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Cort). 기타를 한 번이라도 만져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다. 한때 콜트 기타는 세계 기타시장의 30%까지 점유했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놀라울 만큼 좋은 소리를 내는 콜트 기타는 기타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 탓에 콜트는 ‘꿈의 공장’으로 불렸다. 콜트 기타를 연주했던 초·중급 기타연주자들은 언젠가 지미 헨드릭스나 게리 무어 같은 훌륭한 기타연주자가 되는 꿈을 키웠기 때문이다.
꿈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2007년 회사가 인천공장(콜트)과 대전공장(콜텍)을 폐쇄함에 따라 정리해고됐다. 콜트사는 회사를 콜트와 콜텍으로 쪼개 전자기타는 인도네시아에서, 어쿠스틱 기타는 중국 다롄에서 생산하고 있다. 생산공장을 이전한 뒤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콜트 기타의 품질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기타연주자들과 기타 상인들 사이에서 좋지 않은 평가가 나왔다.
2007년 공장이 폐쇄된 이후 해고된 금속노조 콜트지회(지회장 방종운)와 콜텍지회(지회장 이인근)는 2천525일째 해외로 떠난 회사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영상 이유 없었던 정리해고"=서울고등법원의 콜텍 노동자 정리해고 파기환송심 선고(10일)를 앞두고 콜텍 해고노동자들은 "법원은 부당해고를 선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콜트·콜텍지회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법원은 2천500여일간 장기투쟁을 한 해고노동자들에게 감정보고서(법무법인 새날)의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해 콜텍의 정리해고가 부당해고임을 선언해야 한다”며 “사법부의 공정한 판결만이 8년째 텅 빈 공장을 지키며 외롭게 싸워 온 기타노동자들의 애환과 한을 풀어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 선고는 정리해고된 콜텍 노동자들이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이 “인력감축 조처가 객관적 합리성이 있었는지 자세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원고 승소한 원심 판결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데 따른 것이다.
콜트·콜텍지회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새날은 지난해 8월 발표한 감정보고서에서 "정리해고를 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었다고 분석된다"고 밝혔다.
새날은 감정보고서에서 “콜텍은 콜트와 독립적인 사업으로 간주하기에 무리가 있다”며 “콜텍의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통기타 사업의 수익성이 양호해 대전공장(콜텍)의 영업손실이 콜트로 전이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돌아갈 공장 없는 기타노동자=콜트·콜텍이 국내 생산공장을 폐쇄함에 따라 해고노동자들이 돌아갈 생산공장은 국내에 없다. 지회에 따르면 회사는 "제품 공정의 60~70%를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생산하고, 국내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이에 대해 지회는 "국내 생산이 가능하도록 생산공장의 일부를 국내로 이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방종운 지회장은 “국내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마크를 달고 나가야 콜트 품질의 우수성을 되찾을 수 있다”며 “8년째 이어진 길거리 생활을 접고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토로했다.
콜트·콜텍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8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회사가 국내 생산공장을 폐쇄한 뒤에도 흑자경영을 이어 가고 있다. 지회 관계자는 “회사가 국내 생산공장을 폐쇄한 것은 경영상 이유가 아닌 박영호 사장의 노조 혐오증 때문”이라며 “이미 대법원이 정리해고된 콜트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해고 판결을 한 만큼 회사는 국내 생산공장을 세워 2천500일 동안 계속된 장기농성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2천500일 투쟁한 콜트 노동자들 “부당해고 판결 내려 달라"
10일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선고 예정 … “생산공장 다시 국내로”
- 기자명 구태우
- 입력 2014.01.0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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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트노동자들의 밥줄끊고 희희낙낙 자신의 이름석자 광택내는대만 몰입해있는 방종운 너의 꼬락서니 보니 울화통이 터지고 화가 치미는구나,
오호 통재야, 오호라 통재야,
영웅도 좋고 전사도 좋고 전설도 좋고 방종운 이름석자 역사에 남으면 좋지 아니한가요?,
콜트노동자의 이름으로 덕에 세상에 방종운 내 이름석자 남기면 금상첨화가 따로 없지요,
오늘도 변함없이 방종운의 노동계 전설의 역사는 흐른다,
그동안 콜트노동자들을 위해 이 한몸 뼈가 으스러지도록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청춘을
다 받쳐 일한대가 좀 보상도 받고 되돌려 받자구요,
동지섣달 엄동설한에도 방종운 나는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왔다,
방종운 너는 오늘도 콜트 노동자들의 피눈물로 너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구나,
콜트 방종운 너의 모든 것을 보고 있느니라,
방종운 너의 눈길이 머무곳이면 어디든지,
방종운 너의 발길이 닿는곳이면 어디든지,
방종운 너의 목소리 나는곳이면 어디든지,
방종운 너의 행동이 있는곳이면 어디든지,
콜트 윤중식,노태설,아니면 방종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콜트 윤중식,노태설,아니면 방종운 혼자 조합 활동 못해,
콜트 윤중식,노태설,아니면 방종운 이름석자 남길 수 없어,
