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법원이 판결한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쌍용차 해고자들과 변호인들이 기자회견을 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 쌍용자동차와 흥국생명 등 정리해고를 실시한 대부분 사업장에서는 정리해고를 실시할 정도의 긴박한 경영상 이유가 있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정리해고 사업장 조합원들이 정리해고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다시 보니 열 받네요.”

흥국생명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김득의(47) 전 흥국생명노조 수석부위원장. 그는 2005년 1월 흥국생명 정리해고의 근거가 됐던 손익계산서와 결산현금흐름표를 최근에 다시 봤다. 가슴 한편에 울컥함과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흥국생명 정리해고 당시 ‘회계축소’ 의혹이 제기됐다. 흥국생명은 2004년 당기순이익 감소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당기순이익 감소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책임준비금 적립액의 급격한 증가였다. 전년보다 2천428억원이나 늘어났다.

책임준비금 적립액은 보험금 지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험사들이 의무적으로 쌓아 두는 돈이다. 2004년 흥국생명 지급여력비율이 동종업종 평균에 비해 낮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규모의 보험사와 비교하면 낮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회사가 갑자기 책임준비금 적립액을 대폭 늘려 당기순이익을 떨어뜨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의 권고와 달리 무리하게 적립액을 늘렸다는 증언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행정소송에서는 긴박한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해고로 최종 판결났다.

김득의 전 수석부위원장은 “화도 나지만, 공시된 자료뿐 아니라 쌍용차지부처럼 더 많은 자료를 분석해 대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했다.
 

 


“책임준비금 과다 적립해 당기순이익 줄여”

이달 7일 쌍용차 정리해고를 무효로 판결한 서울고등법원이 회사측의 회계조작을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 그간 정리해고가 진행된 사업장의 회계조작이나 재무제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회사측이 정리해고 근거를 만들기 위해 회계를 조작하거나 이익을 축소하는 것이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얘기다.

쌍용차처럼 감사조서와 감사보고서를 조작한 정도는 아니지만, 흥국생명 정리해고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제기한 회계문제도 그냥 넘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흥국생명은 2004년 217명을 희망퇴직시킨 데 이어 이듬해 1월에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21명을 정리해고했다. 2003년 530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이 2004년 270억원으로 급감한 것을 주요 이유로 들었다.

당기순이익 감소만으로 구조조정을 한 것도 논란거리였지만, 당기순이익 감소를 초래한 책임준비금 적립액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 쟁점이었다. 2003년 1천616억원이었던 적립액은 2004년 4천44억원으로 2.5배 증가했다. 책임준비금 적립액에 포함되는 미보고발생손해액(IBNR)의 증가를 놓고 의혹이 쏟아졌다. IBNR은 보험회사에 보고되지 않은 사고에 대해 나중에 지급될 보험금 추정액을 말한다.

흥국생명은 2004년에 120억원의 IBNR을 적립했다. 그런데 IBNR은 여러해에 걸쳐 나눠 적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 흥국생명이 3년에 걸쳐 IBNR을 적립했다면 2004년 당기순이익은 194억원만 감소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5년에 걸쳐 회계에 반영했다면 178억원이 감소한다. 2004년 손익계산서에 명시된 당기순이익 감소액 270억원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다.<표1 참조>

주목되는 것은 금융감독원이 3년에서 5년에 걸쳐 IBNR을 나눠 적립하라고 흥국생명에 권고했다는 사실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2005년 노조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2004년 흥국생명의 영업수익은 1천946억원 늘어났는데, IBNR 적립을 포함한 책임준비금 적립액 증가로 영업이익은 42억원 줄었다. 금감원 권고대로만 했더라도 영업이익 감소를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김득의 전 수석부위원장은 “의도적으로 흑자를 줄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석연치 않은 제조원가 부풀리기

피에스엠씨(옛 풍산마이크로텍)도 회사측이 정리해고를 위해 회계장부상 부실을 고의적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곳이다.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반도체업체였던 피에스엠씨는 2011년 11월 266명의 직원 중 58명을 정리해고했다. 행정법원은 지난해 5월 회사의 해고회피 노력부족과 불공정한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 노조와 성실한 협의 미실시 등을 이유로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다.

항소심에서 새롭게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제조원가 명세서에 명시된 제조원가 상승의 적정성 여부다. 회사는 2010년을 제외하고 매년 매출원가(총제조비용)가 매출액을 상회한 것을 구조조정의 주요 이유로 들고 있다.

피에스엠씨의 2011년 매출원가는 2010년보다 24억2천만원 줄었다. 같은 기간 노무비가 16억7천만원 절감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1년 제조원가는 올라갔다. 매출원가에서 공제하도록 돼 있는 기말재공품 재고액이 2010년에 비해 현저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기말재공품 재고액은 회계연도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회사에서 출고되지 않은 제품을 말한다. 피에스엠씨에서는 2007년 이후 2010년까지 매년 110억원에서 90억원의 기말재공품 재고액이 유지됐는데 정리해고 시점인 2011년에는 38억원으로 급감했다. 전년과 비교하면 53억원이나 차이가 났다. 매출원가에서 빼도록 돼 있는 항목이 급감했으니 제조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표2 참조>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53억원에 달하는 재공품이 정상적으로 출하됐다면 매출액과 이익이 당연히 올라가야 한다”며 “줄어든 재공품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도 오리무중”이라고 주장한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평균적으로 유지돼 온 기말재공품을 2011년에 한꺼번에 처리한 이유에 대해 합당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회계자료를 제출하라는 노조 요구에 회사측은 계정별 원장을 제공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파악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일반적으로 엑셀파일을 통해 쉽게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계정별 원장을 굳이 손작업을 거쳐 문서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는 “회사측의 회계자료 타당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방대한 자료와 씨름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쌍용차지부, 조작된 감사조서에서 자산가치 축소 증거 찾아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은 서울고법에서 회사의 회계조작을 인정받기까지 기나긴 시간 절망과 싸워야 했다.

