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사관계는 ‘임금·근로시간의 해’가 될 전망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9일 ‘2013년 노사관계 평가와 2014년 노사관계 전망’ 분석보고서에서 지난달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과 조만간 나올 예정인 ‘휴일근로 연장근로 포함’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앞으로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개편과 근로시간단축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에 임금·근로시간 개편을 위한 사회적 대화 전망은 어둡다는 분석이다.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극도로 악화된 노정대립 구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대화 공간이 열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통상임금 판결, 노동계 우위 속 임금전쟁 시작"

배 본부장은 보고서에서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을 임금에 반영하기 위한 노사교섭에서 노동계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후반 이래 노조의 교섭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돼 왔지만, 통상임금 사안은 법원의 판결을 적용하는 것이어서 노조가 법적 정당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교섭력이 떨어지는 노조들도 새로운 교섭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배 본부장은 그러나 노사가 타협적으로 임금 문제에 대한 접점을 찾기보다는, 당분간 노조나 노동자들이 추가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기적이고 고정적인 상여금과 수당이 통상임금이라는 점이 재확인된 만큼 관련 소송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럴 경우 법원은 대법원의 판결은 물론이고 각 기업의 경영사정을 감안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판결을 내려야 한다. 노사 일방이 불복할 경우 고등법원을 거쳐 대법원에 이르는 소송 릴레이가 예상된다. 자칫 법무법인들만 이익을 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판결에 기초해 노사가 통상임금을 재산정하고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정기·고정 상여금과 수당의 얼마를 기본급에 반영할지, 또 얼마를 성과 연동 급여로 배분할지도 쟁점이다. 노조나 노동자들은 해당 금품을 모두 기본급에 반영할 것을 요구하고, 기업은 가급적 기본급 비율을 낮추고 성과 연동 급여의 비율을 높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 본부장은 "노조는 기존의 임금체계가 갖고 있는 연공성을 지키면서, 임금체계 개편이 기존의 기업별 임금격차나 차등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기본급만 인상하기를 희망할 것으로 보인다"며 "경영계는 인건비 증가를 억제하고 인건비 절감에 초점을 맞춘 임금체계를 선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 위기, 지속가능 임금체계 물거품 되나"

배 본부장은 이와 함께 “노사가 눈앞의 이익에 집착해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싸고 제로섬 게임을 벌인다면 지속가능한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시대적 과제는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속가능하고, 기업 간 비교가 가능하며, 직무와 숙련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임금이 지급되고, 고령화 시대에 걸맞은 임금체계 마련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배 본부장은 “개별기업 노사가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동기에 의해 움직일 경우 노조의 힘이 센 곳은 근로자들에게 유리하게, 노조의 힘이 약한 곳은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결정이 나거나 노사 담합관계에 의해 정규직 등 내부자들의 이익만 극대화하고 나머지를 소외시키는 식으로 해결책이 마련될 수도 있다”며 “이는 임금격차를 더욱 벌리고, 임금의 공정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개별 기업단위의 교섭이 아닌 사회적 대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임금체계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 전망이 밝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배 본부장은 “노사정위원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 순간에 다시 노사정 사이의 사회적 대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며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회의체 불참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공공부문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한국노총의 주력인 공공부문 노조들이 압박을 느끼고 있는 데다, 민주노총과 정부가 대립하는 분위기에서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참여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현재 극도로 악화된 노정대립 구도가 해소돼야 노사정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것이고, 민주노총은 어렵더라도 한국노총이라도 노동계 대표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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