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편집자>

한 가족을 송두리째 앗아 간 병원비

지난달 집주인에게 70만원이 든 봉투와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세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세 모녀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암투병 끝에 사망하면서 밀린 병원비가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가정은 어머니 박아무개씨 홀로 책임졌다. 박씨는 보증금 500만원짜리 집에 9년째 살면서 월세와 전기요금 12만원, 건강보험료 4만9천원가량을 매월 납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월세는 인상돼 부담은 커졌고, 설상가상으로 빙판 길에 미끄러져 팔을 다쳐 일자리를 잃게 됐다. 큰딸은 7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 취업을 하지 못한 상황인데도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둘째딸은 생활비와 병원비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돼 버렸다. 끝내 세 모녀는 막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서민들에게 병원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다. 병원비가 삶을 송두리째 앗아 가는 일이 비단 세 모녀에게만 닥친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거대 병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고가의 의료장비들을 사들이고 제2·제3의 병원을 건립하고 병상을 늘리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수입이 예전 같지 않다며 일하는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다.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견줘 볼 때 간호인력은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시간외 노동은 당연하고 점심을 굶기 일쑤다. 화장실조차 가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유산 위험에 노출돼 있고 심지어 ‘임신순번제’라는 비정상적인 일까지 존재한다. 야간근무·교대근무에 중노동까지 한다.

이렇게 힘들다 보니 이직률은 높고 신규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중소병원들은 인력이 부족해 병동을 폐쇄하기도 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진료비가 평균 60%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데다, 선택진료비와 보험 안 되는 병실료 등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비는 여전히 비싸다. 큰 병이 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너도나도 별도의 개인보험에 가입한다. 보험료를 이중 삼중으로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한계에 도달한 보건의료 시스템

고가의 장비구입과 증축 경쟁에 내몰린 큰 병원들은 투자 대비 수익이 늘지 않으니 적자라고 아우성이다. 환자를 다 뺏긴 지방병원·중소병원들은 망할 지경이라고 울상이다.

한마디로 빅4 병원 중심의 수도권 환자 쏠림현상과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 보건의료인력의 절대 부족 등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은 국민·환자·의사·노동자 모두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도달해 있다. 의료이용체계와 재정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는 지역의료·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국민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희귀난치병)을 100% 국가가 부담한다고 공약했다. 또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2인실 등 상급병실료 문제를 해결하고 하루 7만원에 이르는 간병비 문제를 해결한다고 약속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다른 무수한 공약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폐기를 선언한 상태다. 즉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정책으로 실현해야 하는데 정부는 거꾸로 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름하여 원격진료 허용,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라고 이름 붙인 의료 영리화·의료 민영화 정책들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환자를 상대로 마음대로 돈벌이를 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꾸로 가는 보건의료정책

대한의사협회는 3월10일 필수진료를 제외하고 하루파업에 돌입하는 것을 비롯해 11일부터 준법진료를, 24일부터는 총파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격진료 허용 철회와 의료영리화 정책(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 및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철회, 건강보험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막중한 의사들이 파업까지 결단하게 된 것은 박근혜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의료 민영화 정책이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대표적인 민영화론자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으로 임명했다. 최근에는 영리자회사 설립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다, 투자개방형병원(영리병원) 설립지원을 강화하겠다며 의료 민영화 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업무개시명령’을 언급하며 강경탄압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진주의료원을 강제폐업한 당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려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끝끝내 외면했던 정부가 의사파업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너무나 이중적인 잣대다. 정부의 강경방침은 해결책이 아니라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더 큰 국민적 반발과 저항으로 이어질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보건의료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공공성이 유지돼 왔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떠받치는 기둥은 바로 의료기관을 영리자본이 운영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개인이나 비영리법인만이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할 수 있도록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이 한 곳도 없다. 개인병원을 제외하면 학교법인·의료법인·재단법인·사회복지법인과 같은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들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설립·운영하는 공공병원뿐이다.

서구 유럽 여러 나라의 공공병원 비율이 80% 이상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겨우 6%밖에 안 된다. 94%가 민간병원이지만 영리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주식회사·합명회사·합자회사·유한책임회사와 같은 상법상 영리행위를 할 수 있는 회사들이 병원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이 운영하는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도 주식회사병원이 아니라 재단법인과 사회복지법인 등 비영리법인이 운영한다.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는 영리자본이 투자를 할 수도 없고, 병원에서 나온 수익을 밖으로 빼돌릴 수도 없다.

영리병원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크다는 것을 잘 아는 정부는 영리 자회사를 허용한 뒤 이를 통해 외부 영리자본을 끌어들이고 이익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있도록 하는 꼼수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에게 의료 대재앙을 불러올 정책들

자회사는 병원에 의약품·의료장비·의료재료·의료인력을 공급할 수 있고, 환자들을 대상으로 건강식품·화장품·의료용품을 판매할 수 있다. 심지어 숙박업·호텔업·온천업·여행업·건물임대업·운동시설·사우나를 운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자회사에 투입된 영리자본은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 의약품과 의료장비·의료재료를 독점공급하면서 이윤을 빼돌릴 수 있게 된다.

수익증대를 위해 환자를 대상으로 과잉진료가 늘어날 것이고, 환자를 대상으로 자회사 제품과 시설을 이용하라는 판촉활동이 활발해져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폭증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감축이나 비정규직 확대·임금 억제·고연차 퇴출 등 노동자를 희생시키기 위한 구조조정이 횡행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공공의료 비중이 취약한 상황에서도 공공성이 유지돼 온 우리나라 병원들은 영리자회사 허용으로 인해 영리자본의 돈벌이 투자처가 되고 만다. 정부가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까지 허용함으로써 거대 영리자본은 수많은 병원들을 인수합병해 덩치를 키울 것이다. 거기에 원격의료까지 허용되면 동네의원은 몰락하고 거대 영리자본이 의료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법인약국 허용 문제도 마찬가지다. 1인1약국 체계가 무너지고, 수많은 체인약국을 거느린 기업형 대형약국이 등장할 것이다. 재벌자본의 침투에 의해 동네슈퍼와 동네빵집이 사라지듯이 동네약국도 몰락하게 된다.

결국 의료 민영화는 국민에게는 과잉진료와 의료비 폭등, 1차 의료(동네의원·동네약국) 몰락, 의료접근성 악화와 같은 재앙이 될 것이다. 돈벌이를 추구하는 영리자본들에게는 최고의 황금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의료 민영화 정책을 저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현장을 조직하고 있다. 100만 서명운동을 비롯해 국민과 함께 하는 투쟁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보건의료는 돈벌이 대상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은 우리나라 보건의료가 재벌의 돈벌이 투자처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취약한 보건의료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공공적으로 발전시키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국민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 의료 민영화 저지는 국민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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