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에게 학교측이 간접강제를 신청해 논란이 되고 있다. 대자보를 붙이거나 구호를 외칠 때마다 100만원씩 내라는 것이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이런 간접강제를 하는 것은 파업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인 사업장이라면 노동자들이 자기가 일하는 현장에서 집회를 하고 대자보 붙이는 것을 막으면 곧바로 부당노동행위가 된다. 그런데 중앙대가 뻔뻔하게 간접강제라는 형식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이유는, 현행법이 중앙대를 청소노동자들의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아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지우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중앙대는 당당하게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용역업체가 사용자이니 그곳에 책임을 물으라고 한다. 그런데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이 청소를 하면 깨끗해지는 것은 용역업체 건물이 아니라 중앙대 건물이다. 중앙대가 임금을 직접 주지 않고, 도급금액이라는 형태로 용역업체에게 돈을 주고, 용역업체는 중간에 얼마를 떼어먹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는 복잡한 구조를 갖지만 중앙대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책임이 없다"는 말은 참으로 비겁한 말이다.

어디 중앙대뿐이겠는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최종범 열사는 누구의 이윤을 위해 일했는가. 당연히 삼성전자다. 전자제품의 판매비용에는 A/S 비용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서비스라는 회사를 따로 만들고, 삼성전자서비스는 용역업체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킨다. 그 노동자들이 삼성전자 제품을 A/S 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삼성전자 제품을 사는 것인데도 삼성전자는 이들이 삼성전자 직원도 아니고,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도 아니라고 발뺌한다. 그러니 삼성전자는 "배가 고팠다"는 유서를 남기고 돌아가신 최종범 열사에 대해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말로 뻔뻔하게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인천공항은 또 어떠한가. 인천공항은 8년 연속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 1위를 자랑한다. 9년 연속 흑자에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4천500억원을 기록한 공공기관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누가 땀을 흘렸을까. 바로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다.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87%의 노동자들이 그러한 평가와 흑자의 주인공들이다. 그들이 쓸고 닦았고 그들이 경비를 했고, 그들이 비행기와 승객을 연결했고, 그들이 보안검색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우리 소관이 아니다”고 이야기하며 파업 파괴에만 열을 올렸다.

"책임이 없다"는 말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인천공항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가, 그리고 중앙대가 진짜 사용자다. 노동자의 땀으로 이득을 얻는 자들이며,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자들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이 나라 법은 그들이 사용자가 아니라고 한다. 물론 현대중공업에서 일부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이 나라 법은 진짜 사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원청회사들은 맘대로 노조를 탄압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교섭을 해태하고, 심지어는 업체와 계약을 해지해서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노동자들에 대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면서도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 자리는 자본가들이 꿈에 그리던 자리다. 그래서 기업들은 당연히 직접고용해야 할 일자리에 편법으로 용역을 도입한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진짜 사장’의 실체는 기업과 노동부와 법원에서는 감춰진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용역·외주·아웃소싱·사내하청·파견·도급 등의 이름을 가진 간접고용이 기형적으로 많은 이유다.

기업과 정부는 이것으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이런 편법과 불법도 합법화하자고 한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파견업종 허용대상을 전면 확대하고, 사내하도급법을 만들어서 모든 간접고용을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이제는 깨 버리자. 중앙대 청소노동자들과 인천공항 비정규직, 그리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를 위해 힘을 보태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사장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조법 제2조를 고쳐 원청기업이 사용자라는 것을 명시하도록 하는 싸움을 시작하자. 진짜 사장이 노동자들과 교섭하고, 직접고용하도록 하는 싸움에 집중하자. 원청의 사용자 책임이 법적으로 인정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중앙대·인천공항·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의 뻔뻔한 얼굴을 돌려세우고 현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길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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