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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의 전원합의체 판결과 그 후반전
김태욱 변호사
(금속노조법률원)

노동사건에 관한 법원 판결은 언론보도의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불행히도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들이 더 많다. 2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에 관한 얘기를 해 보고자 한다.

우선 지난달 선고된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언론보도상으로는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됐다는 점만 부각돼 마치 대법원이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내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기존의 통상임금 요건 자체를 후퇴시킨 것이다. 정기상여금도 판결 내용상으로는 일할 지급규정, 관행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하는 것처럼 판시해 추후 논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소급 임금청구에 대해 신의성실 원칙을 적용해 청구를 기각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에 한정된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건전한 재정은 기업에 있어 생명줄과도 같다”든가 신의칙을 적용해 청구를 제한하지 않으면 “종국적으로 근로자측까지 피해가 돼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라는 표현에 그 속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대법원은 법률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판단을 한 것이다. 13인의 대법관 중 3인만 이에 대한 반대의견을 밝혔을 뿐이다. 대법원은 정리해고 반대파업을 불법이라고 명확히 밝힌 가스공사노조 업무방해 사건에서 “경영권과 노동 3권이 충돌하는 경우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정치적 선언을 한 바 있는데, 그에 준하는 정치적 판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으로 철도노조 파업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직권중재 회부결정에 위반해 이뤄졌던 2006년 철도노조의 파업사건에서 소수의견(5인)은 단순 노무제공 거부 파업은 그 개념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고,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다수의견(8인)은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춰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단순 노무제공 거부 파업도 여전히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가능성을 열어 뒀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어쨌든 처벌의 범위를 축소시킨 점에서는 제한적이나마 긍정적이다. 그런데 최근 철도노조 파업사건에서 법원은 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이달 3일 서울서부지법과 천안지원은 구속영장 청구를 연달아 기각했다. 반면 파업 종료 이전에 체포된 2명의 철도노조 조합원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검찰이 과도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정당성 없는 불법 정권의 특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재판의 독립성과 국민의 권리구제를 생명으로 하는 사법부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이번 철도노조 파업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이번 파업(7천700명 참가)보다 참여규모가 훨씬 컸던 2009년 철도노조 파업(1만1천700여명 참가)에 대해서도 하급심 법원은 전부 무죄를 선고해 대법원 계류 중이다. 이번 파업기간(22일)보다 훨씬 긴 금속노조 KEC지회 파업(107일)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위 두 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추후 첨예한 법리 다툼의 대상이 될 것(통상임금 판결)이고 이미 그 다툼이 진행 중(업무방해죄 판결)이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할 때 처음부터 자세한 요건을 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다소 포괄적으로 요건을 제시한 후 하급심 법원이 구체적 사건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적용해 판결을 선고하면 그에 대한 판단을 하면서 법리를 구체화해 나간다. 조각에 빗대어 말하자면 전원합의체 판결로 눈 2개, 코 1개, 입 1개라는 대강의 두상을 조각한 후, 하급심 법원의 판결로 얼굴 모양을 구체화하는 식이다.

따라서 전원합의체 판결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대응도 중요하다. 노동자 권리 확보를 위한 경기 후반전은 어찌 보면 지금부터 시작이고 또 이미 진행 중이다.

김태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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