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식 변호사
(법무법인 공간)

대상판결 / 대법원 2011다78804 부당징계무효확인

들어가는 말

필자가 학창시절, 법과대학을 다니면서 들은 말이 있다. "법정에서 정의(justice)를 구하지 말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 말은 정의를 가장 최우선적으로 구현해야 할 법원이 정의롭지 않은 판결을 종종 선고한다는 말을 비꼬아서 하는 말로 기억한다. 필자가 최근에 그와 같은 판결(대법원 2011다78804 부당징계무효확인 판결)과 마주하니, 선배가 들려 줬던 그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으로 공기업에 대한 사유화(privatization)를 추진했다. 본 사건도 이명박 정부의 사유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본 사안의 개요

국가보훈처 산하기관인 ○○관광개발 주식회사와 그 회사가 관리하는 ○○컨트리클럽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 선진화의 대상기관에 포함되게 됐다. 그런데 그 골프장에는 그곳에서 근무하는 골프장 캐디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었고, 그 회사 경영진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노동조합이 회사와 골프장의 매각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 회사 홍모 사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노조를 해산시키겠다는 취지로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 직후 회사 경기운영팀장을 필두로 해 그 노동조합에 대한 조직적이고도 치밀한 노조와해 공작이 자행됐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52명에 대해 경기보조원수칙에도 없는 징계인 무기한 출장유보조치를 취하게 됐고, 또한 대량징계로 인해 노조와해에 직면한 노조간부들이 겨울철 휴장기를 이용해 결장을 한 것에 대해 회사는 무단결장으로 몰아 3명의 노조 간부를 제명 처분했다.

한편 이 회사를 관할하는 용인경찰서에서는 “정부 공기업 선진화 발표(매각) 이후 경기보조원 노조 무력화 일환으로 지난 11월5일부터 강성노조원 유보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 중략 … 골프장 휴장기(1∼2월)에는 직장 부분폐쇄를 통해 88CC분회를 정리하겠다는 계획임 … 중략 … ○○ 사장은 노조 정리 문제를 청와대 정무수석·복지부 장관·보훈처장에게 구두보고 재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으로 정보보고서를 작성했다. 또한 이 회사의 직원은 국가보훈처장의 승인 아래 회사 사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이 같은 무더기 징계 이전부터 ‘노조를 어떻게 깨부술까 작전을 짰다’고 그 진상을 밝히면서, 때마침 발생한 캐디와 경기운영팀장과의 마찰 사건을 이용해 노조와해 공작을 진행했다고 고백했고 이 같은 경찰의 정보보고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인하기에 이른다.

본 사안은 이 같이 무도하게 자행된 ○○관광개발의 무더기 출장유보조치와 노조간부들에 대한 제명처분에 대한 무효확인을 구한 것으로, 징계가 있은 지 약 5년 반 만에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을 한 것이다.

재판의 경과

이 같은 징계를 받은 노조원들은 수원지방법원에 부당징계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원고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인정한 후 노조간부들에 대한 제명처분을 비롯해 모든 징계처분이 무효라고 확인했다. 이에 회사가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주위적 청구로 근기법상 근로자임을 전제로 그 정당성이 없어 징계처분이 무효라는 원고들의 주장을 배척하고, 노조법상 근로자임을 전제로 그 징계처분이 노조와해를 위한 부당노동행위로 무효라는 원고들의 예비적 청구를 받아들여, 무기한 출장유보처분을 받은 원고에 대해서는 원고승소 판결을, 제명처분을 받은 노조간부들에 대하여는 원고패소 판결을 각 선고했다. 이에 노조간부들과 회사는 자신들이 패소한 부분에 대해 각각 상고를 제기했다.

본 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이 같은 고등법원이 선고한 판결을 거의 그대로 원용하며 상고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즉, 근기법상 근로자성 판단에 관해 설시한 대법원 판결(2006. 12. 7 선고 2004다29736)과 골프장 캐디의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부인한 대법원 판결(1996. 7. 30 선고 95누13432)을 인용하며, 원고들의 경우 근기법상 근로자성이 부인되고, 노조법상 근로자성은 긍정된다는 판결을 한 것이다. 또한 부당노동행위의 법리와 노조법상 사용자 인정 법리에 대해서도 판단을 했다. 그에 대한 보다 자세한 법리는 판례 원문 참조하길 바란다.

