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시켜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이 안갯속을 걷고 있다. 올해 6월 여야가 정기국회에서 이를 처리하기로 공감대를 이뤘지만 최근 신계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한 뒤 연내 통과가 물 건너간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통상임금에 버금가는 핵폭탄으로 불리는 휴일근로수당 소송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주 40시간 법정근로에 1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주 52시간 상한제’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근로시간단축법 정기국회 처리, 왜 꼬였나

올해 6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는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근로시간단축 방안에 합의했다. 여야는 근기법상 근로시간 정의에서 '1주'를 '휴일을 포함한 7일'로 개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와 분리·산정한 탓에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현행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근로시간 정의를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김성태·이완영 새누리당 의원과 한정애 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근기법 개정안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표 참조>

여야는 도입시기를 놓고 이견을 보인 끝에 근기법 논의를 추후로 미뤘다. 그럼에도 올해 정기국회에서는 근기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근기법 개정에 미적거리던 고용노동부가 10월 열린 당정협의에서 근기법 개정안을 정기국회 중점처리법안에 포함시키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근로시간단축법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민주당에서 제동을 걸었다. 신계륜 환노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근로시간단축법은 이번 회기에 통과시키지 않고 논의를 더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신 위원장은 근로시간단축법이 시행됐을 때 부작용에 대한 검토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신 위원장의 발언은 민주당 내에서도 충분히 논의된 사항이 아니었다. 배경을 두고 갖가지 추측이 흘러나왔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 개정안 처리를 압박하기 위해 택한 입법전략이라는 관측부터 휴일특근을 하는 조합원이 많은 한 산별조직이 초과근로 축소에 따른 임금손실을 우려해 민주당에 법안 처리를 늦춰 달라고 물밑에서 요청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이런 가운데 확실한 것은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므로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을 모두 달라”는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의 임금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결정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법원, 노동부 행정해석 조목조목 비판

노동부는 현재까지 과거 대법원 판례(90다6545)에 근거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유지하고 있다. 휴일에 근무할 경우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부분만 휴일근로이면서 연장근로에 해당한다는 게 노동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지난해 11월 성남시 환경미화원 임금소송에서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잘못됐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노동부가 행정해석의 근거로 삼고 있는 대법원 판례에 대해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부분에 한해 중복할증을 청구한 사건에서 내린 판결일 뿐”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근기법에서 1주간의 근로시간을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1일 근로시간도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로써 연장근로 제한이 이중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실근로시간에는 실제 근로를 제공한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특히 "1주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유급휴일을 제외한다는 해석은 근로시간을 실근로시간으로 보는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에 반할 뿐 아니라 할증임금 제도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그동안의 잘못된 해석은 바뀌어야 할 대상에 불과하다"고 못 박았다.

대구고법도 올해 9월 산도브레이크 임금소송에서 "근로시간이 1주에 40시간을 넘은 경우 휴일에 한 근로는 휴일근무시간임과 동시에 초과근무시간에 해당한다"며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을 중첩해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의 판단은 현행법으로도 '주 52시간 상한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휴일근로가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다수 나오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탄력적 근무시간제 확대까지 패키지로 포함된 여당의 근기법 개정안을 놓고 주고받는 협상을 벌일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법 개정 논의가 잘못된 행정해석을 유지해 온 노동부에 면죄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단축법의 연내 처리를 촉구했다가 최근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노동계도 입장도 비슷하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내년부터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시키는 근로시간단축 방안이 전면 시행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환노위에 제출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법원 판례가 확정되면 충분히 가능하다”며 “시행시기를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노동시간 유연성을 높이는 탄력적 근무시간제 확대까지 들어 있는 누더기 근로시간단축법을 노동계가 동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경영계, 노동부도 행정해석 변경 압박받아

대법원이 연장근로에 휴일근로가 포함된다는 판결을 확정할 경우 노동부는 잘못된 행정해석을 고쳐야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 영향을 받는 근로자 규모’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주 52시간을 초과하면서 휴일에도 일하는 노동자는 64만7천명이다. 근기법이 적용되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834만1천명의 7.8%에 해당한다. 주 52시간을 초과해 휴일근무를 하는 노동자는 주로 제조업에 몰려 있다. 자동차제조업의 33.7%, 1차 금속제조업의 32.8%, 고무제품제조업의 21.9%, 섬유제조업의 21.2%가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근로시간단축을 위한 근기법 개정에 반발해 온 경영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근기법 개정으로 접근할 경우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인 시행 등 유예방안을 검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런데 대법원의 확정 판결과 행정해석 변경으로 이어진다면 파장을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법원 판례와 법 개정은 다르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근로자들이 휴일근로수당을 중첩 지급하라고 여기저기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개별 사업장에서 대응할 문제”라며 “법 개정은 강제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 “탄력적 근무시간 제외한 노동시간단축법 통과돼야”


경영계가 줄기차게 반대하고 있지만 주 52시간 상한제가 대세임은 부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법원 판결이 기존 판례를 재확인하게 된다면 노동부도 행정해석 변경을 미루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인가만 남는다.

김은기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노동부가 미흡한 행정해석을 바로잡으면 되지만 주 52시간 상한제를 법문으로 명확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근기법 개정 논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동계는 탄력적 근무시간제 같은 노동시간 유연화 장치를 빼고 적용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3조3교대 사업장은 주 56시간 근무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며 “연착륙을 위해 노사합의로 초과근로 한도를 한시적으로 늘리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이 줄면 임금손실 문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정부·여당에서도 탄력적 근무시간제와 근로시간계좌제 같은 조항은 별도로 논의하고, 근로시간 정의를 1주 7일로 개정하는 선에서 연내에 근기법 개정을 처리하자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공은 다시 정부로 넘어갔다. 사회적 갈등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제2의 통상임금 논쟁을 되풀이할 것인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생산적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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