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자동차노조(UAW)가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에 자리한 폭스바겐 공장의 조직화에 실패한 소식으로 국제노동계가 시끌시끌하다. 지난 14일 UAW가 주도한 노조설립 투표가 있었는데, 투표 자격이 있는 노동자 1천550명 가운데 89%가 투표한 결과 71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찬성표를 던진 노동자는 626명에 불과해 노조설립 시도가 무위로 끝났다.

미국 노동계는 노조설립 실패이유로 극우 공화당 정치인의 부당한 개입과 우익단체들의 반노조 캠페인을 들고 있다. 노조설립이 이뤄질 경우 외국자본의 투자가 위축돼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노동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한 결과 절반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조설립 반대에 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2001년에서 2005년까지 채터누가 시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인 밥 코커는 “(폭스바겐 관계자와) 대화를 한 결과 노동자들이 UAW에 반대하는 투표를 해야 한다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며 “(노조설립 반대에 투표하면) 폭스바겐은 몇 주 안에 중형 SUV 신차를 여기 채터누가 공장에서 만든다고 발표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미국 중남부에 위치한 테네시주는 면적이 남한보다 크지만 인구는 649만명에 불과하다. 주지사인 빌 하슬람을 비롯해 워싱턴의 미국 의회에서 테네시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 2명(이번에 반노조 선동으로 주가를 올린 밥 코커도 그중 한 명이다)과 하원의원 9명 중 7명이 공화당 소속으로 반공주의 보수우익의 정치적 영향력이 남다른 곳이다.

채터누가 공장의 노조설립을 주도한 UAW는 지난해 말 현재 재직 조합원 39만명과 단체협약으로 사용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는 은퇴 조합원 60만명을 거느리고 있다. 1935년 산업별노조회의(CIO)의 좌파노조로 출발한 UAW는 출범 당시 흑인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주는 등 진보적인 활동을 펼쳤다. 1930년대와 40년대를 거치면서 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포드의 조직화에 성공하면서 미국 노동운동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미국 남부지역에 진출한 일본과 독일 등 외국 자동차회사의 조직화에 실패하면서 79년 조합원 150만명을 정점으로 조직세가 점차 위축됐다. 2006년에는 전성기의 3분의 1 수준인 54만명으로 줄었다.

UAW가 미국의 폭스바겐 공장에서 노조설립에 실패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독일에 있는 폭스바겐 본사 노동자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은 세계 최대 노조로 조합원 240만명을 거느린 독일 금속노조(IG Metall)의 주력 사업장이다. 17개 나라에 자동차 조립공장을 두고 있는 폭스바겐은 미국에서는 테네시주 채터누가 한 곳에만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노조는 물론이고 종업원평의회 같은 노동자 대표조직도 없는 채터누가 공장의 노조 조직화 시도를 바라보는 독일 금속노조의 관심은 컸다.

폭스바겐 독일 본사 종업원평의회 의장인 베른트 오스텔로는 “노동자의 공동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미국 남부에 대한 추가 투자를 추진 중인 본사 경영진의 계획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폭스바겐의 독일 본사 종업원평의회에서 반노조 국가에 대한 투자 축소를 주장하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채터누가 공장에서 노조 조직화가 실패한 것은 본질적으로 결사의 자유를 가로막는 미국 노동법제 때문이다. 개별 노동자가 아무리 원하더라도 같이 일하는 동료 노동자의 과반수가 동의하지 않으면 노조가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법·제도상의 문제는 미국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기준인 제87호 결사의 자유 협약과 제98호 단체교섭권 협약을 거부하는 현실과 연결돼 있다.

아무튼 이번 실패로 UAW는 1년 후에나 채터누가 공장에 대한 조직화를 다시 시도할 수 있게 됐다. 이번의 쓰라린 경험이 바닥을 기고 있는 UAW에게 반전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조직력 위축을 가속화하는 악재가 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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