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이 나온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대법원이 현장의 의문을 완벽히 해소해 주리라고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오히려 판결이 현장의 혼란을 더 크게 불러오고 있다. 애매한 판결 탓으로 아전인수 격 해석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유수의 법무법인과 전문가들이 개최하는 설명회가 이어지지만 정작 핵심 쟁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새로운 통상임금 지침을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론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침이 시행된다면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노동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침 내용이 제도로서 규범력을 갖기도 어렵다.

이에 따라 통상임금 판결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는 쟁점에 관해 나름의 의견(또 다른 아전인수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을 제시해 본다. 먼저 이른바 신의칙에 관한 주장이다. 아마 대다수 노동자들은 신의칙이란 용어를 처음 접했을 것이다. 대법원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고 합의에 반해 통상임금를 청구할 경우 회사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그 청구가 신의칙에 의한 제한을 받는다고 했다. 이러한 법리가 과연 우리나라 법체계에서 가능한 해석인지에 관한 논의는 뒤로하자. 판례를 따른다 하더라도 정확한 적용이 필요하다.

다수의 언론에서는 이 법리에 따라 3년치 임금에 대한 소급청구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소송 과정에 대한 이해부족이거나 판결이유에 대한 왜곡의도까지 의심이 든다.

결국 경영상 어려움은 회사가 입증해야 한다. 입증이 되지 않으면 신의칙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경영상 어려움이란 요건이 분명치 않다.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에서 청구액을 감액할 때도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법원이 해당 요건을 적극적으로 확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도 실제 소송에서는 이 요건은 조정 등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 자산이 체불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인지를 고려해 청구액을 감액하는 양보가 이뤄지거나 분할변제 등 구체적 이행방법을 정하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통상임금 문제가 소송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회사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원인이다.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경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에 따라 정당한 임금을 지급받았다면 통상임금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의칙 요건이 경영 투명화에 기여하지 않겠는가.

또 다른 주요 쟁점은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자를 정하고 있는 조건의 효력에 관한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고정성 요건을 설명하면서 이 같은 추가 조건이 요구되는 임금은 고정성이 부정된다고 했다. 소정근로의 대가가 아닐 뿐만 아니라 해당 임금의 지급 여부와 지급액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급일 이전에 퇴사하더라도 근무일수 등에 비례해 일할 등의 방법으로 지급한다면 그 범위 내에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엄격한 고정성 요건을 만족할 수 있는 수당은 많지 않다. 사용자측에서 복지 명목으로 지급하는 제 수당이 여기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이 같은 논의가 정기상여금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다. 경영계 일부에서는 정기상여금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현장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의 의견은 간단하다. 조건과 무관하게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게 전원합의체가 내린 대원칙이다. 추가 조건에 관한 논의는 정기상여금이 아닌 소정근로 대가로 인정받을 수 없는 금품에 한정된 논의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은 소정근로의 대가이므로 추가 요건을 요하지 않는다. 이른바 기본급에 포함해야 할 임금을 정기상여금으로 돌려 운영해 온 그간의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에 관한 논의는 정기상여금 지급에 있어 조건을 달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와 맞닿아 있다. 지급일 이전에 퇴사한 자에게 정기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기상여금이 근로의 대가에 해당한다는 것이 분명한 이상 이 같은 제한은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오히려 퇴직자에게 차액청구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다수 학자의 의견이다.

다음주면 노동부 지침이 나올 것이다. 노동부가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하지만 장관의 발언이 현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존중받는 규범력을 확보하는 지침을 기대한다. 이번에도 같은 오류를 반복한다면 더 이상 노동부는 제자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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