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대중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잘 속는다. 그리고 거짓말을 지속적으로 충분히 반복하면 언젠가는 믿게 된다.”

히틀러의 대중선동 전략인 이른바 빅 라이(Big Lie) 이론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짓말을 하라. 절대 잘못을 시인하지 말라. 다른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지 말라. 잘못됐다면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라고 구체적인 지침을 하달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는 누차 철도 민영화 안 한다고 발표했는데도 철도노조가 파업을 해서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파업 일주일 만에 나온 대통령의 발언치고는 너무나 ‘안타까운’ 거짓말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공공재이자 국가기간산업인 고속철도를 운영할 수서발 KTX ‘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철도노동자와 대다수 국민들은 더 이상 우리를 속이지 말라고 저항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의 투자액에 따라 그 이익을 배분하는 법인인 주식회사는 당연히 투자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영업행위를 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건설된 고속철도의 운영이익이 철도산업으로 재투자되지 못하고 투자자들의 이익으로 유출되는 것이 민영화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최근 언론을 통해 폭로된 올해 7월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의 밀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코레일은 수서발 KTX 분할로 인해 발생한 손실은 기존노선에 대한 요금인상으로 메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마저도 안 되면 지방노선은 축소되거나 폐지될 것입니다. 수서발 KTX가 수서 주민들만의 세금으로 건설된 것도 아니고 수서발 KTX 주식회사 주식소유자의 것은 더욱 아닌데, 혜택은 강남지역 주민들과 투자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손실은 고스란히 지역주민에게 전가되는 것이 민영화의 폐해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전형적인 민영화 방식인 것입니다.

공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시키는 것은 법으로 명시된 민영화 로드맵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조속한’ 민영화를 위해 1997년 제정된 ‘공기업의 경영구조 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이 그것입니다. 이 법 제2조에 규정한 민영화 대상 공기업을 법조문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담배인삼공사법폐지법률에 의하여 상법에 의한 주식회사로 전환된 한국담배인삼공사

2. 한국전기통신공사법폐지법률에 의하여 상법에 의한 주식회사로 전환된 한국전기통신공사

3. 한국가스공사법에 의하여 설립된 한국가스공사

4. 한국중공업주식회사

5. 인천국제공항공사법에 의하여 설립된 인천국제공항공사

6. 한국공항공사법에 의하여 설립된 한국공항공사



민영화 대상 공기업의 공통점은 모두 주식회사 전환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민영화에 돌입했다는 것입니다. 한국담배인삼공사·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중공업주식회사는 이미 완전 민영화됐고, 민영화된 KT와 두산그룹으로 헐값 매각된 한국중공업의 비극은 바로 주식회사 전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가스공사와 인천국제공항은 언제라도 민영화시킬 수 있는 ‘상시대기’ 상태입니다.

정부가 입만 열면 성공한 민영화 사례라고 강조하는 일본철도 분할 민영화는 나카소네 정부 시절인 87년 전국을 단일한 네트워크로 운영하고 있던 일본국유철도(국철)를 6개의 여객철도주식회사와 1개의 화물철도주식회사로 분할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신칸센을 보유하고 도쿄와 오사카를 거점으로 하는 본도의 3개 여객철도주식회사는 경영이 개선됐지만 홋카이도·큐슈·시코쿠를 거점으로 하는 3개 여객철도주식회사와 화물철도주식회사는 분할 민영화 26년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노선은 민영화돼 그 이익이 투자자들에게 유출되고 지방노선 회사에게는 국가가 계속 보조를 해야 하는 엉터리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상황이 이러함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논리적·법률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이 민영화와 무관하다고 지속적으로 ‘충분히’ 반복해서 강조만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언컨대 빅 라이(Big Lie)입니다.

20일로 철도노조 민영화 반대파업이 12일차를 맞이합니다. 그 누구도 이번 파업이 이렇게 완강하게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파업 배낭을 꽉 채운 철도노동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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