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수십 년을 후퇴한 각종 이슈로 몸살을 앓았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이후 사라진 줄 알았던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 현실로 확인됐고, 수십 년 동안 잘 지내 오던 전국교직원노조가 하루아침에 불법단체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고용노동부와 협의까지 마무리했던 전국공무원노조는 설립신고증이 반려됐다.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은 누가 봐도 뻔한 청와대의 압력에 의해 수사를 방해받았다. 국가정보원 개혁에 대한 시민사회의 압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다. 헌정 사상 초유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까지 이어졌다.

정부·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해도, 철도 민영화를 반대해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도 '종북'이라는 상식 밖 비난을 계속했다. 철도노조 지도부가 있을 것이라는 심증만으로 경찰 6천여명을 동원해 노조 내셔널센터인 민주노총에 난입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민들은 국회를 바라봤다.

하지만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적어도 지도부는, 확실히 이런 국민의 심정과는 체감지수가 달랐다. 새해 첫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정원 개혁 관련법을 두고 민주당 지도부의 평가는 이렇다. 김한길 대표는 지난달 31일 밤 긴급의원총회에서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을 법·제도로 차단하는 꽤 실효성 있는 안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2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직후 "지난해 국회 주도의 국정원 개혁이라는 헌정사 최초의 성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여야 타협을 나름의 성과로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정원 개혁 관련 법안의 경우 대공수사권과 대선개입 선봉에 나섰던 심리전단이 버젓이 살아 있다. 이미 법으로 금지돼 있는 국정원 직원 정치개입의 경우 처벌을 조금 강화하는 정도에 그쳤다.

갈 길은 먼데 산길 초입에서 타협해 버린 꼴이 됐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다른 야당과 시민사회에 함께 가자고 독려하기는커녕 "성과가 있었다"는 자화자찬에 빠져 있다. 6월 지방선거가 민주당과 함께 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