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선고가 있은 지 6일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는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의 날에 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날에서 멀어져 가지 않고 판결 선고일에 멈춰 있다. 2013년 12월18일 오후 2시 나는 대법원 대법정에서 대법원장의 판결 선고를 듣고 있었다. 그날 대법정을 나와서도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결했어도 나는 부당하다고 수도 없이 인터뷰했다. 대법원 대법정을 나와서도 말했고 돌아와 사무실에서도 그랬다. 그날 대법원장은 법이 아니라 기업부담이 판결의 근거라는 판결문을 읽고 있었다. 법을 위반한 노사합의가 무효라고 법대로 판단하고서 그 노사합의에 반해 노동자가 소송하는 것은 일정한 경우 신의칙에 반해서 인정해줄 수가 없다고 판결했다. 노동자의 권리 주장에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이 기각하기 어려울 때면 등장하는 신의칙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이번 통상임금사건에서 대법원이 또다시 들고 나왔다. 그러니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결했대도 민주노총이 당연한 판결이라고 논평했대도 하나도 환영할 만하다고 나는 평가하지 못하겠다. 내가 언제 대법원을 이 나라에서 노동자권리를 보호해 줄 최후의 보루라고 칭송해서 대법원에 어떤 믿음을 줬던 것도 아니니 대법원이 신의칙을 내세워 내게 뭐라 할 일도 없을 테니 말하겠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또다시 법으로 권리를 선언해 줘야 할 것을 신의칙으로 노동자권리를 짓밟아버린 판결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자신이 말해 온 정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판결문에 썼다. 선고의 날 나는 이번 판결의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했어도 부당한 판결이다.

2. 밤새 전날 선고된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을 들여다보며 법률교육, 통상임금 판결해설과 대응에 관한 교안을 작성했다. 뉴스는 아침 배달된 신문까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판결했다고 앞으로 급여로 얼마를 더 받게 될 거라고 야단이었다. 판결문을 읽고 대법원이 낸 보도자료까지 읽고 나는 법기술자로서 법 논리적 일관성은 갖추고서 작성하려 한 대법관들의 노력을 통상임금법리 부분에서 읽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대법원은 소정근로를 근로일로 제멋대로 파악하고서 재직 중인 자에게만 지급한다는 것은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이 아니라며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판단을 하고 말았다. 그나마 통상임금법리 부분은 덩치 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 줬으니 그래 알겠다, 이게 우리 현실이라고 낙담하고 말았지만 노사합의 부분을 읽을 때는 판결문이 아니라 경제지 사설이라고 나는 분노했다. 대법관들은 법이 아닌 기업부담으로 사건을 재단해서 노골적으로 노동자권리를 빼앗는 짓을 하고 있었다. 신의칙을 내세워 노동자권리를 선언한 근로기준법 강행규정을 짓밟고 있었다. 법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나라의 정책을 판결문으로 쓰고 있었다. 기업부담을 줄여 줘야 한다고 기업을 위태롭게 하면 안 된다고 정기상여금은 법기술자로서 법 논리 때문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한 자신의 행위를 반성이라도 하는 양 기를 쓰고 어떻게 해서든 노동자가 청구하는 것은 막아 보겠다고 되지도 않는 신의칙을 내세워 법을 심판하고 있었다. 판결문에서 3분의 2 이상을 신의칙에 관해서 쓰고 있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의 날은 대한민국 판결의 역사에서 대법원이 신의칙으로 법을 짓밟은 날이라고 새겨질 것이다.

3. 이번 판결에서 신의칙은 도저히 법의 말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선고돼 버렸으니 변경되기 전까지는 어떤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지 노동자권리를 위해서라도 살펴봐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이번 판결에 관한 대법원 보도자료에서 신의칙 적용요건을 밝혔다. 우선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없으면 신의칙은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는데 대법원이 밝힌 그 적용 요건을 보자. 첫째, 신의칙은 정기상여금에만 적용된다(판결). 정기상여금이 아닌 다른 수당 등 임금항목은 제외하기로 노사합의하더라도 신의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보도자료). 둘째,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신뢰한 상태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인상 등 임금조건을 정했어야 한다(판결). 노사가 임금협상을 하면서 세부항목별이 아닌 임금총액을 기준으로 임금 등을 정하고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을 알았더라면 다른 조건 등을 변경해 종전 총액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도록 조정했을 경우에 인정된다(판결). 여기서 노사합의는 단체협약 등 명시적 합의 외에 묵시적 합의, 관행도 포함된다고 설명하고 있다(해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그 노사합의는 무효라고 선언됐으므로 이후에 한 노사합의에는 신의칙이 적용될 수 없다(해설). 따라서 이후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있어도 노동자는 이를 포함해서 청구해도 신의칙이 문제되지 않는다. 셋째, 이후 근로자가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추가 임금을 청구하는 경우 그로 인해 사용자에게 예측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떠안을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될 수 있다는 사정이 있어야 한다(판결). 따라서 추가적인 재정적 부담이 그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경우는 신의칙 적용이 불가하다(해설).

