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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위기 조작법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보통은 경영위기라는 평가는 사업주들에게 달갑지 않은 이야기다. 회사 신용이 낮아져 외부차입에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져 시장에서 판매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때로는 경영위기라는 평가를 사업주들이 앞장서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한국에서 이는 보통 정리해고나 외국인투자기업의 자본철수 전에 이뤄진다. 정리해고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또는 이른바 ‘먹튀’에 대한 사회적 명분을 찾기 위해서다.

2008년 쌍용자동차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이뤄졌다. 이달 7일 서울고법이 쌍용차 해고무효소송에서 인정한 판결문을 보면 쌍용차의 주인이던 상하이차와 상하이차 자본철수 이후 뒤처리를 맡았던 법정관리인이 먹튀와 정리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벌인 드라마 같은 일의 전모가 잘 나와 있다. 이미 수차례 이야기한 내용인데, 짧게나마 판결문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본다.

먼저 법원은 2009년 1월 경영상황이 법정관리로 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법정관리 신청의 직접적 이유였던 현금유동성 위기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하이차의 의지가 있었으면 충분히 현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고, 심지어 상하이차가 자본철수를 단행한 뒤에도 현금화가 가능한 부동산이 다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기획부도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법원은 대규모 정리해고의 근거가 된 재무위기 역시 심각하게 과장됐다는 것을 인정했다. 상하이차가 떠난 뒤 법정관리인과 회계법인은 쌍용차의 부채비율이 매우 높고 수익성이 낮아 인력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게 잘못됐다는 것이다. 재무구조 악화의 결정적 원인이 된 5천억원에 달하는 유형자산에 대한 평가손실 부분의 회계조작 여부가 쟁점이었다.

2008년 12월 1천억원 상당이던 적자가 7천억원으로 뻥튀기 된 근거는 정말로 황당한 것이었다. 쌍용차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진회계법인과 쌍용차 경영진은 2008년 11월 렉스턴·로디우스·카이런·액티언 등 쌍용차의 주력제품 대부분이 2010년 전후로 단종되고, 후속으로 아무런 신차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다. 그리고는 이런 가정을 전제로 지금 사용하는 기계설비들이 회계 장부에 있는 것보다 사실은 효용이 없다고 평가해 5천억원이 넘는 손실을 회계에 산입, 부채와 당기순손실을 2007년보다 세 배 가까이 증가시켜 놓았다.

자동차 업계에서 듣도 보도 못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어떤 자동차 회사도 후속 신차 없이 만들고 있는 자동차 제품의 80% 가까이를 단종하지는 않는다. 보통 신차 계획이 늦춰지는 경우 외형과 성능 일부를 변경하는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 쌍용차 경영진과 안진회계가 가정한 전제는 사실상 회사 문을 닫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야기란 것이다.

쌍용차 경영상황을 보자. 로디우스는 부분 변경 모델 투리스모로 이어졌고, 렉스턴 역시 렉스턴W로 부분변경돼 지금도 잘 생산되고 있다. 안진회계법인이 5천억원이 넘는 평가손실을 계산할 때 가정했던 생산량보다 로디우스와 렉스턴은 4배, 카이런은 2배, 액티언은 5배 더 생산됐다.

쌍용차 경영진은 법원에서 당시 상황이 워낙 불확실해 신차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안진회계법인은 경영계획은 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 자신들은 계산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참 무서운 이야기다. 왜냐하면 생산직의 절반 가까이를 해고할 정도의 경영위기가 어이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런 방식이 통용된다면 앞으로 사업주들은 정리해고를 할 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업계획을 신제품 없이 구제품만 가지고 가다 2~3년 후 대부분 단종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해당 사업계획에 따라 유형자산 재평가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제조업은 한 달 만에 유형자산의 절반 이상을 손실로 처리해 실제 흑자가 나더라도 장부상으로는 적자로 뒤바꿔 놓을 수가 있다. 쌍용차와 안진회계법인의 논리대로라면, 현대차도 차종 단종 계획만 적어 놓은 사업계획서 한 장이면 20조원의 유형자산 중 10조원 이상을 손상차손으로 처리해 당장 9조원 순익을 회계상 1조원 적자로 만들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정리해고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된다.

쌍용차 정리해고 소송을 맡은 법원도 이 같은 우려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2009년 쌍용차식 정리해고가 법적 근거를 얻는다면 한국에서 경영위기를 만들지 못할 기업이 없고, 그것을 근거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해도 법적 하자가 발생할 기업이 없게 된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두 가지에 대한 발본적인 개선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추상적이어서 사업주 편의대로 이용되는 ‘경영상 위기’ 조항을 좀 더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둘째, 회계법인과 사업주들의 고무줄식 회계와 이를 이용한 불법행위를 좀 더 철저하게 규제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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