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민주노총에 경찰이 들이닥치는 것을 TV로 보고 분개해서 한걸음에 달려왔어요."

"지금 시골에서 펜션을 하면서 이장 노릇을 하고 있는데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올라왔습니다."

"단병호 전 위원장 이·취임식 이후 10여년 만에 민주노총 공식모임에 나왔네요."

8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은 머리가 희끗한 100여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전노협 시절부터 민주노총을 이끌어 온 전·현직 중앙집행위원들이다. 95년 민주노총이 출범한 이래 전·현직 중집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집담회를 연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지난달 22일 벌어진 민주노총 경찰 난입사태에 대한 분노가 세대·정파가 다른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전·현직 중집위원들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격을 위해 뭐든지 하고 싶다.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전·현직 중집 소환한 10인의 지도위원

이날 전·현직 중집위원 집담회를 소집한 것은 단식농성 중인 '평균연령 71세'의 지도위원들이다. 권영길·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위원들이 각자 삶의 현장에 있는 전·현직 중집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모임을 제안했다. 이달 2일부터 이날까지 일주일째 곡기를 끊고 민주노총이 들어선 경향신문 1층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0명의 지도위원들은 "이렇게 모이게 된 이유에 대해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며 "격식 없이, 조건 없이, 허물 없이 민주노총을 세우고 박근혜 정권을 물러나게 할 방법을 이야기해 보자"고 운을 뗐다.

권영길 전 위원장은 "우리 선배와 동지들이 목숨을 바쳐 만든 민주노총이 박근혜 대통령 경찰에 의해 유린당했다"며 "이를 결코 좌시할 수 없었던 지도위원들이 먼저 만나 뭐든 하자고 뜻을 모았고 그것이 단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수많은 희생을 거쳐 만들어진 민주노총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의 생각이 갈라졌고 정규직만의 민주노총이라는 비판도 들었다"며 "절망하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지만 만나서 제대로 풀 기회가 없었는데 오히려 박근혜 정권이 그것을 씻어 줬다"고 말했다. 경찰의 난입이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민주노총의 정파갈등을 뛰어넘게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날 집담회에 참가한 전직 중집위원 가운데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노동당 혹은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함께 활동하는 정치인도 다수 눈에 띄었는데, 정치적 색깔이 담긴 발언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대로 참을 수 없다. 뭐라도 하자"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민주노총 모임에 나온 차수련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지긋지긋한 정파싸움이 혐오스러워 민주노총 사무실은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TV에서 민주노총 침탈 장면을 보고 무작정 뛰쳐나와 민주노총 앞으로 달려왔다"며 "전직 위원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겠지만 민주노총을 되살리기 위해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KT 송파지사에서 '전봇대 타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홍준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TV에서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강제로 진입하는 장면을 보는 순간 2002년 한국통신 계약직들이 목동전화국을 점거했을 때 전경이 도끼를 들고 옥상까지 밀고 들어왔던 모습이 떠올랐다"며 "그런데도 '귀족노동자들의 반란'쯤으로 치부하는 보수언론과 종합편성채널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디어오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있는 건물은 경향신문 소유지만 부지는 정수장학회가 소유권을 갖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이 땅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민주노총에 경찰을 투입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용길 전 민주노총 대전충남본부장은 "정권 퇴진투쟁을 제대로 벌이기 위해서는 과거에 벌였던 투쟁들을 돌아봐야 한다"며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던 4월 혁명과 87년 6월 항쟁을 돌이켜 보며 총파업을 넘어선 일상적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시간, 분노와 실력 간 괴리 어떻게 좁힐까"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이미 선택을 했다"며 "박근혜 정권 퇴진구호를 내걸고 2월25일 국민총파업에 20만명 이상을 조직하는 투쟁을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국민총파업 이후 철도노조의 2차 현장투쟁과 함께 '의료 민영화·교육 민영화 반대와 연금개악 저지, 임금체계 개악 저지'를 내건 총력투쟁을 6월 지방선거까지 이어 간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신 위원장은 "이전의 총파업은 조직화 과정을 거쳤지만 이번 투쟁은 대단히 짧다"며 "분노를 실력으로 보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그는 이어 "총파업 투쟁을 성사하지 못하면 위원장으로 있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사활을 걸고 총파업 조직화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의 결의도 단호했다. 김 위원장은 "긴 시간 파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국민들과 민주노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장 9일부터 지부간부 500여명에 대한 대량 징계해고가 예상되고 조합원 5% 가량을 장거리 전보발령할 것으로 보이지만 탄압은 탄압일 뿐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파업으로 발생한 200억원의 임금손실분을 조합원들이 나누어 책임지기로 결정한 상태다. 김 위원장은 "18일 4차 상경투쟁이 예정돼 있다"며 "정부와 철도공사가 대화요구에 불응한다면 굳센 결의를 모아 더 높은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하자"

이날 집담회를 마친 전·현직 중집위원들은 민주노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의 노동탄압과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집담회 이후 각자의 지역과 현장에서 아래로부터 투쟁을 조직하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단식 중인 10인의 지도위원들은 민주노총의 2차 총파업이 열리는 9일 이후부터는 전국을 돌며 투쟁을 조직하는 데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9일 민주노총 2차 총파업

14개 지역서 결의대회 개최 … 완성차 3사 잔업거부



민주노총은 9일 서울을 비롯한 14개 지역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과 '민영화-연금개악 저지, 노동탄압 분쇄'를 내건 총파업 결의대회를 연다.

10만여명이 집결한 지난달 28일 1차 총파업 결의대회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전국적 규모의 집회다. 민주노총의 이날 총파업은 다음달 25일 국민총파업 조직화를 위한 사전조치다. 정호희 대변인은 "9일 결의대회는 민주노총 총파업투쟁본부에서 결정한 2월25일 국민총파업 조직화와 투쟁결의를 다지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와 한국지엠 등 금속노조 완성차 3사 지부는 잔업거부에 들어간다. 지난 7일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주간연속 2교대 시행 이후 처음으로 잔업거부에 나서는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9일 밤 12시20분부터 새벽 1시30분까지 70분간 잔업을 거부하고 생산을 중단한다.

한편 민주노총은 16일 개최할 예정이었던 3차 총파업 결의대회 일정을 18일로 조정했다. 조직화를 위해 일정을 평일에서 토요일로 변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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