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과 같은 수준에서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ISS 소속 노동자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법에서 정한 병가수당을 받기 위한 기준임금(주당 107파운드·약 19만원)을 ISS로부터 받지 못해 아예 병가수당 지급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풀타임 고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지급대상이 되더라도 받을 수 있는 최대치는 주당 85.85파운드(약 15만4천200원)에 불과하다. 그것도 병가가 확정된 날 사흘 뒤부터 받을 수 있다. 소아스대 노동자들이 병가 첫날부터 일수로 계산된 임금을 전액 받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소아스대 직접고용 노동자들이 연차휴가 30일·뱅크홀리데이 8일에 더해 추가로 크리스마스·이스터 등을 유급휴가로 즐기는 반면, 청소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날은 1년에 28일이 전부다.

청소노동자들은 소아스대가 운영하는 별도의 확정급여형 연금이 자신들의 연금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해당 연금제도에 가입할 수 없다. 역시 직접고용 노동자가 아닌 탓이다. ISS측과 몇 차례나 교섭을 하고 미팅을 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파업 찬반투표를 했다. 찬성률은 100%였다.

"3개월 임금체불, 기댈 곳은 노조뿐"

소아스대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찾아간 것은 2006년의 일이다. 이들은 ISS로 업체가 변경된 2007년 이전까지 오션(Ocean·노동자들은 오시앙이라고 부른다)이라는 업체 소속으로 일했다. 그런데 오션은 3개월 동안이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몇몇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그러던 중 몇몇은 동료 스탈린을 만났다. 스탈린은 하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로 일하다 소아스대 채용공고에 응한 뒤 우편물 담당부서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는 유니손 소아스지부 의장(branch chair)이기도 했다.

노조는 대학 경영진을 만나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항의했다. 학교와 업체는 신속하게 대응했다. 지난 3개월 동안 끙끙댔던 일이 노조가 나선 지 사흘 만에 해결됐다. 청소노동자들은 '런던생활임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밀린 임금 3개월치를 받아 내겠다"는 소박한 바람은 "런던생활임금 쟁취"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다음호로 이어짐>


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 (goforit09@hanmail.net)

 

▲ 유니손 조직도

소아스 청소노동자들이 가입한 노조의 이름은 유니손 소아스지부(UNISON SOAS branch)다. 지부에는 소아스대에 직접고용된 노동자들과 ISS에 고용된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조직돼 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 가입해 조합원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셈이다.

유니손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는 노조다. 조합원이 130만여명으로 영국 노동조합 가운데 규모로는 두 번째로 크다. 유니손의 기본 원칙은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고용된 회사가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관계없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모든 조합원들은 조직의 골간인 지부(branch)에 속해 권리와 의무를 행사한다. 유니손 규약과 실행규칙에 따르면 지부는 주로 하나의 주된 사용자(one principal employer)에게 고용된 노동자들, 즉 (대개는) 사업장 단위로 조직된다. 설사 사업의 일부가 아웃소싱된 경우라 할지라도 그 사업장에서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경우 그들까지 조직해야 한다. 유니손 본조의 아웃소싱 관련 업무 책임자인 데이브 존슨은 "민간부문으로 아웃소싱된 사업, 대표적으로 청소업무 등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지부 조합원 범주에서 배제하는 것은 노조 규약 위반"이라며 "청소노동자를 적극적으로 조직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들을 지부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지부 규정 등에) 명시한 곳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예를 들어 버밍엄 근처 더들리병원의 유니손지부에는 아웃소싱된 청소·세탁·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병원에 직접고용된 간호사·조산원·기술인력·행정인력과 함께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고용사업주가 누구인지 관계없이 하나의 병원 혹은 다른 공공부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라면 하나의 노조 지부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데이브는 "광범위하게 확산된 공공부문 아웃소싱 때문에 대부분의 유니손 지부는 (고용업체 성격으로 따질 경우) 공공-민간 노동자들이 혼합돼 조직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용사업주에 따라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가 다를 수 있다는 판단하에 유니손 더들리병원지부처럼 공동 지부장(joint branch secretary, branch secretary는 '사무국장'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한국 노조의 지부장과 비슷한 책임과 권한을 갖는다는 점에서 지부장으로 표현함)을 둔 지부도 있다. 하나의 지부로 묶여 있되, 2명의 지부장이 직접고용 노동자들과 아웃소싱 고용노동자들 각각 대표하는 구조다.

