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오후 전북 정읍시의 한 오리농장에서 공무원들이 조류독감 확산 방지를 위한 오리 살처분 작업을 진행했다. 이날 처분된 오리는 2만5천여마리다. 윤성희 기자
▲ 윤성희 기자

지난 18일 오후 전라북도 정읍시의 한 오리 사육농장. 축사 안에 선 흰 방제복 차림의 공무원들 사이엔 침묵이 깔렸다. 오리들은 목청이 터질 듯 울어댔다. 공무원 10여명이 파란 비닐을 땅 가운데 깔았다. 그 위로 수백 마리의 오리들을 몰아넣었다. 오리들이 퍼덕거리자 털이 사방에 날렸다.

“하나, 둘, 영차!” 공무원들은 일제히 비닐을 들어 올려 오리들을 덮어씌우고 공기가 새지 않도록 봉했다. 그 안으로 이산화탄소(CO2) 가스가 주입됐다. 질식사 살처분 과정이다. 비닐 속에서 오리들이 서로 짓눌리며 몸부림쳤다. 꽥꽥대는 울음소리가 비닐을 찢을 듯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그것도 잠시, 5분쯤 지나자 오리들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이내 멈췄다. 운반차가 죽은 오리들을 축사 뒤쪽으로 실어 날랐다. 사체는 축사 뒤에 준비된 열가소성 플라스틱(PVC) 통에 담겨 발효과정을 거친 후 처리장으로 보내진다. 운반차는 통 주위에 콘크리트를 붓듯 오리 사체를 쏟아냈다. 이를 공무원들이 통 안에 쓸어 넣었다. 이날 오후 이곳에서만 2만5천여마리의 오리들이 살처분당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이날 조류독감(AI) 살처분 현장에서 방역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을 만났다.

정읍서 공무원 1천여명 27만마리 살처분

조류독감 사태가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강력한 방역에 나선다며 두 차례 이동중지 명령을 내리고 예방적 살처분 범위도 발병 농가 반경 500미터에서 3킬로미터까지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380만마리의 닭·오리 등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그러나 정작 바이러스 확산은 막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방역작업에 동원된 공무원들의 피로도는 한계에 다다랐다.

지난달 21일 조류독감 발병이 확인된 정읍지역의 공무원들은 한 달째 방역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공무원 1천100여명이 그간 살처분한 오리·닭은 무려 27만마리다.

이날 농장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모두 피로를 호소했다. 김범중(가명)씨의 말이다.

“밤에 술 한잔 먹어야지, 안 그러면 잠을 못 자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하죠? 밤에 오리 울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니까요. 가스 주입하면 오리들이 괴로워하면서 죽잖아요. 동물이 죽으면 항문이 열리면서 피나 대변이 나와요. (이동 과정에서) 사체가 차에 깔려 터지고…. 그런 거 보는 게 힘들죠. 식욕도 떨어집니다. 살처분 작업이 중노동이거든요. 하고 나면 허기가 지는데도 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때워요. 찌개 같은 거 끓여 봤자 삼키기도 힘들고…. 토해 버리죠.”

그의 뒤에서 한 동료가 지나가듯 말한다. “우린 다 지옥 갈 사람들이야.”

무엇보다 과로로 인한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이영우(가명·31)씨는 “고유업무와 방역현장 지원·방역초소 야간근무·살처분 작업을 돌아가면서 하고 있어 주말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감염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당일 처리해야 하니까 오후건새벽이건 나가야 합니다. 그거 하고 또 사무실로 돌아가 야근하면서 밀린 업무를 처리합니다. 지난 설에도 설날 당일 빼고는 계속 살처분 작업을 했어요.”

과로와 트라우마에 공무원들은 울고 싶지만…

노동환경도 불안했다. “대부분 농장이 구식이라 독한 가스나 분뇨가 많이 차 있어요. 일단 토하고 들어갈 정도라니까요. 조류독감 외에도 다른 감염 위험도 있을 거 같아요. 방역이 끝나면 옷을 소독하고 몸도 싹 씻고 집에 가지만 가족한텐 찝찝하니 밤에 물 끓여다 내 옷을 따로 빨아요. 또 피곤하면 몸이 약해지잖아요. 한 분은 어느 날 새벽 살처분 작업을 하다 갑자기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거예요. 머리에 생긴 수포가 악화돼 터졌는데 타미플루 성분 때문에 피가 안 멈추더군요. 결국 2~3주 입원했죠.”

