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13누3285 요양불승인처분취소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1979년생으로 2003년 3월3일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교육원에서 1개월간 이론교육, 1개월은 현장실습을 한 이후 같은해 5월9일 정식 사원으로 채용돼 선박도장원으로 도장업무에 종사했다. 그해 5월9일부터 12월31일까지 약 8개월 동안은 터치업작업, 2004년 1월1일부터 2월8일까지는 스프레이 보조수업무를 하면서 도료·시너를 상시적으로 사용했다. 이후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이 발생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회사의 작업환경측정결과상 벤젠이 검출된 바가 없고, 근무기간이 잠복기보다 짧은 10개월이어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불승인처분을 했다. 그리고 행정소송 1심 판결도 ‘회사의 사업장에서 1997년 이후로 벤젠이 검출됐다는 자료가 없는 점, 원고는 사업장에서 10개월 정도 근무했는데 백혈병의 경우 잠복기가 2년 내지 5년 또는 2년 내지 3년 정도 된다는 보고가 있는 점’ 등을 들어 업무기인성을 부정하는 판결을 했다(서울행정법원 2012.12.26 선고 2001구단818판결). 이후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원심과 달리 원고의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의 업무기인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 바, 대상판결은 당해 서울고등법원 판결이다(서울고등법원 2013.12.18 선고 2013누3285 판결).

2. 사안의 쟁점

원고는 1심 진행 중 현재 위임받은 변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해임한 상태라면서, 당 사무소를 찾아와 소송을 맡아 줄 것을 의뢰했다. 진행 중인 사건을 맡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기존 법원의 백혈병의 인정 사례에 비춰 볼 때에도 대단히 어려운 사건이었다.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원고의 재직기간 중에는 벤젠 노출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 원고가 시너를 사용하는 도장작업을 통해서 벤젠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은 불과 10개월이다. 이는 작업환경의학에서 평가하는 노출기간인 최소 2년보다 훨씬 짧은 기간이다. 결국 이 사건은 최소 노출기간의 2분의 1도 안 되는 근무기간에 벤젠의 명시적 노출 증거도 없는 사안이다.

3. 당해 사건의 입증의 방법

가. 직업성 암 사건의 역학조사의 문제점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종인 경우에는 작업환경측정을 하고 이러한 결과를 기록 보고해야 하며, 해당 결과를 노동자에게 알려줘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사업장의 시설 및 설비를 개선해야 한다(산업안전보건법 제42조). 통상 사업장에서 발암물질에 의해 직업성 암이 발병했을 경우 가장 유력한 증거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1998년도 이후에는 이 사건 상병을 일으킬 수 있는 벤젠에 대한 측정결과가 없었다.

이는 2003년 7월 이전까지 10ppm 이하의 벤젠농도는 작업환경측정에서 ‘적합’으로 판단했고, 이 사업장의 경우에는 1997년도 ‘벤젠’에 대한 마지막 측정을 했는데 그 당시에도 “최대 5.0ppm~최소 0.9ppm"의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당시에는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1998년도 이후에는 벤젠에 대한 측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며, 이로 인해 원고가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이는 비단 원고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업장도 마찬가지이다. 원고의 산재신청에 대해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역학조사를 했으며, 그 결과는 결국 산재불승인의 근거가 됐다. 왜냐하면, 연구원의 역학조사는 이 상병을 유발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표를 근거로 판단하고 별도의 시료분석이나 측정은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 당해 사건에 있어 진행의 방향과 입증과제

결국 이러한 문제점은 소송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진다. 첫째, 벤젠 노출에 대한 간접적인 추정을 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와 당해 역학조사의 신뢰성을 깨뜨릴 수 있는가의 문제다.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은 첫 번째 부분에 대해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위법이 존재했다. 즉, “1997년 당시의 노출기준이 10ppm이므로 회사에서는 당연히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했으며, 이후 아예 벤젠을 작업환경측정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대상판결은 “1990년, 1991년, 1994년, 1997년 벤젠의 8시간 평균 노출농도는 3.2~7.9ppm으로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4조 제3항 별표3에서 제시되고 있는 벤젠의 작업장 허용 노출기준인 1ppm보다 높은 경우가 많았고, 소외 회사가 작업장에서 벤젠 농도를 확인하지 아니한 1998년 이후부터 새로운 노출기준이 적용된 2003년 7월 이전까지는 이러한 사정이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1990년대까지도 근로자들은 현행 기준인 1ppm 이상의 벤젠에 노출됐다. 더구나 작업환경측정은 직업병에 대한 판단근거를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공정에서 노출수준이 허용기준에서 크게 벗어나는지 보기 위해 1년에 한 번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업장에서 노출기준 이하인 경우에는 측정을 하지 않은 사례가 많고, 이러한 경우에 모든 위험부담은 노동자에게 전가됐다.

