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해 나의 꿈은 “모든 노동자의 귀족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20년 일한 노동자의 평균연봉이 7천만원은 되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을 복잡하게 넣지 않고도, 하루 8시간·주 40시간 일해 받는 연봉이 7천만원이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생산직이든 사무직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고학력이든 저학력이든 상관없다. 20여년 일한 노동자라면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고 누구나 연봉 7천만원을 받으면 좋겠다. 한 직장에서 20년을 일하든, 직장을 옮겨 다니며 여러 곳에서 일하든 상관없다. 40대 중후반 노동자라면 누구나 연봉 7천만원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20년을 더 일해 60대를 넘어 퇴직을 할 때는 연봉이 1억원쯤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모든 노동자가 귀족이 됐으면 좋겠다.

세상이 망조가 들면, 몸으로 하는 일보다 머리로 하는 일이 터무니없이 더 많은 값을 받는다. 허울은 좋다. 신경제니, 지식경제니, 창조경제니…. 말도 잘 지어낸다. 세상이 망조가 들면, 불로소득자가 되려는 사람들로 득실댄다. 민영화나 부동산이나 주식·경매나 고리대금업을 비롯해 갖가지 돈벌이를 노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자기 몸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고, “돈 놓고 돈 먹는”게 대단한 능력이나 되는 양 잔머리 굴려 남의 등 후려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다.

가치는 잔머리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노동에서 만들어진다. 더군다나 생산적인 가치는 육체노동에서 만들어진다. 인간의 노동력으로 지탱하는 제조업이나 농업이 떠받치지 못하는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금융업과 서비스업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고 믿는 경제체제는 붕괴하기 마련이다. 인천공항이 세계 1위 공항으로 8년 연속 평가받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나온 정규직 사무직들의 기획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화장실 변기를 열심히 닦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누추한’ 노동이 없다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 속의 귀족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무위도식자요, 불로소득자다. 특권계급으로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 돼 특별한 교육을 받고 특별한 계층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지배계급으로 군림한다. 생산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는데도 경제적 부와 정치권력과 사회적 명예와 문화적 혜택을 독점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노동력의 대가를 임금으로 받아 살아가는 연봉 7천만원짜리 노동자를 귀족으로 낙인찍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도 온갖 수당과 상여금을 다 포함시켜서 7천만원을 받는, 연장근로를 밥 먹듯 하고 휴일·휴가도 거르며 일하는 20년 경력의 노동자를 귀족이라 부르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연봉 7천만원을 뺀다면, 이들이 누리는 경제적 부와 정치권력과 사회적 명예와 문화적 혜택은 보잘것없다.

세계 최대의 독일계 화학회사의 한국공장에 물건을 납품하는 영세공장에서 일하는 고향친구는 하루 12시간·주 6일 주야 맞교대로 일하고서도 손에 쥐는 월급이 200만원 남짓이다. 이 친구가 철도파업을 보며 한마디 한다. “연봉 7천 받는 귀족노동자들이 파업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물었다. “귀족노동자들 연봉을 7천에서 5천으로 깎으면 그 2천이 네 주머니로 가서 네 연봉이 5천이 되겠나.” 물론 친구의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그럼 그 2천은 누가 가져갈까라고 되물으니, “있는 놈들이 가져가겠지”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렇다. 문제는 연봉 7천만원짜리 노동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부와 정치권력과 사회적 명예와 문화적 혜택을 독점하면서 무위도식하는 진짜 귀족들이다. 기업·정부·대학·언론·법조·문화 등 우리 사회의 상층부에 똬리를 틀고 앉아 씨줄과 날줄로 자신들을 엮어 놓고서 자기 계급을 자식들에게 세습시키는 진짜 귀족들이다.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과 부와 혜택은 돌아보지 않고, 한 몸뚱이 희생해서 연봉 7천만원 받는 20년 경력의 ‘조직노동자’를 귀족이라 비아냥거리는 진짜 귀족들이 문제다. 이들이 누리는 권력과 부와 혜택을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재조직한다면, 경력 20년 된 모든 노동자의 연봉을 7천만원으로 올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2014년 새해 내 꿈은 “모든 노동자의 귀족화”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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