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공단 밀집지역에 있는 중소기업 D사. 이 회사는 올해부터 400%의 정기상여금을 없애는 대신 기본급을 시급 4천860원에서 6천180원으로 올렸다. “임금총액은 변하는 게 없다”는 회사쪽 설명에 “그러려니” 했던 노동자들은 첫 월급을 받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동자들이 올해 처음 받은 월평균 급여는 200만9천118원이다. 지난해 191만8천566원보다 많았다. 그런데 기존 정기상여금을 그대로 유지하고 시급을 올해 최저임금(5천210원)으로 적용하면 205만6천734원의 월평균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회사 제안을 수용하면서 5만원 정도 적게 받게 된 것이다. 만약 대법원 판결대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계산하면 그 차액은 더욱 커진다.

D사에 다니는 한 노동자는 “일요일 특근을 뛰어야 정기상여금을 받을 때만큼 돈을 벌 수 있게 됐다”며 답답해했다.

“임금총액 맞출 테니 상여금 없애자”

17일 노동계에 따르면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통상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 판결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정기상여금과 고정수당을 최대한 줄이려는 재계의 움직임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D사 노동자들은 사장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상여금을 부활시켜 수당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회사에 협상을 요구할 노조도 없다. D사 노동자들과 상담한 박준도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사장들이 새로운 임금삭감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며 “노조가 없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비슷한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도 화성시 소재 산업용 테이프 제조회사인 보우테이프 노동자들은 D사와 비슷한 낭패를 겪을 뻔했다가 노조의 도움으로 화를 모면했다. 지난달 22일 회사는 490%의 상여금을 없애고, 기본급의 200%를 줬던 휴일근로수당을 150%로 삭감하는 내용으로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로 매월 일할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면 월평균 70시간을 잔업·특근하는 보우테이프 노동자들이 받는 월임금은 209만6천507원에서 232만1천522원으로 껑충 뛴다. 부담을 느낀 회사측이 상여금을 없애고 휴일수당 삭감을 시도한 것이다. 회사는 기본급을 10만원 정도 인상할 것이라는 소문을 흘렸는데, 그렇게 하면 월임금은 오히려 179만8천690원으로 떨어진다.

꼼짝없이 임금을 깎일 뻔했던 보우테이프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 갱신을 거부하고 최근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대법원과 고용노동부가 통상임금을 소정근로의 대가로 보지 않고 형식적 기준을 들이밀어 판단하니까 사용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임금을 하향시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부 지침 탓에 20% 임금삭감, 억울하면 소송하라?

노조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노동부의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때문에 노사합의가 뒤집어진 사례도 있다.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Y기업. 회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 산정범위를 확대했다. 노조의 요구로 종전에 기본급과 식대 직급수당·영업수당만 반영했던 것을 정기상여금 150%와 근속수당까지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회사는 이런 내용이 담긴 대표이사 명의의 공문을 사내에 게시하고 지난달 임금부터 적용했다. 이에 따라 시간외근로가 잦은 부서 직원들의 임금이 평균 20% 가까이 상승했다.

그런 가운데 노동부가 지난달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내놓자 회사의 태도가 돌변했다. 회사는 노동부 지침에서 "재직자에 한해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겠다고 통보했다.<사진 참조>

대법원 판결로 올랐던 임금이 한 달 만에 다시 삭감된 셈이다. Y기업노조 관계자는 “노동부 관할지청에 문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노동부 지침만 되풀이하면서 억울하면 소송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는 “대법원 판결 취지와는 달리 노동부가 특정 재직시점에 주는 임금항목을 정기상여금까지 확대하면서 예견됐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학태 기자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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