쌍용차지부가 회사의 회계조작을 의심한 것은 정리해고에 반발해 공장점거 파업에 들어가기도 전인 2009년 5월이었다. 정리해고 대상이었던 한 사무직 노동자가 지부를 찾아와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다. 2008년 말 쌍용차의 자산을 재평가했던 안진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가 자산가치를 깎아내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확실한 물증을 찾지 못한 지부는 2012년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같은해 금융감독원도 감리 결과 “쌍용차 재무제표에 위반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지부는 지난해 3월께 안진회계법인이 1심 법원에 제출했던 감사조서를 입수했다. 감사조서는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한 기초자료인데, 영업비밀이 담겨 있다는 이유로 군데군데 삭제되고 까만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지부와 변호인단, 공인회계사는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조서와 보고서를 비교한 끝에 물증을 잡았다.

안진회계법인이 미래의 매출수량을 추정하면서도 후속차종 판매수량을 전부 배제해 유형자산 손실액을 5천700억원 과다 책정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기업회계기준에 맞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조서와 보고서 내용에 차이가 있다는 점, 1심 법원과 2심 법원에 제출된 조서도 각각 다르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회계조작을 금지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었다.

“부실한 회계감사 통한 정리해고 많을 것”… “노동자에 회계사 지원하라”

쌍용차 회계조작 사례를 보면 흥국생명이나 피에스엠씨와는 차원이 다르다. 흥국생명과 피에스엠씨는 공개된 자료에서 의혹을 찾은 반면, 쌍용차는 노동자들이 보기 어려운 감사조서에서 회사 손실을 부풀린 정황을 찾아낸 경우다.

흥국생명 해고자인 김득의 전 수석부위원장은 “정리해고 뒤 법정다툼에서 공개된 자료만을 분석해 방어적인 논리에 급급했던 것 같다”며 “쌍용차처럼 숨겨진 자료를 찾아내 회사가 매각될 경우 가치를 분석했다면 더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회계법인이 기업들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부실한 회계감사 자료를 근거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쌍용차 사례처럼 숨겨진 자료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쌍용차 회계자료를 분석했던 김경율 공인회계사(미래세무회계사무소)는 노조가 감사조서를 입수해 정리해고에 대응할 것을 권했다. 김 회계사는 “개인적으로는 쌍용차를 포함해 감사조서를 입수해 대응한 정리해고 사건은 모두 이겼다”며 “정리해고 전에 회계사를 통해 계량된 분석을 한 뒤 분식회계 여지를 차단하고, 정리해고 뒤에는 감사조서를 확보해 소송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조가 손쉽게 회계사를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을 맡고 있는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구조조정을 하기 전에 노조가 회계사의 지원을 받아 회사 경영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전 노동자에 회계사 지원하는 프랑스

비용은 사용자 부담…자료제출 거부하면 처벌



회계조작을 통한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서울고법 판결은 24명의 쌍용차 노동자·가족의 희생과 사회적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관계자들과 공인회계사의 집요한 추적도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공장점거 농성 때부터 회사의 회계조작을 의심했던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은 “노동계가 지금부터라도 회계 전문가를 양성해 기업의 무분별한 정리해고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계 분야는 전문성을 갖춰야 함에도 노동계는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재무제표 분석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관심이 적을 뿐만 아니라 공인회계사와의 협업 경험도 거의 없다.

일부 회계법인들은 기업을 감사하는 역할보다 돕는 데 치중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기업이 회계법인을 마음대로 고르는 데다, 깐깐한 감사를 하는 회계법인은 고사되는 구조 탓이다. 쌍용차 정리해고에 안진회계법인·삼일회계법인·삼정KPMG 등 국내 3대 회계법인이 관련됐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기업과 회계법인이 공생을 해 온 셈이다.

노동계 편에서 기업의 회계조작을 조사하거나 제대로 된 감사를 하는 공인회계사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회계시장이 양극화되면서 회계법인들의 적자가 늘어나고, 변호사와는 달리 친노동으로 한 번 찍히면 업계에 발붙이기 어려운 구조다.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제도개선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프랑스를 좋은 사례로 든다.

프랑스에서는 50인 이상의 기업에서 10인 이상 해고할 경우 기업이 제출한 자료와 해고계획의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공인회계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비용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노동자 대표는 공인회계사를 선택할 수 있고, 사용자는 개입할 수 없다. 노동자가 선정한 공인회계사의 자료제출 요구를 사용자가 거부하면 업무방해죄로 처벌받는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구조조정 전에 노동자에게 정확한 기업정보를 제공하고, 회계법인 시장의 양극화와 공인회계사의 역할 제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노동계는 양심적인 회계사 영입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정부는 프랑스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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