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세계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조만간 세계경제위기가 종결됐다는 선언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 미국 중앙은행 역시 올해부터 돈 풀기를 줄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경제위기 출구가 임박했음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한국경제 역시 외형적으로는 상당히 경제위기 충격을 벗어난 모습이다. 국내외 경제기관들은 4% 내외의 경제성장률을 점치기도 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경제는 위기에 빠진 적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세계금융위기 시기 현대차와 삼성전자는 약간의 매출정체를 겪었을 뿐이었다. 30대 재벌 중 일부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98년 외환위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한국에서 경제위기의 충격을 고스란히 재벌경제에서 배제된 노동자·서민이 흡수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노동자·서민들이 경제위기를 흡수해 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노동자·서민에게 위기를 전가하는 체제의 능력 때문이란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위기 완충 작용을 노동시장 측면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2천500만 취업자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700만명이 자영업자다. 자영업자 중 고소득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나 대체로 80% 정도는 임금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하위에 있다고 간주된다. 한국에서 이들이 제공하는 저가 서비스가 한국의 저임금 구조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이들은 이번 경제위기 기간에 가장 혹독한 고통을 겪었다.

자영업자수보다 많은 약 720만명의 임금노동자는 최저임금미만이거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거나, 사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이다. 비공식노동자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1천800만 임금노동자의 40%에 육박한다. 비정규 노동자부터, 영세사업장의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이 이 그룹에 있다. 경제위기 시기 이들이 가장 먼저 해고된다. 소리 없이 해고돼 스텔스 구조조정이라고도 불린다. 이들은 노조로 조직돼 있지 않고, 철저하게 개별화돼 있는 경우가 많아 고통이 사회적으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

소기업으로 분류되는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경제위기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고통을 겪는다. 다수의 민간서비스업체와 공단의 제조업 기업들, 대기업 중견기업에 사내 도급을 맡고 있는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수가 이른바 비공식노동자이며, 650만명 정도가 그나마 공식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은 1% 내외에 불과하다. 180만명에 달하는 100~300인 미만 중기업 노동자들의 상황은 다소 낫지만 그래도 경제위기에 직접적으로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흔히 노조를 통해 보는 사업장들은 재벌대기업과 이들의 1차 벤더, 그리고 중대형 공공기관이다. 약 250만명 정도이며 45% 가까운 노조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이들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번 경제위기 기간 그나마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양보교섭으로 고용안정이 달성됐고, 심지어 고용조정에 나서는 경우도 퇴직을 앞둔 다수의 종사자로 인해 희망퇴직만으로 이를 달성할 수 있었다.

결국 한국은 경제위기를 목소리 없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에게 전가함으로서 원활하게 작동하는 체계라는 것이다. 재벌들은 그래서 위기에 강하다. 반대로 경제위기가 발발할 경우 취업자의 84%에 해당하는 2천100만 자영업자·비공식노동자·소기업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제도적 보호도 없이, 노조의 보호도 없이 그야말로 생존권 위기에 처한다. 취업자 84%가 재벌을 위해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다.

민주노조운동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현재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조운동은 이 노동시장 구조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부분에 집중적으로 조직돼 있다. 박근혜 시대의 민주노조운동의 진짜 투쟁은 이런 점에서 조직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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