샌디 니콜 소아스지부장은 "2006년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이 3개월이나 체불됐다는 얘기를 접하고 곧바로 캠페인과 조직화에 나섰다"며 "그들이 대학이 아닌 민간청소업체에 고용돼 있다는 사실이 우리 지부로 조직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
 


[인터뷰] 레닌 유니손 소아스지부 노조 대표
“대학이 실질 사용자, 청소노동자 직접 고용해야”

▲ 레닌 유니손 소아스지부 노조 대표
본명이라고 했다. 이름이 레닌(Lenin Escudero Zarsoza)이다. 올해 서른일곱인 그는 에콰도르에서 태어났다. 공산당 핵심 당원인 그의 부모가 사회주의 혁명 지도자이자 사상가인 레닌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아들의 이름을 레닌이라 지었단다. 유니손 소아스지부에는 레닌 말고 스탈린도 있다. 스탈린 역시 본명이다.

축구선수였던 레닌은 21살 때 심각한 부상을 당해 축구를 포기하고 2000년 영국으로 건너왔다. 기회와 평등권을 보장하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팍팍했다. 이주노동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한때 일주일에 7일, 하루 16~18시간씩 일했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주말에 일을 하지 않는 대신 주중에는 하루 15시간 넘게 일한다. 투잡을 넘어선 쓰리잡 인생이다.

새벽 3시면 첫 번째 업무가 시작된다. 2시간45분 동안 런던시내에서 사무실 청소를 한 뒤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소아스대에서 청소를 한다. 이 일이 끝나면 HSBC은행에서 오후 8시30분까지 3시간 동안 청소를 한다. 몸은 힘들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대학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 간에 공평하고 평등한 노동조건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아스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첫해인 2003년 청소 도중 떨어진 의자에 발이 찍히는 사고를 당했다. 발톱 3개를 잃었다. 일은커녕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받은 것은 법정 병가휴가수당인 주당 84파운드. 집세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도 없는 금액이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했다면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났을 지도 몰랐다. 의사는 최소 한 달 휴가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레닌은 3주 만에 완쾌되지 않은 상태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알았다. 소아스대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자신들과 달리 법적 기준보다 높은 수준의 병가휴가의 적용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 즈음 또 다른 사건이 있었다. 소아스대 청소노동자들이 고용돼 있던 오션(Ocean)이라는 청소업체가 3개월 동안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몇몇은 일터를 떠났지만 레닌과 동료들은 물어물어 노조(유니손)를 찾았다. 그때 알았다. 생활임금이란 제도가 있고, 노조를 통해 집단적인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게 됐다. 소아스대 직접고용 노동자들과의 차별적인 대우를 중단시키는 방법은 핵심 사용자인 소아스대가 자신들을 직접고용하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것을.

"소아스대는 모든 노동자들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 말은 청소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더러 왜 (우리를 고용하지도 않은) 대학 당국을 향해 불만을 말하느냐고 묻는데, 그건 소아스대가 우리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평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것은 소아스대의 책임이다. 청소업무를 계속 외부업체에 맡기고 싶다면, 동등한 노동조건을 보장한다는 조건하에 하청계약을 맺어라. 그렇지 않다면 대학이 우리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2003년 이후 지부에서 노조 대표 중 한 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레닌은 해고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업체 매니저가 2012년 어느 날부터 업무 외의 일을 하라고 지시했는데, 그가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다.

"업체는 내가 그러한 요구를 거부할 것으로 보고 나에게 그런 지시를 한 것 같다. 아마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내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를."

레닌은 그 사건으로 2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지만 곧 업무에 복귀했다. 자신이 속한 노조인 유니손이 대학 교직원노조인 유시유(UCU)·소아스학생회와 더불어 연일 집회를 열고 정직 처분의 부당함을 알려 낸 덕분일 테다.

레닌은 "ISS와 소아스대는 내가 더 이상 노조활동을 하지 않기를 바랐겠지만, 그 사건으로 나는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이정희 전 매일노동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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