두 번째 입증은 결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의 신뢰성을 깨뜨릴 수 있는지 문제였다. 현재도 직업병 산재소송의 경우에 대부분 대학병원의 해당과에 대해서 감정촉탁을 하고, 이런 감정서를 근거로 판단하는 경향이 심하다. 뇌혈관계질환에 대해서는 신경과나 신경외과에, 근골격계질환에 있어서는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 직업성 암에 있어서는 직업환경의학과에 감정촉탁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업무상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이 비록 ‘의학적 인과관계’라는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는 주장에 비춰보더라도 신경과·신경외과·정형외과는 이러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과’가 아니다. 특히 이런 임상과에 있어서는 ‘직업병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이며, 병의 원인론을 직업적 원인에서 고찰하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법원 판사 다수가 직업환경의학과를 불신하는 경향은 시급히 개선돼야 할 과제다.

이 사건 원심에 있어서도 대학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서 ‘개연성이 있다’라는 회신을 받았으나 채택되지 못했다. 항소심에서 다시 직업환경의학과에 감정촉탁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하고, 역학조사를 한 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사실조회를 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1997년부터는 벤젠이 검출된 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1997년 이후 벤젠이 검출됐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고 해 중요한 오류를 스스로 인정했다. 즉, 회사는 1998년도부터 벤젠을 ‘유해인자’로 측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원은 “1998년도 이후에도 벤젠을 유해인자로 작업환경측정시 측정했으나, 벤젠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오인한 것”이다. 따라서 연구원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잘못된 작업환경측정’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했고, 이러한 주장이 대상판결에서 다행이 채택된 것이다.

다. 당해 사건과 노출기간에 대한 입증의 문제

통상 노동자의 직업병을 연구하는 분야인 ‘직업환경의학’에서도 백혈병의 잠복기를 최소 2년 내지 5년 정도로 보고 있다. 또한, 대법원에서 인정된 백혈병 사건을 보도라도 최소 노출기간은 1년7개월이었다.(대법원 2008.5.15 선고 2008두3821 판결) 결국 이는 법리적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의 문제였다. 이를 위해서 일단 원고의 노출기간이 10개월에 불과했지만, 원고의 근무현황표를 분석해서 ‘평일 연장근무가 1~2시간으로 상시적으로 있었던 점, 휴무일 기본근무가 많았던 점, 토요일 연장근무 4시간을 한 날 등’을 주장·입증했다. 또한, 질병의 면역성 문제와 원고에게 위험요인이나 유전력이 없던 점 등도 강조했다.

앞서 쟁점이 인정되더라도 노출기간의 문제는 상당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는데, 대상 판결은 직업병 인정 법리 즉,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대법원 2005.11.10 선고 2005두8009 판결, 대법원 2004.9.3 선고 2003두12912 판결 참조)’라는 토대 위에서 판단해 준 것이다.

4. 소결

당해 사건은 백혈병 사건에 있어 최단기 노출력으로 인정된 유일한 경우이며, 벤젠의 직업적인 노출 증거가 없어도 간접적인 노출을 추단해 인정한 측면에서 그 의미가 상당하다. 이런 점을 현실에서 투영해 본다면 답답하다. 즉, 일단 과도한 입증책임이다. 어떻게 노동자가 직업병 여부에 대한 입증자료를 가질 수 있는가이다. 둘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가 직업병 판단의 중요 자료로 채택되는 점이다. 지금까지 역학조사보고서와 달리 직업병이 인정된 경우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역학조사는 하나의 참고자료에 그쳐야 한다. 셋째, 업무상 질병에 대한 판단은 간접증거에 대한 종합적 판단, 즉, 법률상 상당인과관계성에 대한 판단이 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의학적 자료와 자문의사·역학조사·(의사 위주의)판정위원회라는 명목으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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