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2012년 말은 박근혜 대선후보 당선에 절망한 노동자의 자살로 끝나더니, 2013년 말은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시민의 분신 소식으로 저물었다. 철도노조의 파업과 이에 대한 사회적 연대 에너지로 잠시 변화의 조짐이 비치는 듯했지만 실물적인 희망을 세우기엔 아직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느낌이다.

2012년에도 생존의 벼랑에 몰린 비정규 노동자의 저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같은해부터 이어진 학교비정규 노동자의 파업투쟁은 처우개선을 위한 제도 마련에 상당한 공감대를 확보했다. 홈플러스·마사회 등 서비스 노동자의 조직화로 ‘10분 계약제’와 같은 기가 차는 노동조건의 실상도 알려졌다. 특수고용의 경우 레미콘 노동자의 재조직화와 동맹휴업, 우체국 택배기사의 조직화와 파업 등 비조합원들까지 참여하는 광범위한 조직화와 단체행동이 벌어졌다.

이와 함께 서울시 다산콜센터·인천공항 용역노동자의 사상 초유 파업은 공공부문에서 더 심각한 간접고용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진짜 사장’인 원청의 책임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또한 2013년의 전태일이라 할 최종범 열사의 자결로 ‘무노조 경영’ 삼성 신화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와 분출이 계속됐음에도, 2013년 비정규직 남용에 어떤 제동을 걸었다거나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보장에 어떤 진전이 있었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수고용 노조운동의 요구가 결집된 노동 3권의 온전한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 개정 문제는 여야의 주요 쟁점이 되지 못한 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오히려 국회의원들은 “자영인에게 노동법을 적용하는 국가는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미 실패한 ‘특별법’ 카드만 만지작거리는 양상이다.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특수고용은 대부분이 위장자영인”이라거나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 특히 노동 3권을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이 국제기준”이라고 반박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 같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공공부문이건 재벌이건 중소·영세업체건, 제조업이건 IT산업이건 간에 자본이 이윤을 쥐어짜는 비결은 노동자를 간접고용으로 돌려 노동법적 책임을 회피 내지 전가하는 데 있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원청의 책임 회피 전략은 오히려 공고해지는 실정이다.

용역노동자의 고용승계를 보장해 주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버티고 있는 인천국제공항공사나 ‘업무방해 및 건조물 침입’ 혐의로 세밑에 청소 용역노동자 12명을 형사고발한 중앙대의 간악함을 보고 있노라면 사용자들의 학습효과를 짐작할 수 있다.

2014년 새해,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는 900만 비정규 노동자의 분출을 확산시킬 수 있는 전략적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노동운동의 힘을 집중해야 한다. 미조직 노동자들이 먼저 싸운 노동자들의 희생을 보고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런 한 가지로 노동운동이 "노동하는 자에게 노동조합을, 사용자는 자에게 책임을"이라는 사회적 운동을 만드는 데 힘을 집중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첫째, 우리 사회에서 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라면 그가 특수고용직이건 아르바이트생이건 하청·용역노동자이건 노동조합이 있어야 최소한의 권리라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확신시키는 일이다. 이미 제출돼 있는 노조법 제2조 개정 요구에 실제로 힘을 집중해야 하며, 노동조합이 어떻게 노동자의 권리를 실제로 실현시키는가에 관한 선전과 교육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둘째, 파견이건 용역이건 사내하청이건 하청이건 법률적 구획에 갇히지 말고 원청(실질적 사용자)의 사용자 책임을 묻는 사회적 운동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불법파견 여부를 다투고 법적 판단에 따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기존의 투쟁보다 좀 더 확장된 개념이다. 삼성전자서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현행법에 따라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판단되더라도 노동자가 실제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이윤을 얻는 기업에게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부여하자고 요구해야 한다. 그 최소한의 출발점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조합을 원청이 인정하고 그 상대방으로 나설 의무가 있다는 점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덧붙여 이러한 사회적 운동이 야당 청원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하자. 올해 지방선거나 국회 일정에 종속되지 말고 노동자의 투쟁을 결집시키고 그 성과를 제도화할 수 있는 상시적 운동을 조직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자. 철도노조의 파업에 쏠렸던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상기하고, 노동조합운동의 저력을 스스로 믿으면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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