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비전형근로자보호방안연구위원회의 최종보고서 내용이 알려졌다. 요약하자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정 △서면계약 체결·부당 계약해지 제한·보수지급 원칙·휴가 등 개별적 권리 규정 △단체의 조직·가입의 자유·집단적 협의 및 협정 체결권 인정 △쟁의행위 금지 △분쟁조정 및 중재제도 도입 등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특별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직업군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노무현 정부 시절의 정부안(김진표 의원안)이나 18대 국회 시절 민주당 입법안(김상희 의원안)과 대동소이하다.

노사정위안의 문제점에 대해 비판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번에는 생략하기로 하자. 오히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노사정위 연구위원회의 인적 구성이다. 연구위원의 면면을 보면 그동안 학계에서 자유주의적 견해를 보였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래서 노동계로선 연구위원회의 논의 결과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특수고용 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고, 노동 3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무현·이명박 정권과 다르지 않은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과거의 노사정위가 공익위원들 간에도 의견이 달라 단일안을 제출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함께한 이번 연구위원회는 단일안을 내놓았다.

문제가 많은 노사정위안 역시 입법화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정권에게는 이마저도 ‘추진해서 공연히 논란만 일으킬 부담이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2014년 고용노동부 대통령 업무보고를 봐도, 특수고용 중 6개 직업군에 한해, 그것도 노동자의 보험료 부담을 전제로 실효성 없는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한다는 것 외에 별다른 정책이 없다. 정부도 문제점을 시인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례조항 중 일부(적용제외 신청)를 개정하는 안조차 새누리당의 반대로 환노위에서 표류 중이다. 한마디로 권력과 자본에게는 ‘지금 이대로’가 가장 속 편한 것이다.

노사정위안은 실제 입법 추진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특수고용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의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일정한 공감대’를 확인했다는 것에 그 진짜 의의가 있다. 즉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파업권은 절대 줄 수 없으니 이것은 포기하고, 몇 가지 개별적 보호조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 최대치라는 제안을 노동계에 던진 것이다.

그런데 잠깐만. 이런 논법이 비단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에선 공무원·교사도 일부만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고, 단체교섭은 해도 단체행동은 금지되며, 어렵게 단체협약을 체결해도 그것을 강제할 법적 수단은 없다. 공무원과 교사는 첫 단추를 잘못 낀 ‘특별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한다면, 철도를 비롯한 필수공익사업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특별법이 아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적용을 받지만, 2006년까지는 ‘직권중재’라 불리던 합법적 쟁의행위를 사실상 봉쇄하는 조항이 있었고, 이후에는 파업은 해도 사용자의 업무에 지장을 줘서는 안 되는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파업권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공공부문’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민간부문은 또 어떠한가.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과 18일로 예정돼 있던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선고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이로써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한 뒤 10년이 넘게, 2010년 대법원이 완성차 사내하청은 위장도급이라고 판결한 뒤 4년이 넘도록, 노동자들의 권리는 실현되지 않고 있다. 반면 ‘진짜 사용자’에 맞서 정당한 파업을 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13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은 신속하게 내려졌다. 이들이 ‘비정규직’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정규직은 어떠한가. 이달 7일 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반가운 판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에 맞선 파업은 불법"이라는 법원의 철칙이 깨진 것은 아니다.

결국 특수고용이건, 공무원·교사건, 사내하청이건, 정규직이건 불문하고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한민국 노동법의 진심이요,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공유하고 있는 입장인 셈이다.

사족을 하나만 덧붙이자. 지난 13일 대법원은 노조법상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다르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달리 말하자면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파업권을 포함해 노동 3권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을 비롯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법·제도가 뭐라 하건) 노조를 만들고 부당노동행위에 저항하고 단체행동을 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판결이었다. 노동 3권은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는 역사의 상식을 재확인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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