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그럴 줄 알았어.”

“회사 대표는 지침이 나온 후부터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아.”

“그러게 노동부가 노동자 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립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노동부가 어디 있어, 고용노동부라니까.”

“노동부 앞에 고용이 붙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니까.”

노동전문가나 활동가들의 토론 중 나온 발언이 아니다. 5일 춘천지법에서 통상임금 재판이 열렸다. 이 대화는 노동자들이 지난달 노동부가 펴낸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관해 비판한 내용이다. 노조위원장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최근에 퇴직한 사람들이었다.

지난달 말 노동부는 또 하나의 ‘지침’을 냈다. 그런데 의외로 현장은 조용하다. 물론 지침 내용이 훌륭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기대조차 없었는데 실망이 웬 말이겠는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현장 노동자들은 ‘지침’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생소한 말이었다. 헌법·법률·대통령령 정도만 경험했으리라. 그런데 2010년과 2011년 타임오프·교섭창구 단일화에 관한 개정 노조법이 시행되면 노동부 지침(매뉴얼)의 위력을 절감했다. 헌법이나 법률에 우선하는 지침이었다. 하지만 지침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법원은 아무런 법률적 근거도 없는 지침의 위상을 밝혔고, 지침에 담긴 핵심적인 내용 또한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아픈 경험이었지만 노동자들은 더는 속지 않는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대법원의 판결까지도 바꿔 버린 지침이지 않는가. 노동자들은 지침을 무시하고 대법원의 후속 판결을 기다리는 게 빠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침이 앞으로 만들어질 법률에 반하면 그때는 또 무슨 말로 둘러댈지가 관심이란다. 한참 늦었지만 마침 여당과 야당에서 동시에 지침을 펴낸 절차와 내용에 대해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대화는 계속됐다. 정년을 마치고 요즘 재취업 교육에 열심인 전 위원장과 한 퇴직자의 말씀이다.

“재취업 교육을 위해 노동부가 지원하는 국비 집행이 엉망이야. 과연 그 많은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감독하지도 않는 것 같아.”

“내가 나서 그냥 고발해 버릴까.”

“모든 것이 우리가 낸 세금인데 답답하구만….”

이들의 대화에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고용정책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퇴직자 재취업부터 청년고용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다. 막대한 세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효율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업은 폐지하라는 말이다.

정곡을 찌르는 대안도 나왔다.

"차라리 최저임금을 올려 주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라니까."

올해 임금협상에서 연금 수령나이에 근접하도록 정년연장을 제안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위원장도 있었다. 정부가 무관심한 사이 현장에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살아갈 방도를 찾고 있었다.

꽤 긴 시간 이어진 대화였지만 어느 곳에서도 고용노동부에 대한 믿음을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노동부가 본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차라리 폐지하는 게 노동자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슴 아픈 지적도 있었다.

사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새롭게 꾸려진 노동부에 대해 적지 않은 이들이 노동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과거와 달리 학자 출신 장관이 취임을 했고,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노동공약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성숙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들은 이 같은 기대를 접은 지 오래다. 오히려 노동정책을 걱정한다. 노동부가 5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공기업·공공기관 노조를 탄압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일자리 통계만 부풀리고 있다.

필자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반성도 했다.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법률용어를 구사할 줄 아는 그저 사건 대리인일 뿐이었다. 조합원들의 노동과 현장에 대한 깊은 고민을 감히 따라간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조합원들에게 감사드린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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