본 판결의 문제점

첫째, 대법원 판결이 근기법상의 근로자성을 확대해 가는 추세인데(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대법원 2007. 1. 25 선고 2005두8436 판결,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5두13018·13025 판결, 대법원 2007. 9. 7 선고 2006도777 판결, 대법원 2008. 5. 15 선고 2008두1566 판결,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다51417 판결), 본 판결은 이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판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사안에서 캐디들은 어느 근로자 못지않게 골프장 사업주의 강한 지휘·감독 아래 근로를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것은 필자의 <골프장 캐디의 근로자성 : 서울고등법원 2011. 8. 26 선고, 2009나112116 판결>(법조 제675호, 2013년 12월)을 참조 바란다.

다만,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걸림돌은 캐디피가 골프장 사업주를 거쳐서 지급되지 않고 골프장 이용객이 캐디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과 골프장 사업주와 캐디들 간에 명시적인 계약이 체결되지 않는다는 점 정도이다. 전자에 대해 살펴보면, 그것은 골프장 사업주가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기제에 불과하고, 택시기사의 경우 승객으로부터 직접 받은 사납금 초과 금원에 대해 임금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근거이다. 또한 명시적인 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은 사정도, 근로계약이 묵시적으로 성립할 수 있고, 이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둘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또는 근기법상 근로자란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하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자를 말하고, 그 사용종속관계는 당해 노무공급계약의 형태가 고용·도급·위임·무명계약 등 어느 형태든 상관없이 사용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지휘·감독관계의 여부, 보수의 노무대가성 여부, 노무의 성질과 내용 등 그 노무의 실질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대법원 1993. 5. 25 선고 90누1731 판결, 2006. 5. 11 선고 2005다20910 판결 등 참조)”고 했다. 근기법상 근로자성 판단과 노조법상 근로자성 판단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이 대법원의 주류적 태도임에도, 본 판결은 근기법상 근로자성의 판단과 노조법상의 근로자성 판단을 다르게 봤다. 본 판결에 의하면, 근기법상 근로자성이 인정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노무제공 조건의 유지·향상을 위해 단결하고 단체교섭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파업을 할 수도 있는 ‘근로자 유사한 지위’에 있는 ‘준근로자’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를 상대로 그와 같은 노동 3권을 행사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본 판결의 원심은 캐디들은 내장객과 계약관계가 있을 뿐이고 골프장 사업주와는 계약관계가 없다는 취지로 판시를 했고, 본 판결은 이에 대해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으나, 큰 틀에서 원심의 판단을 지지했으므로, 원심과 같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캐디들이 단결한 노동조합은 골프장 사업주를 상대로 노동 3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골프장 이용객을 상대로 그 같은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골프장 이용객은 보통은 자신들이 직접 캐디를 고용한다거나 하는 인식은 없고 오히려 골프장에서 제공하는 캐디를 이용한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 보통이고, 또한 그들은 캐디피 결정 등 캐디들에 대한 근무조건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이다(이것은 원고들이 위 회사가 내린 징계처분에 대해 그 무효확인을 구한 것이 본 소송의 내용이라는 점을 보더라도 명확하게 확인된다). 그럼에도 골프장 이용객을 상대로 노동 3권을 행사한다? 이것은 난센스다.

셋째, 대법원의 판단은 자신이 독자적인 법리를 전개한 것이 아니라, 원심이 선고한 법리 등에 대한 원고들이나 회사의 상고이유가 이유 없다는 식의 간단한 요지를 설시한 것으로,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할 경우 캐디들에 대한 퇴직금 지급 등 사회적 파장을 지나치게 염려한 지나친 소극적인 판결이다. 본 사안에 대해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려면,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정도(正道)였고, 이것이 바로 정의를 법정에서 구현하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이를 회피하고 만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