4. 그럼 이제 노동자는 어째야 할까. 첫째, 노사합의가 없는 사업장 노동자는 얼마든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청구하면 된다. 당장 오늘부터 이달 급여명세서에 포함해서 지급하라 하고, 3년 전 것까지 소급해서 다 내놓으라고 하면 된다. 사용자가 듣지 않으면 소장 제출하면 되겠다. 퇴직자는 퇴직금까지 있으니 청구금액이 더욱 많겠다. 노조 없어서 노사합의조차도 할 수 없었던 사업장이거나 노조가 있어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고 합의해 주지 않은 사업장이라면 노동자는 이렇게 사용자를 상대로 청구하면 된다. 둘째, 노사합의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사업장 노동자는 임금총액을 두고서 합의했던 것인지, 노조가 정기상여금을 포함시키라고 요구했었는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이라는 노동자의 청구가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 등을 살펴 신의칙 위배를 따져 봐야 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노사합의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해도 극히 예외적으로만 신의칙 위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과연 노사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알았더라도 알지 못해서 제외했던 임금총액 수준의 합의를 했다고 볼 사정이 있는지, 무엇보다도 노사합의에 반한 노동자의 청구가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정도에 이르는 정도인지 등 이상의 신의칙 적용 요건을 사용자가 주장하고 입증해야 한다.

5. 통상임금이 난리다. 노조마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된다고. 소송하는 사업장은 언제 판결 받게 될 거냐고 그렇지 않은 사업장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냐고 난리다. 이미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대법원이 공인해 줬으니 받아야 한다고 사업장마다 노조마다 통상임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라고 얼마를 더 받는다고 기업은 얼마가 더 부담이라고 언론은 보도했으니 대한민국 노동자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알게 돼버렸다. 이제 노동자들은 정기상여금이기만 하면 다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고 알고, 조합원들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해서 이달부터 잔업특근수당으로 급여명세서에 반영돼서 나오는 거냐고 노조에 묻고 있다. 겁나는 일이다. 정말 난리 났다. 내가 회장님이라면 겁나게 골치 아프다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회장님이 우리 사업장에선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아니다고 말했다간 뭔가 사단이 날 상황이 돼 버렸다. 사업장마다 정기상여금은 다르니 소송은 결과를 모른다. 일할도 논란이고 노사합의도 문제다. 그런데 이미 우리 노동자들에게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지급받아야 한다고 머리에 각인돼 버렸으니 그걸 막는 자는 밟힐 것 같은 상황이다. 노동자권리 쟁취를 위한 이런 기회가 이 나라 노동조합들에게 언제 또 있었던가. 이미 다 사용자단체·언론·정부의 호들갑으로 교육돼 버렸으니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고 구구절절 교육할 일도 없다. 노조가 사용자에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법정수당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사용자가 거부하면 조합원의 분노를 조직하면 된다. 사용자가 사소한 지급기준을 내세워 못준다고 하면 노동자의 분노는 거칠어질 상황이다. 이번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까지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은 온갖 사용자들의 단체를 중심으로 전력을 다했다. 그에 비하면 노조는 법원의 판결 선고를 기다리는 것 말고 한 일이 별로 없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대법관들조차 기업부담 고려가 법보다 앞세우는 판결의 지침으로 알고 판결한 거라고 읽어질 지경이다. 이런 조건에서 정기상여금을 두고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으니 이제 이 나라에서 노조가 정말 노동자권리를 위해 요구하고 나설 때이다.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고 하루가 지난 19일 이미 한국노총 금속노련은 산하노조에 '오늘부터는' 통상임금 산정시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도록 요구하라고 지침을 통보했다. 이건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총을 가릴 일도 아니고 산별과 기업을 따질 일도 아니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를 한 노조라도 당장 이번 달 급여부터 포함해서 지급하라고 사용자에 요구해서 조합원들이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합원들은 노사합의 한 노조가 없었더라면 법대로 당연히 이번 판결 선고 이후는 물론이고 이전 3년분까지도 소급해서 받을 수 있었다. 노조가 정기상여금을 제외하기로 사용자와 합의해서 조합원들의 임금권리를 침해했던 것이라고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노조를 비웃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 노동자들은 그 지급기준이 뭐냐고 묻지 않고 이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노조는 당장 조합원을 위해서 요구해서 확보해야 한다.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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