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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기획] 전교조 단협 사라지면? ‘참교육 보증서’ 휴지 조각으로9개 지역 단협 핵심은 학생·학부모 권리보호와 교육개혁
   
▲ 고용노동부가 노조 아님 통보를 한 10월24일 전교조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정기훈 기자

#1.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황아무개(43) 교사와 그의 동료들은 11월3일 학생의 날을 앞두고 10월 하순께 계기수업을 진행했다. 계기수업은 교육과정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이슈나 사건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학교측에서 사전에 수업내용을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일부 교사의 수업내용도 문제 삼았다.

이른바 사전검열이었다. 계기수업이 학교현장에서 정착한 가운데 근래에 없던 일이었다. 알고 보니 서울시교육청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10월24일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고, 교육부가 각 시·도교육청에 전임자 복귀와 단협해지를 지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전교조 서울지부를 포함해 4개 교원노조가 2011년 7월 체결한 단체협약에는 “교사들의 학습지도안은 교사가 자율적으로 작성해 활용하고 별도로 (교장이) 결재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교사들의 수업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수업내용에 대한 사전검열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다. 황 교사는 “학교측이 계기수업 내용에 간섭한 것은 잠시 동안 단협 효력이 없어진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2.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자녀를 둔 박아무개(48)씨는 노동부가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하고, 법원이 효력집행정지 결정을 내린 소식을 접하면서 불안감을 느꼈다. 전교조 교사들의 영향력이 약해진다면 학부모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씨의 고민이다.

요즘은 예전보다 학교행정이 투명해지고 학교 주요 사업에 학부모들의 의견이 많이 수렴되는 편이다. 학교운영위원회가 활성화된 영향이 크지만 전교조 소속 교사들의 노력도 한몫했다는 게 박씨의 생각이다.

아이들 급식에 어떤 음식이 들어가는지, 학교가 발표한 예산은 제대로 사용되는지, 방과후 학교의 교육수준은 좋은지….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혹시라도 있을 교장의 전횡을 막으려면 교사들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교장선생님에게 힘이 쏠리기 시작하면 학교운영위원회가 잘 굴러가더라도 급식이나 예산 같은 문제는 제동을 걸기가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교원노조들과 서울시교육청의 단협에는 △학교급식위원회에 교원노조 추천인사 참여 △방과후 교육활동 활성화 △학교운영위원회의 민주적 운영 조항이 마련돼 있다. 박씨의 걱정이 기우는 아닌 셈이다.

‘노조 아님’의 진짜 문제는 ‘단협 아님’

10월24일 노동부가 전교조에 대해 노조 아님 통보를 한 뒤 가장 관심이 쏠린 것은 전교조 전임자들에 대한 조치나 사무실 퇴거 여부였다. 단협 효력상실이 학교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교원노조와 각 시·도 교육청이 체결하는 단협은 일반 기업체 단협과 차이가 있다. 교사들의 근로조건이나 처우개선, 노조활동 보장 못지않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학교운영 민주화나 학생복지, 학부모 부담 완화 같은 조항이다.

법원이 전교조에 대한 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를 인정하고, 교원 노사의 단협이 효력을 잃게 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박진보 전교조 정책국장은 “9개 교육청에서 체결된 단협의 핵심은 학생과 학부모 권리에 대한 내용과 교육개혁에 내용”이라며 “전교조가 노조 자격을 잃게 되면 전임자 같은 문제보다 단협 효력상실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교현장에서 단협의 실질적 수혜자인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교육운동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도 단협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의 김태정(45) 집행위원장은 “전교조가 교육청과 맺은 단협이 어떤 내용인지 잘 몰랐다”며 “최근 전교조 노조 아님 문제가 논란이 된 뒤에야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귀띔했다.

