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회 기자

대한불교조계종의 중재 노력으로 26일 철도 노사가 실무교섭을 재개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이날 교섭 재개에 앞서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에서 “사회적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를 종교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외면할 수 없었다”며 “철도노조 노동자들이 부처님 품 안에서 기도하고 그들이 바라는 대화를 통해 사회적 갈등이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교섭 중재는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맡았다. 화쟁위는 이날 ‘철도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화해와 중재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철도노조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며 시작된 파업이 3주차에 접어든 가운데 종교계의 노력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한 마음이 든다. 스님들이 노사교섭 중재자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은 곧 정부나 사회적 대화기구의 존재의미가 무색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자회사 설립은 더 이상 무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노조가 바라는 면허발급 중단 여부를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현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다가 나온 현실적 발언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관계자가 노동부 ‘노정라인’의 핵심인사라는 점에 이르면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철도파업을 지켜보는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파업 장기화의 원인 중 하나로 노동부 노정라인의 붕괴를 꼽고 있다. 노동부가 고용노동부가 되면서 고용 관련 정책과 사업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고 노사관계나 노정관계 관련 업무 비중이 크게 줄었다.

실제 노동부 본부에 근무하는 실·국장 16명 중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조건에 대한 분쟁이나 철도노조 파업과 같은 집단적 노사갈등을 다루는 실·국장은 4명뿐이다. 노동부 핵심간부 중 노동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들 부서는 올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합법도급 판정’이나, 전교조에 대한 설립취소 통보 등으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노동부가 노동자의 친구는커녕 소통불능 부처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불통 이미지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조계종 스님들로부터 중재의 기술을 배워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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