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전 민주노총
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일 경색정국 타개를 위한 여야 대표 간 ‘4인 회담’을 진행하는 시간에 감사원장·보건복지부 장관·검찰총장에 대한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불법 대선개입 특검 도입에 대해 "국회가 합의하면 존중하겠다"는 시정연설을 한 지 2주 만에 인사청문보고서도 채택되지 못한 국무위원 임명을 강행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여식에서 밝힌 대통령의 ‘헌법수호와 공공부문 개혁의지’였습니다.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에게 박 대통령은 “어떤 경우라도 헌법을 부인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 아주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게는 “그동안 쭉 쌓여 왔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공공부문부터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신임 검찰총장의 첫 번째 임무는 지난달 5일 국무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안을 헌법과 통상절차법에 명시된 국회비준권을 무시하고 기습처리한 헌법위반 사건에 대한 수사가 돼야 할 것입니다. 올해 5월22일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비준사항이라고 밝힌 GPA 개정안에 대해 왜 법제처는 돌연 ‘국회비준 사항 아님’을 결정했는지, 이 과정에서 청와대나 권력기관의 외압은 없었는지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헌법수호’를 위한 박 대통령의 하명을 제대로 받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가 헌법적 가치인 국회의 조약비준권을 위반하면서 든 유일한 근거는 법제처의 유권해석뿐입니다. 민주주의 핵심가치는 자유로운 선거와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상호 권력견제에 있습니다. 특히 입법부, 즉 법률제정권자로서 의회에 대한 존중은 법률에 의한 행정, 공정한 법 집행이라는 측면에서 행정부·사법부보다 우선되는 가치입니다. 이러한 입법부 권한을 행정부 한 부처의 해석으로 제약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입니다.

감사원장에게 주문한 공공부문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첫 번째 조치는 공공부문을 정권 전리품으로 사고하는 낙하산 인사 근절입니다. 주인 없는 공공부문이라서 방만한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주인인 시민과 노동자의 경영참가와 내부감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주인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그래서 잠시 ‘파티’만 하다 가는 낙하산들 때문에 공공부문이 망가지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주역인 경찰청장 출신이 대체 무슨 자격으로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됐는지, 서청원 의원에게 지역구를 양보한 전 국회의원이 왜 지역난방공사 사장으로 추천됐는지 신임 감사원장은 분명히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최근 한국마사회 회장과 한국도로공사 사장도 친박 정치인들로 임명됐고 박근혜 정권의 공기업 낙하산 비율은 이미 전임 이명박 정권을 앞서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 재직 당시 법인카드로 ‘파티’를 즐긴 문형표 복지부 장관 후보자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 막장도 이런 막장은 없을 듯합니다.

박 대통령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듯이 히틀러가 가장 즐겨 쓴 단어는 ‘평화’였습니다. 히틀러는 유럽정복 야욕에 가장 걸림돌이 될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평화공세로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영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폴란드를 침략함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됐습니다. “대중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에 쉽게 속아 넘어갈 것이다.” 히틀러는 나치즘의 바이블로 불리는 <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언명했습니다.

“4대강 수질개선 사업일 뿐 대운하는 아니다”는 이명박 대통령, 외자개방과 철도 분할이 “경쟁체제 도입일 뿐 민영화는 아니다”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에 대해 철도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검증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면 그들이 그렇게 비난했던 비효율의 온상 공기업을 또 하나 만든다는 것입니까.

9일 철도노조는 헌법이 부여한 노동 3권을 행사해서라도 철도주권 포기와 민영화를 막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과연 박 대통령은 어떤 논리로 철도노조를 ‘반헌법적 집단’으로 매도할까요. 민영화 반대도 북한의 지령으로 이뤄지는 종북이라고 할까요. 그러면 민영화를 반대하는 절대다수 시민들은 자동으로 종북시민이 되는 건가요. 철도노조가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을 해서 불법이라면 정부의 총액인건비‘정책’을 거부하는 임금인상 투쟁은 합법인가요. 공기업 임금정책 반대라서 불법인가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어 주마.” 히틀러의 복심 괴벨스가 파시즘을 한마디로 정리한 것입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전 민주노총 위원장)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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