학생복지·인권부터 교육정책 개입까지

우리나라 17개 광역 시·도 교육청 중 교원노조와 단협을 체결한 곳은 서울·부산 등 9곳이다. 모두 전교조가 단독으로 체결하거나 전교조가 중심이 돼 합의한 지역들이다. 이 중 가장 최근인 올해 7월 체결된 부산교육청 단협을 보면 전체 8개 장 60개 조항 가운데 3개 장 15개 조항이 학생의 복지·인권과 직결된 내용들이다.

9개 지역 단협은 큰 차이가 없다. 교실의 냉·난방, 온수시설, 수질관리, 공기질 관리 등 학생들의 교육·위생 환경에 대한 규정은 기본이다. 전북도·강원도·전남도·경기도·부산시교육청 단협에서는 학생들의 학습준비물 예산을 학교재정으로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 주고, 학생들이 돈이 없어 수업에 차질을 빚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학교예산으로 학습준비물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교육부 지침이다. 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예산을 전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탓에 단협으로 못을 박아 놓은 것이다.

학급에 필요한 물품이나 행사진행비 등 학급운영비를 학교예산에서 사용하도록 한 조항은 9개 교육청 단협에 모두 명시돼 있다. 수련활동이나 운동회·현장체험학습·수학여행·교복구입과 관련해 학부모들에게 경비를 부담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최소화하는 조항도 단협에 포함돼 있다.

방과후 학교와 자율학습·보충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권 보장, 0시 수업(조기등교) 금지와 같은 ‘교육과정 정상화’에 대한 내용도 단협상 주요 조항으로 자리 잡고 있다.

9개 교육청 단협에서 모두 명시돼 있는 ‘노조와의 정책협의회나 노사협의회 운영’은 교원 노사 단협의 백미로 꼽힌다. 협의회를 통해 노사합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각종 교육정책에 교원노조들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의 독단적인 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유력한 장치다.

이런 조항들은 “단체교섭을 해야 교육개혁이 가능하다”는 전교조 출범의 취지를 잘 보여 준다. 교원 노사 단체교섭 내용을 ‘조합원의 임금·근무조건·후생복지 등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에만 국한시킨 교원노조의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내용들이다.

'강제 야자' 부활하나 … 이미 시작된 ‘단협 흔들기’

교원노조들이 교육청과 맺은 단협을 계속 유지할지 말지는 내년 초에 나올 법원의 결정에 달려 있다. 법원이 노동부의 손을 들어주면 그간 전교조가 쌓아 온 단협의 성과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학습준비물에 대한 학교예산 사용 조항처럼 학부모나 학생들의 재정부담 완화를 위한 조항은 효력을 잃어도 교육청이나 교장들이 쉽게 손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성호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은 “교복 공동구매와 같이 학부모 부담완화를 위한 조항은 이미 교육현장에 뿌리내린 만큼 악습으로 되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핵심 조항을 없던 것으로 되돌리려는 교육감·교장의 시도는 피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단협이 힘을 잃으면 그 피해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서울지역에서는 노동부가 전교조의 설립신고를 취소한 뒤 0교시 수업 금지, 방과후 학교 강제 금지 같은 조항을 폐지하려는 일부 학교장들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교육청 단협에는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학교운영비의 5%를 도서실 운영비로 책정하도록 한 조항이 있다. 최근 전교조 논란이 생기기 전에도 해당 조항을 지키지 않는 교장들이 적지 않았는데, 단협이 효력을 잃으면 교장들이 취할 행동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전망이다. 김성호 정책실장은 “함께 단협을 체결한 노조들이 있긴 하지만 전교조가 노조자격을 잃게 되면 교육감과 교장이 단협을 어겨도 견제할 세력이 사실상 없어진다”고 말했다.

올해 7월 부산시교육청과 전교조 부산지부가 체결한 단협은 2010년 교육부 지침으로 해지된 단협을 복원한 것이다. 단협이 해지된 기간 동안 학생 건강권 보장, 자율학습·보충수업 강제 금지 등의 원칙을 학교장들이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정한철 부산지부 정책실장은 “다시 단협이 효력을 잃으면 학생들을 위해 어렵사리 만든 조항이 휴지 조각이 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9개 교육청 단협에 모두 명시된 정책협의회와 인사자문위원회 운영 조항이 교육감·교장들의 집중공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조항은 단체교섭 과정에서도 교육청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바 있다. 교원노조와 교육정책을 협의하는 것에 대해 교육부나 교육청이 갖는 거부감은 크다.

