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타협은 곧 레임덕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이 확고한 것 같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태가 불거지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부터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까지 공안정국을 조성했고, 민영화 논란이 일자 철도노조 파업을 퇴로까지 막아 몰아세웠다. 대선개입 특검부터 민영화 관련 사회적 논의기구까지 야당·시민사회·노조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모두 거부다.

박근혜 정부의 이런 태도는 2008년 촛불시위에 대한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평가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5월 촛불시위를 조기에 진압하지 못해 이명박 정권이 5년 내내 제대로 정책을 펼 수 없었다는 것이 집권세력의 합의다. 박근혜 정부는 70년대 스타일로 지금까지는 국민적 저항을 그럭저럭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박근혜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처한다고 정치적 위기를 피해 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약간의 지연효과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50~70년대 선진국 정부들은 '성장관리'를 했다.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로 고용이 이뤄져 노조의 힘이 커지자 노동운동이 급진적으로 발전해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노사 타협을 만들었다. 복지를 최대한 제공해 사회주의와 비교우위에 설 수 있도록 노력했다. 사회주의권이 현존하는 상태에서 성장이 노동의 급진화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핵심 기능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성장관리가 아니라 위기관리가 정부의 핵심 기능이 된 것이다. 80년대 이후 성장이 정체되며 경제위기가 빈번하게 반발하자 선진국 정부들은 위기를 관리하는 역할을 핵심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민주당·노동당·사회당 등이 공화당·보수당과 정책적 차이가 없어지는 시기도 바로 이때였다. 한국도 약간의 시간차가 있지만 큰 흐름은 같다. 한국은 80년대 초 3저 호황이라는 특수한 조건으로 인해 위기가 98년 이후 보다 압축적으로 진행됐을 뿐이다.

정부는 말 그대로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지 새로운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주류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듯이 8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신흥시장이라 불리는 몇 개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장기 저성장 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성장처럼 보이더라도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듯이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거품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정치의 특징이 정치 자체를 부정하거나 조롱하는 반(反)정치인 까닭은 시민들의 살림살이를 예전처럼 성장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누가 더 조롱을 잘하느냐고, 원한을 잘 만들어 낼 수 있느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시민들의 뜻을 좀 더 정치에 효과적으로 반영해 보겠다는 상상, 즉 정치개혁 이데올로기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 정치의 위기를 관리해 보려 했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7·4·7 공약으로 상징되는 성장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정치위기를 관리하려 했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 발전주의의 화신이라 할 박정희를 통해 이명박 정권 시대의 기대를 좀 더 연장시켰고, 좀 더 과감하게 진보진영을 집권 초에 봉쇄시켜 권력 누수를 막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이러한 위기관리 전략은 오히려 민주당 정부만 못한 것이다. 포섭에서 배제된 자들을 통치하는 것이 위기관리의 핵심인데, 박근혜 정부는 그야말로 어버이연합이나 뉴라이트 정도의 ‘꼴보수’ 정도만을 이념적으로 포괄하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노총마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나갈 수밖에 없고, 중앙일보도 이제 타협을 할 때가 됐다고 이야기할 정도니 박근혜 정부의 정치 전략에 심각하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경제성장이라도 좀 된다면 정치적 위기를 지연시킬 수 있겠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시대에 고도성장이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조롱거리가 된 창조경제처럼 최소한의 경제정책도 엉망인 것이 현 정부의 상황이다. 창조경제보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경제가 차라리 내용이 있었고, 막가파식 권위적 국정운영보다 차라리 노무현의 정치개혁이 위기관리에 효과적이었다. 지배층의 입장에서 봐도 박근혜의 정치는 오히려 예전만도 못한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조운동에게 필요한 것이 정권과의 적당한 타협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토대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취약하다. 공안정국과 노조탄압, 그리고 민주당의 무능으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을 뿐이다.

대안이 돼야 할 노동운동이 좀 더 진취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다음달 25일 국민총파업을 성사시키자. 그리고 그 기세로 정권퇴진에 갇히지 않는 더 많은 싸움을 조직하자. 가장 진취적 투쟁은 장기 저성장의 시대, 정권의 반민주적 통치가 심화되고 있는 시대에 민주노조를 더 크게 조직해 내는 것이다.

어떤 정당도 노동자의 우산이 돼 주기 힘든 지금, 노조 스스로가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한다. 시민들 모두가 노조를 할 권리를 가지고 민주노조의 조합원이 될 수 있도록 해 보자. 아마 정권이 가장 무서워할 상황은 국민총파업 이후 국민 모두가 민주노총 조합원이 되는, 국민이 민주노조 조합원과 같은 말이 되는 상황일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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