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수장의 발언은 정부의 경제정책 변화의 신호이자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로 읽힌다. 때문에 민간기업은 물론 정부부처와 공공기관까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만큼 경제부처 수장은 발언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우는 예외다. 현 부총리가 입만 열면 난리다. 민심이 들끓고, 여야의 성토가 이어진다. 그의 최근 발언은 엽기적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카드사들의 개인정보유출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을 지적하는 민심이 확산되자 현 부총리는 지난 22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마치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현 부총리의 문제 발언은 이 자리에서 나왔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 금융 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냐.”

개인정보유출을 책임지고 카드사 대표와 임원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상황에서 감독 부실의 책임 있는 금융당국 수장이 국민 탓을 한 것이다. 개인정보유출 사태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발언을 한 셈이다. 이에 여야 모두 한 목소리로 현 부총리를 비판했다. 여당은 “개인정보유출 사태에 금융당국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며 “현 부총리의 발언은 성난 민심에 불을 지른 것”이라고 질타했다. 야당도 현 부총리 발언에 대해 "국민의 분노를 어리석다고 치부하는 오만과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누리꾼들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현 부총리를 성토했다. ‘현 부총리는 카드조차 써 본적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카드회사가 카드를 발행하면서 개인정보 사용 동의를 요구하는데 현 부총리는 이를 모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급기야 현 부총리는 23일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파문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되레 개인정보유출 사태와 현 부총리 발언을 계기로 경제팀 사퇴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현 부총리가 사면초가에 몰린 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현 부총리의 발언이 회자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와 누리집에선 ‘현오석 어록’이 떠돌고 있을 정도다.

현 부총리는 지난해 공공기관노조 위원장들과 모임에서 “파티는 끝났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질타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나온 발언이었다. 파티의 주역은 공공기관과 노조라고 우회적으로 지칭하며 개혁을 수용하라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방만경영으로 지적받은 공공기관에서는 낙하산 인사 시비가 일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잠시 주춤했던 공공기관장에 낙하산 인사들이 속속 입성한 탓이다. 그것도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캠프의 핵심 보좌진이나 여당의 전직 의원들이 낙하산을 타고 공공기관에 내려온 것이다. 파티는 끝났다는 현 부총리의 발언과 달리 공공기관 낙하산 파티는 끝나지 않은 셈이다.

사실, 막대한 부채는 공공기관이 정부 정책사업을 수행하거나 낮은 요금을 유지하느라 발생했다. 현 부총리가 지적하듯이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도에 넘는 임금과 복리후생비를 누린 탓이 아니다. 공공기관 부채는 500조원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공공기관 임직원의 임금과 경비는 부채규모의 1.2%에 불과하다. 지난 5년간 발생한 203조원의 공공기관 부채 가운데 89%는 정부재정 사업을 공공기관에 전가하면서 발생했다. 에너지시설투자 확대, 요금인상 최소화, 부실저축은행 지원 등이 공공기관이 정부사업을 수행한 대표적인 사례다.

그럼에도 현 부총리와 기획재정부는 정부정책의 실패를 거론하지 않은 채 공공기관노조에 대한 마녀사냥에만 열중한다. 시쳇말로 한 놈만 팬다. 그래야 정부는 책임을 면하거나 회피할 수 있다는 식이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 중에서 노조의 경영참여와 관련한 단체협약의 개선여부를 평가지표에 포함시킨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마치 공공기관 부채는 노조의 경영참여와 관련된 단체협약도 원인이라는 판단이다.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과 노조를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붙였던 현 부총리 발언의 연장선이다.

이처럼 현 부총리는 발언할 때마다 책임 회피로 일관하면서 늘 노조 탓이거나 국민 탓이다. 이러니 공공기관노조들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중점관리 공공기관 38개 노조가 정상화 대책을 반대해 노사교섭을 집단 거부하고, 9월에는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나선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공공기관 개혁은 노조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야지, 단체교섭권을 침해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흘러가선 곤란하다. 정부가 먼저 정책사업에서 비롯된 부채를 솔직히 인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공공기관 정상화는 공염불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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