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힘이 아닌 공정한 법이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가 돼 주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취임 1년도 안 돼 각계각층으로부터 퇴진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상상도 하지 못할 거짓말을 하라. 그래야 대중들이 더 잘 속아 넘어간다”고 히틀러가 강조했던 이유는 “일반인들이 엄청난 거짓말을 할 때는 당연히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지도자가 설마 저런 거짓말을 할까” 하고 의심하고, 그래도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결국 대중은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결코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안녕하지 못하다”는 대자보 두 장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독재자의 상상도 못할 거짓말에 대해 시민들은 너무나 당연한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도서관에서 한창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있던 대학생들은 “이러한 나의 삶은 과연 행복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유치원부터 선행학습을 시켜 온 엄마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지 못했다고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철도 민영화 찬반을 떠나 노동자들의 절규에 엄청난 대량징계와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권에게 그들은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히틀러가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 대중선동 전략과 함께 일관되게 밀고 나간 것은 ‘가상의 적’을 만들고 편을 가르는 공포정치였습니다. "모든 잘못은 적에게 뒤집어씌워라"고 괴벨스가 말했던 것처럼 나치독일 내부의 적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경제위기도 유대인 탓이요, 공동체 파괴의 주범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국민들을 이간질해 편을 나누는 공포정치하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말은 ‘연대’였습니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내부의 적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이며,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나선 밀양의 할머니들이고, 남북화해와 평화를 호소하는 사제들과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조합입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마치 거대한 권력집단이라고 악의적으로 매도하면서 ‘비정규직의 적은 정규직’이라고 공격합니다. 오늘날 독재권력에 저항하는 ‘모든 우리’는 나치 독일 치하의 유대인들입니다.

지난 일요일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에 대한 침탈은 ‘사회적 약자에게 정의로운 방패’가 되겠다는 공권력의 추악한 민낯을 보여 주는 희대의 코미디가 됐습니다. 경찰 5천500명을 투입해 닥치는 대로 부수고 짓밟은 것은 민주노총 사무실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자존심입니다. 쑥대밭이 된 한국의 노총건물을 보고 국제사회는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던 신민당사 진압사건”을 떠올린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힘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폭력성과 그 무능함을 만천하에 보여 주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국가권력에 대해 시민들은 “사단병력 투입하고 고작 봉지커피 두 박스 훔치다 적발된 경찰부터 민영화하고 청와대도 경쟁체제를 도입하자”고 조소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노자는 4가지 종류의 군주를 이야기하면서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는 군주가 최고이고 백성이 무서워하는 군주가 나쁜 군주인데 가장 나쁜 군주는 백성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군주”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대선에서 군 사이버사령부의 조직적인 불법 정치개입에 대해 "정치개입은 했지만 대선개입은 아니다"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는 박근혜 정권의 국가정보원, 군과 검경의 권위란 저잣거리의 술안줏감도 안 되는 처지가 됐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2005년 11월7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참여정부)에서 공기업 민영화 방침도 거의 백지화됐는데 우리가 집권하면 민영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도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철도파업은 대선불복이고 이 모든 것은 철도노조와 민주당 탓”이라고 너무나 착실하게 나치독일 괴벨스의 언명을 실천하고 있으니 보수논객들조차 대통령 재선거를 주장하는 일도 무리는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안녕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모든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고 ‘근로자’는 공장에서 본분에 충실하라는 유신의 망령에 대해 "우리는 나약한 취업준비생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예비노동자"이고, "지금 거리에서 쫓기고 탄압받는 철도노동자는 미래의 우리 모습"이라는 분명한 진실을 자각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80년 전 나치독일과 저물어 가는 2013년 대한민국의 차이입니다.

철도파업이 단순히 민영화 저지를 넘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수많은 빅 라이에 대해 ‘정말 그런 걸까, 행복은 무엇이며 정의는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했다면 철도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올 한 해 부족한 글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 내내 안녕하시길….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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