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3일 정부가 발주에서 시공까지 건설공사 전 과정에 대한 안전관리를 하겠다며 '건설현장 재해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번에 눈여겨볼 점은 건설재해는 건설공사의 발주·설계·시공의 전 과정에 걸친 복합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국토교통부·안전행정부·고용노동부·소방방재청 등 건설공사 관련 부처와 서울시·인천시 등 자체발주 공사가 많은 자치단체 및 건설협회·감리협회 등 건설공사 관련 단체가 함께 참여해 건설공사 전 과정의 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발주자의 안전관리 책임 강화, 공공 발주공사 입찰제도 개선, 설계단계의 근로자 안전 고려 강화 등 건설공사 발주·설계 단계의 사전 안전성 확보에 중점을 뒀고 안전한 시공을 위해 감리원의 기능 강화, 고위험 건설현장 밀착관리 및 화재예방 등 시공단계의 효과적인 안전관리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자평했다. 이번 정부 종합대책을 보면서 다른 업종은 전반적으로 재해가 줄어들고 있지만 유독 건설업 재해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는 부분부터 지적하고 싶다. “일하다 보면 죽거나 다칠 수 있지…”라는 식이다.

정부 대책에 노동자 목소리 없어

종합대책 수립의 과정에서 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정부는 종합대책 발표를 위해 “건설 관련 단체의 목소리까지 반영해 마련한 대책”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일부 사업주·단체들의 의견만 수렴했을 뿐이다. 발주자·설계자·감리자·시공사들만 참여한 것이다. “건설재해를 줄여 최근 건설경기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들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발표한 것으로 봐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건설업 재해 감소를 위해 정부 각 부처가 팔을 걷어붙인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아 재해 발생시 부처 간 책임 떠넘기에 급급할 것으로 우려된다. 가령 지난해 12월 다리 상판 외벽 콘크리트 타설 중 4명의 건설노동자가 숨진 부산 남북항대교 사고를 보자. 당시 발주처인 부산시는 “강풍에 의한 외부충격의 붕괴의심”이라고 밝했다. 시공사인 SK건설은 “부산시 시방설계대로 시공했고 작업자 부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국토교통부는 “신공법 문제”를 언급했다. 고용노동부는 “정기점검 문제가 아닌 미숙련 작업자 투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의 대표적인 사례다. 공은 서로 차지하려고 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재해조사를 한답시고 부처 간 책임 공방 속에 ‘설계=시공’ 핑퐁게임만 하면서 속시원한 재해조사 결과는 유가족의 오열 속에 오리무중으로 빠질 수 있다. 또한 시공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종합심사낙찰제 도입’에 대해 정부는 “사회적 책무 이행 등도 함께 평가해 저가 하도급·무리한 공기단축·부실공사로 이어지는 고리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건설업 재해의 원흉은 물량하도급 관행

건설업 재해의 근본적인 원흉은 건설사들의 ‘불법 다단계하도급’ 낙찰구조와 시공관행에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불법 하도급 적발사례 실적은 과연 몇 건이나 되는 지 묻고 싶다. 시공의 90%가 책임시공이 아닌 불법 물량하도급 시공을 묵인하고 있으면서 낙찰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행위다. 물량하도급 관행은 건설수익은 시공사가, 그리고 위험에 대한 산재 리스크는 하청 비정규 노동자가 지게 되는 병폐다. 그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와 단속이 필요하다.

정부가 발표한 종합대책에는 안전의무 부담자에 현행 설계·건설자 외에 발주자를 포함하도록 해 발주자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건설산업연맹은 몇 년 전부터 발주자와 시공 원청사를 포함해 '안전보건협의체' 구성을 제안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재해의 최전방에서 목숨을 걸고 위험한 노동을 하는 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이 안 된 정부 종합대책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탁상행정일 뿐이다. 정부의 종합대책이 노동자들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보호해야 할 노동부의 면피용 정책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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