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원 163명이 근무하는 제조업체 A사의 임금테이블은 기본급과 노사가 합의한 통상임금·기타수당·법정수당·상여금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노사가 합의한 통상임금은 직책수당과 면허수당·생산장려수당·근무제도개선수당 등이다. 기타수당에는 교대수당과 가족수당이 있다.

A사 노사는 통상임금에 포함된 수당과 기타수당의 지급요건을 ‘재직 중인 자’로 한정했다. 2·4·6·8·10·11월에 지급되는 정기상여금도 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

지난해 12월18일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과 이달 23일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따르면 A사의 모든 수당과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되는 임금은 초과근로 등을 제공하는 시점에 그 지급요건이 성취될지 여부가 불확실하므로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결국 A사의 통상임금 범위에는 기본급만 남게 된다.

#2. 직원 2만여명이 일하는 B은행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B은행 노사는 자격급과 직무급·중식대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왔다. 통근비와 복지연금·가정의달행사비·자기계발비는 기타수당으로 분리했다.

그런데 이들 수당의 지급요건은 모두 ‘재직 중인 자’로 한정돼 있다. 설과 추석에 지급되는 정기상여금 역시 재직자에게만 지급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노동부 지침상 B은행의 통상임금 범위에도 기본급만 남게 된다.

28일 노동계에 따르면 A사와 B은행의 경우처럼 임금항목에 ‘재직요건’을 명시해 통상임금 산정에 손해를 보게 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초과근로가 많은 사업장의 경우 제 수당과 정기상여금이 모두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면 임금감소를 피하기 어렵다.

임금교섭에서 노사가 개별 임금항목에 재직요건을 명시한 이유는 다양하다. 현실적인 권리구제의 대상을 재직자로 한정하는 기업별노조의 교섭관행이 첫 번째 이유다. 회사측이 매년 임금협상에서 발행하는 임금소급분을 중간퇴사자에게 지급하지 않기 위한 편법으로 재직요건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같은 이유로 등장하기 시작한 재직요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은 노동부 지침과 만나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재직요건에 따른 노동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일할지급’ 문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보도자료에서 “근로자가 특정 시점 전에 퇴직하더라도 그 근무일수에 비례한 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일할계산 등) 근무일수에 비례해 지급되는 한도에서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할계산 등의 방법으로 근무일수에 비례한 만큼의 임금을 받으면 고정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지침에서 ‘월할계산해 지급하는 임금’도 고정성이 인정된다고 해석한 바 있다. 당장 내일 퇴사하더라도 일할계산 또는 월할계산의 방법으로 사전에 확정돼 있는 임금이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원과 노동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A사나 B은행과 유사한 임금·단체협약을 갖고 있는 노조들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가급적 많은 임금항목에 “퇴직자에게는 ○○수당(또는 ○○상여금)을 일할(또는 월할) 계산해 지급한다”는 문구를 포함하면 된다. 노조의 교섭력이 강한 사업장에서 써 볼 만한 교섭전략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만만치 않은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임금·단체협약에 퇴직자 일할(월할)지급 요건을 추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노동부가 지난해 6월 100인 이상 사업장 1천곳의 임금구성과 상여금 지급기준을 조사한 결과 고정상여금 지급업체(59.1%) 중 퇴직자에게 일할지급(38.2%)이나 월할지급(6.2%)한다는 사업장의 비중은 크지 않았다. 반면 퇴직자에게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3.6%로 집계됐다. 퇴직자에게는 상여금이나 각종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혀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가 택할 수 있는 두 번째 교섭전략은 기본급 인상이다. 재직요건에 걸려 통상임금에서 빠지게 된 제 수당을 기본급으로 통합시켜 통상임금의 안정성을 높이고,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재직요건에 걸려 통상임금에서 빠지게 된 정기상여금이다. 제 수당보다 정기상여금의 금액이 큰 사업장이 많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노동조합은 소정근로의 대가로 평가되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킬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며 “정기상여금이라는 명칭에 구애받지 말고 노사가 협상을 통해 순수 상여금과 소정근로의 대가를 구분한 뒤 소정근로의 대가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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