콜트 윤중식,노태설,아니면 방종운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어,
콜트 윤중식,노태설,아니면 방종운 노동계 영웅이 될 수 없어,
콜트 윤중식,노태설,아니면 방종운 노동계 전설이 될 수 없어,
콜트 윤중식,노태설,아니면 방종운 콜트 지회장 할 수 없었어,
콜트 윤중식,노태설,아니면 방종운 존재할 수 없어,
나는 항상 너의곁에서 모든것을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마라,
방종운 조합원들의 밥그릇을 무참히 깨버린 너를 벌하러 내가 왔느니,
넌 언제나 너에게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에는 목숨을 걸 듯 사력을 다했지
콜트에서 너와 함께 지낸 십여년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널 지켜본 소감을 말하려한다,
넌 언제나 네가 좋아하는 조합원이나 간부 있는 부서에 지날 때나 용무가 있어 현장순시를 할 때면 삼십분이 아니라 한 시간도 아깝지 않은 듯 시간을 아끼지 않았지 하지만 네가 싫어하는 조합원이나 간부 있는 부서에 지날 때나 용무가 있어 현장순시를 할 때면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한지 험상 굿은 얼굴을 하며 한시라도 그곳을 벗어나려고 조합원이나 간부들을 얼굴한번 마주치기 싫어서 달음박질하듯이 그곳을 벗어나려 안간 힘을 쓰며 앞만 보며 쏜살같이 지나치는 너의 모습을 보며 통탄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노동계의 파렴치한 방종운,
일인지하만인지상[ 一人之下ㅡ人之上 ] 천상천하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
지난 7년 조합원들의 가슴엔 피멍이 방종운의 가슴엔 이름석자 길이길이 빛나네,
1년만 싸우면 공장으로 돌아갈 수있다는 말에 속아 조합원들의 가슴엔 피멍이 들었어도
방종운의 얼굴엔 춧음꽃이 활짝 피엇네,
자랑스러운 방종운이란 이름석자 남기게 되어서 표정관리 안되는구나,
내직장 내일터 지키며 싸우자던 조합원들의 바람을 자신의 이름석자 남기고파 묵살하고
자신의 전매특허이자 필살기인 배수진을 치고 벼랑 끝 전술로 승부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버린 파렴치 그대이름은 방종운
콜트 방종운의 2007 정리해고 배수진 벼랑 끝 대 전술 기억하느냐,
콜트 방종운 운명의 그날 2007년 9월 21일 기억하라,
콜트 방종운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160여 조합원과 19명의동료 자신의 처자식에게 속죄하는 그날까지,,,
콜트 방종운 마침내 콜텍에 노동조합 깃발을 올리고 개선장군 되어 돌아 왔노라,
그때가 언제였던가,
콜트에서 콜텍에도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며 뜻을 모으고 1~2차에 걸쳐 콜텍 방문하였으나 콜텍 노동자들은 우리는 노동조합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며 우리를 돌려보냈지 그러던 어느날 콜텍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 하기위해 대충지부로 달려갔다는 소식이 콜트 조합으로 날아들었지,
그 소식을 접한 방종운은 뛸 듯이 기뻐하며 산적해있는 조합업무도 뒤로 제쳐놓고 대전으로 달려갔지 그리고 돌아와서는 콜텍 노동자들이 스스로 떨쳐 일어나 조합을 결성했음에도 확대간부 회의를 주제해 마치 콜텍 노동자들이 엄두도 내지 못한 노동조합 깃발을 자신이 꽂고 왔노라 자랑을 늘여놓았지 기억나느냐, 방종운
2007년 9월 21일 너의 운명을 직시하라,
그리고 침묵하라,
그리하여 너의 죄를
모든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삭제하라,
콜트160 여 조합원과 19명의 동료 그리고 너의 처자식에게 까지도 모르게 하라,
그리하여 너의 죄를 세상이 끝나는 날 너와 함께 땅에 묻어라,
방종운 뭐시라고야 천민 악질자본 콜트악기 박영호의 돈을 받아먹은 자가 쓴 글입니다.
삭제 부탁합니다.
콜트160 여 조합원과 19명의 동료 그리고 너의 처자식까지도 박영호 사장 돈을 받아먹었다는 것이냐,
방종운 너의 수준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정도 일 줄이야,
아직도 너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너의 죄를 콜트160 여 조합원과 19명의 동료 그리고 너의 처자식에게 뒤집어 쉬우는 버릇은 여전 하구나,
콜트 방종운 운명의 그날 2007년 9월 21일 기억하라,
너와 내가 빅딜을(주고받은) 한 그날을 기억하라,
너의 욕심이 운명을 바꿔놓은 그날을,,,
너의 과거를 알고 싶거든 지금 네가 160여명의 조합원과 19명의 동료 처자식에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너의 미래가 알고 싶거든 네가 지금160여명의 조합원과 19명의 동료 처자식에게 하고 있는 것을 보아라.
2007년 지회장시절 투쟁사업장은 지회장선거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너 또한 지회장직위를 계속해서 고수하고 싶었으나 지부 자유게시판에 연일 계속하여 지회선거를 실시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투쟁사업장이라 지회장선거를 하지 아니하고 계속 직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주위에서 지회장 임기가 2년이고 지회장선거를 실시하는 해라면 해야 한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확대간부회의를 소집 간부들의 의견을 수렴하자 3명의 간부가 실시하자는 의견에 나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은 나머지 확대간부회를 소집한 가운데 일사천리로 선거를 치렀다,
설마 낙마는 아니겠지 하지만 나의 예상은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인천지부자유게시판 (저승사자글펌) 2008/02/26 05:41
방종운 네가 말했지 않았는가 말이다 회사가 정리해고수순을 밟기 위해 순환휴직 하려하는 것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너는 대의원들을 시켜 각 반별로 조합원들에게 투표를 강행하였다 조합원이 간부들이 반대하는데도 투표결과도 반대가 많았는데도 간부들의 만류에도 너는 자신의 업적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회사가 조합원들을 정리해고 하는데 앞장섰다, 그렇게도 역사에 주인이 되고 싶어 했던 네가 방 씨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하던 네가 되고 싶은 대로 되어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려 존경하옵는 전 방종운 지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