인사자문위원회 조항은 2008년 4월15일 학교자율화 조치 발표 이후 크게 강화된 교장의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정한철 정책실장은 “영남지역은 학교장의 인사전횡이 심한 곳으로 손꼽힌다”며 “인사자문위원회를 무시하거나 무력화하려는 교장들의 시도가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14년 공든 탑 무너지나 … “현장활동, 진보교육감이 변수”

법원이 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반대의 경우 전교조 단협은 효력을 잃게 된다. 더구나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8개 교육청의 단협은 다른 교원노조 없이 전교조가 단독으로 체결한 것이다. 전교조의 자격취소 자체가 전체 교원 노사 단협의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박진보 전교조 정책국장은 “단협 내용은 참교육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교조의 14년 노력이 담긴 것”이라며 “법원이 판결을 잘못 내리면 하루아침에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은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단협이 있는 9개 지역 중 진보교육감 재임 시절에 단협을 체결한 곳은 강원·광주·경기·전남·전북·서울 등 6개 지역이다. 진보교육감일수록 단협을 체결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전교조가 노조자격을 잃어도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은 단협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진보교육감이 있는 곳에서 먼저 단협을 체결됐고, 나머지 3개 지역이 뒤를 이었다. 진보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의 단협이 그렇지 않은 곳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전교조 활동·단협 영향력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설사 전교조가 노조자격을 잃는다 해도 그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전교조가 꾸준히 현장활동을 하고 진보교육감이 자리를 지킨다면 교원 노사 단협의 실질적 영향력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협 유지, 관건은 현장 장악력과 영향력"

전교조의 노조자격과 단협 효력이 상실된다면 그 역할을 대신할 단체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는 게 중론이다.

우리나라의 양대 교원단체는 전교조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다. 두 단체 모두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과 교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교조는 규범적인 효력을 갖는 단협을 체결하는 반면 한국교총이 합의한 내용은 강제성이 떨어진다. 한국교총의 교섭권을 보장하고 있는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에는 “교육감이나 교육부 장관은 합의된 사항을 시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돼 있을 뿐이다.

전교조는 교원노조법에 따라 ‘조합원의 임금·근무조건·후생복지 등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에 관해 교섭한다. 이에 반해 한국교총은 교원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교원의 전문성 신장에 대해 교섭·협의를 한다. 한국교총이 전문직 단체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두 단체의 역할이 반대로 나타난다. 전교조 교섭내용은 교사들의 전문성 향상과 교육개혁에 대한 비중이 크지만 한국교총은 임금·근무조건·복지후생에 대한 교섭비중이 크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두 단체가 실제 집중하고 있는 활동을 보면 전교조가 자격을 잃는다고 해서 한국교총이 교육개혁 활동 등 그 역할을 대신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교조의 노조자격과 단협이 없어진다고 해서 교육개혁이나 학교민주화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09년부터 노조로 인정받지 못하는 전국공무원노조 사례를 살펴보자. 현재 공무원노조는 공식적으로 지방자치단체나 안전행정부와 단체교섭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다수 현장에서는 지자체와 공식·비공식 교섭을 하고 있다. 실체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체장 성향과 무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장 장악력이 높다는 방증이다.

이에 따라 전교조의 노조자격이 없어진다고 해서 단체교섭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노조의 교섭요구를 거부해도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되지 않을 뿐이다. 전교조가 현장 영향력과 장악력을 유지한다면 기존에 체결한 단협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태주 교수는 “전교조가 14년 동안 쌓아 온 연륜과 경험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며 “지속적인 현장활동을 한다면 진보교육감이 있는 곳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단협의 생명력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학태  ta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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