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 논란이 뜨거웠던 해는 없었다. 갑의 횡포에 맞선 을의 저항이 시장을 뒤흔들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둘러싼 노사 간 ‘임금 전쟁’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반기 국회는 종북 논란에 휩싸였고,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을 놓고 촉발된 철도 민영화 논란은 최장기 철도파업을 불렀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공공의료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모든 노인에게 한 달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은 공약 후퇴 논란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사상 최초 기록이 적지 않았다. 건국 최초로 여성대통령 시대가 열렸고, 민주노총은 99년 합법화 이후 사상 처음으로 경찰이 난입하는 사태를 겪었다. 박근혜 정부는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통합진보당)을 상대로 해산심판을 청구했다.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는 독선이, 대화가 사라진 곳에는 불통이 지배했다. 그야말로 '안녕하지 못한 2013년'이었다.

노동계와 전면전 선포한 박근혜 정부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 속에서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노동계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진앙지는 철도였다. <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 관계자와 노동전문가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2013년 10대 노동뉴스'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KTX 민영화 논란 속 철도노조 최장기 파업'이 뽑혔다. 100명 중 90명이 민주노총 경찰 난입 사태로 이어진 철도노조의 파업을 올해 최대의 사건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이달 22일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겠다며 민주노총에 진입했다가 빈손으로 돌아갔다. 한 편의 블록버스터급 블랙코미디로,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 됐다.

이번 사태를 보고 경악한 한국노총은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때까지 모든 노사정 대화기구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7일 노사정 관계자를 불러 중재에 나섰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국회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날 저녁 수서발 KTX 주식회사(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에 철도사업 면허를 발급했다. 노동계와 박근혜 정부 간 정면대결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임금체계 지각변동 일어날까

2위는 통상임금 논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5월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니얼 에커슨 지엠 회장의 요청에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화답하면서 불이 붙었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대법원 판결의 권위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흔들려 버린 것이다. 사업장마다 통상임금 범위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졌다. 급기야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관련 두 건의 통상임금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이달 18일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지만 통상임금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근로자의 추가임금 청구로 기업이 예상외의 과도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될 경우 용인할 수 없다"며 소급분 지급 요구에 제동을 걸면서 현장 혼란이 가중됐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원칙을 재확인했다. 내년 임금협상의 초점이 임금체계 개편에 모아지는 이유다. 노동계는 상여금과 수당을 기본급으로 전환해서 고정급 비중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반면 사용자측은 변동성 급여를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복병도 숨어 있다. 56표를 얻어 4위에 오른 ‘정년 60세 법제화’와 35표로 9위를 차지한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논란'이 그것이다. 법정정년을 60세로 못 박는 고용상 연령 차별 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를 통과했다. 정년 60세 규정은 2016년부터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되고, 2017년부터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경영계는 정년연장의 전제로 임금피크제 도입 같은 임금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2의 통상임금 논쟁으로 불리는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문제도 임금체계 개편에 핵심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는 "휴일근로는 연장근로 한도(주 12시간)에서 제외된다"는 행정해석을 유지하고 있지만 법원은 정반대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성남시청 환경미화원의 임금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판결에 관심이 모아진다.

후퇴하는 단결권

3위는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와 공무원노조의 네 번째 설립신고가 반려된 사건이 선정됐다. 노사정 관계자 79명의 선택한 결과다. 노동부는 8월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를 반려했다. 발표 직전까지 노동부가 공무원노조 설립신고증 교부를 기정사실화했던 터라 노동계는 충격에 빠졌다. 노동부는 공무원노조가 규약을 개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해직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노동부와 공무원노조가 수개월간 실무협의를 진행한 끝에 규약을 개정한 상황이어서 노동계 안팎에서 청와대 등 윗선 개입 의혹이 불거졌다.

10월에는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가 내려지면서 "박근혜 정부가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서울행정법원은 전교조가 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노동부가 즉시항고했지만 법원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서울고등법원은 26일 노동부의 항고를 기각했다.

노조 설립신고가 반려되고 취소되는 수난 시대에도 노조를 향한 노동자들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7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설립과 위장도급 논란 그리고 이달 24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영면한 고 최종범씨 자살 사건은 5위(52표)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 시계는 거꾸로 간다?

박근혜 정부 들어 후퇴한 것은 단결권만이 아니다. 공약도 뒷걸음질하고 있다. 기초연금 축소 등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후퇴 논란이 31표를 얻어 공동 10위를 차지했다. 소득에 상관없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주겠다는 박 대통령의 공약은 소득 하위 70%에 드는 노인에게 10만~20만원을 주는 기초연금법 제정으로 대체됐다.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도 후순위로 밀려난 지 오래다.

2016년까지 암·심장병·뇌혈관 질환·희귀 난치병의 경우 진료비를 모두 지급하는 ‘4대 중증질환 무상의료’ 공약도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민주당은 "정치·경제 등 90여개 공약이 깨졌다"며 "공약이 후퇴할 때마다 국민의 신뢰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초의 공공의료기관 강제폐업 사례로 꼽히는 진주의료원 폐업은 '불통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다. 보건의료 노동자들과 진주시민들의 반발에도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가듯이 나는 나의 길을 간다"며 폐업을 밀어붙였다. 경상남도가 폐업 방침을 발표한 지 300일이었던 이달 23일 보건의료노조는 홍 도지사에게 <목민심서>를 전달했다. "이 책은 팔지 말고 꼭 읽어 달라"는 당부도 전했다.

한편 7위(40표)는 정부가 올인하고 있는 시간선택제 정책에 대한 실효성 논란, 8위(38표)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대한 내란죄 적용과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가 각각 선정됐다. 현대·기아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 실시는 31표로 공동 10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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