현재 살처분 작업을 하는 공무원들의 건강대책은 현장 투입 전 타미플루를 복용하거나 독감예방접종을 맞는 것 정도다. 방역업무 중 부상이나 병을 얻어도 별다른 보상규정이 없다. 다만 살처분 작업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공무원들이 늘어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와 소방방재청이 심리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임채영(44)씨는 “타미플루는 1주일 뒤에나 약효가 나타나서 그동안은 현장에 나오면 안 된다”며 “하지만 살처분이 계속되고 인력은 부족하니 바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국립병원에서 심리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한다지만 직원들이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너무 바빠 찾아가기도 어렵다”며 “치료 후 의료기록이 남으면 민간보험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다들 상담을 꺼려한다”고 토로했다. 공무원들은 1회당 평균 4~6시간에 걸쳐 살처분 작업을 하지만 휴식을 위한 공간이나 시간은 따로 보장받지 못한다. 대체휴가는 휴일 8시간 이상 근무해야만 받을 수 있다.

4~6시간 살처분 뒤 대체휴가는커녕 휴식도 '언감생심'

사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 가축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공무원들이 방역작업에 투입되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대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공무원노조(위원장 김중남)에 따르면 2011년 구제역 방역작업에 투입된 공무원 중 9명이 사망하고 152명이 상해를 입었다. 당시 2~3교대로 방역작업에 무작정 투입돼 직접 소를 살처분하고 고유업무까지 처리해야 하는 과정에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탓이라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정신적 피해도 컸다. 2012년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의 ‘구제역 방역에 참여한 공무원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살처분과 매몰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 406명 중 34.5%(140명)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에 해당했다. 경증 이상의 우울을 경험한 사람도 16.2%(66명)로 나타났다. 이원경 공무원노조 상주지부장은 “당시 상주에서 한 명이 과로로 사망했으나 그 후 별다른 개선조치가 취해진 건 없다”며 “이번 조류독감 사태를 보면서도 조마조마하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축산농가들의 참여를 유도하거나 임시인력을 충원하는 등 공무원들의 부담을 완화시킬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은 "긴급상황에서 개인이 알아서 대응하긴 어렵다"며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공무원들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과장은 "며칠 작업한 뒤엔 그만큼 쉬게 해 주는 식의 휴식기간을 보장하고 작업 중 감염증상이나 건강 이상증상이 나타날 경우 빠른 치료와 작업 후 심리상담 프로그램 제공 등 세 가지 사항을 매뉴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작정 살처분은 그만, 재난대비시스템 전환 시급

공무원들은 재난대비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일호 정읍시공무원노조 위원장은 “현재 정부 지침에 따른 예방적 살처분에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고 있지만 그 책임은 지자체에 떠넘겨지고 있다”며 “각 지자체들은 당장 여름 수해복구비용을 당겨쓰고 있어 재난에 취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과 방역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읍시노조는 △각종 가축전염병을 상시적으로 총괄·자문할 수있는 전문기구 설립 △농가보상금 및 살처분 비용에 대한 국비 지원 확대 △방역기간 중 가금류 입식 금지 등 체계적 방역대책 수립을 위한 법 개정 △살처분 전문인력 확보 △철새에 대한 조류독감 모니터링체계 구축 △조류독감 관련 축산농가의 경영안정대책 조기 마련과 위탁농가 피해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공무원노총(위원장 조진호)은 지난달 조류독감 등 재난·재해 확산방지 대책과 관련한 노사협의회 개최, 방역작업자 처우개선과 인력확충을 안전행정부에 요구했다. 공무원노조도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노조를 비롯한 모든 공무원단체들과 협의를 통해 재난관리대책을 수립하자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날 오리를 처분하고 나온 임채영씨는 "정부가 대책 없이 무작정 잡아 죽이라고만 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할지 모른다는 게 가장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조류독감 원인도 규명 못했는데 공무원으로 때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오염지역 반경 3킬로미터까지 살처분을 하게 되면 앞으로 우린 100만마리는 더 죽여야 해요. 현재 인력으로는 감당 못합니다. 병에 걸리지도 않은 생명을 무조건 죽인다는 게 진짜 사람이 할 짓은 아니잖아요. 진짜 아니에요. 정말 이제는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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