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첫해 공공부문이 심상찮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계획’에서 이름만 달리해 박근혜 정부도 구조조정과 단체협약 개악이란 카드를 꺼내들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공공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부채와 방만경영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시사한 데 이어 과도한 복지의 원인이라며 단협까지 손보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다음달 초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이른바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공공부문 노동계는 "정권위기 돌파용으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선 안 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금융노조·공공노련·공공연맹·공공운수노조연맹·보건의료노조)는 노정 간 대화를 통해 공공기관 부채원인 진단과 해법을 마련하고 단협에 대한 정부개입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면 노정 간 정면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공대위 소속 노조들이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 입장을 들어 봤다.

단협 통제는 헌법이 보장한 교섭권 부정하는 것

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

마녀사냥 광풍이 불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부실·방만경영의 주범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새로운 마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공공기관의 높은 부채가 어떻게 생긴 것인가. 보금자리주택·4대강·자원개발 등 정부정책을 대신 수행하라고 떠넘겼고, 물가인상을 빌미로 공공요금을 지나치게 묶어 놨기 때문에 생긴 부채다.

'과도한 복지'라고 비판하는데 그렇다면 전부 '하향평준화'하는 게 옳다는 것인가. 단체협약은 기업이 존재하고 노조가 생기면서 오랜 기간 협의해 기업의 수준에 맞춰 복지제도나 노동조건을 만든 것이다. 그런 단협을 정부에서 평가란 이름으로 강제한다는 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그렇게 해서 과연 얼마나 비용절감이 될 것인지 궁금하다. 단협에 대한 통제는 헌법에 명시된 교섭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노동기구(ILO) 제소나 헌법소원도 생각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기관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기 전에 자신들이 공공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은 어떻게 했는지, 정부 정책은 왜 떠넘겼는지, 요금은 왜 그렇게 규제했는지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 공공부문에 모든 책임을 떠넘겨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온 몸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한 쪽을 압박함으로써 다른 한 쪽을 위안시키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공공부문 노조 최대 위기, 내년 총파업 불가피해

이인상
|공공연맹 위원장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국의 대처 전 수상보다 심하게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 MB 정권과는 또 다르다. 그래도 공공기관 선진화를 추진했던 MB 정권은 대화라도 했다. 하지만 현 정권은 일체 대화가 없다. 사전 예고도 없이 치고 나간다. 공공부문에 노조가 생긴 이래 최악의 상태가 될 것이다. 내년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엄청난 투쟁의 역사를 쓸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도 현재 단협에 문제가 있다면 개선할 의지가 있다. 우리의 단협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거나 국민 입장에서 합리적이지 못하다면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정부가 지적하는 것을 보면 전혀 다른 문제다.

예컨대 시간제 일자리 등 유럽의 제도를 도입한다고 얘기하면서, 유럽에서 일반화된 노조의 경영참가를 문제 삼고 있다. 노조가 기관의 경영상태를 알아야 대화를 하든, 양보를 하든 할 게 아닌가. 노조 간부를 인사발령 낼 때에 사전 협의하게 돼 있는 것은 노동기본권 문제다. 노조 간부를 마음대로 인사발령 내서 노조를 말살하겠다는 것인가.

정부가 밀어붙인다면 내년 공공부문 총파업은 불가피하다. 혹자는 노조가 투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하지만, 현 정권에서는 의미 없는 주장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양대 노총이 함께 돌파해야 한다. 양대 노총 지도부는 교섭력과 투쟁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국민이 공감하는 투쟁을 하면 된다.

코너 몰린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때리기 심각

이상무
공공운수노조·연맹
 위원장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공공기관을 때려대고 있다. 공공기관 방만경영·부채·과다한 복지까지 레퍼토리도 똑같다. 고장 난 레코드를 틀어 놓은 듯하다.

일부 사업장의 단협에 '자녀 학자금 지원'이 과도한 복지라고 비판한다. 공공기관은 임금가이드라인 때문에 임금인상을 억제시키는 대신 단협에 학자금 지원 조항을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 공공기관 직원 전체가 자녀 학자금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비용도 크지 않다.

재직 중 산재로 사망한 직원의 가족을 채용시 우대하는 조항도 '고용세습'이라고 비난하는데, 한 가정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 '세습'이 아니다. 국가에서도 국가유공자들에게 혜택을 줘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게끔 해주지 않나.

또 공기업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처럼 임금 생활자들의 소득이 높은 것을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각 기업체 사장들의 연봉이 수십억원씩 되는 것은 비판하지 않으면서 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아지는 것을 고액연봉이라고 비판하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등 정치적으로 열세에 몰린 박근혜 정부가 국민의 눈길을 돌리고 호감을 얻기 위해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전교조·종북몰이에 이어 지금의 공공기관 때리기까지 중구난방으로 칼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사고 낸 책임자가 공공기관 노동자에게 책임 전가

이봉희
금융노조
신용보증기금지부
위원장

2009년 MB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도 마찬가지고 정권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정부는 공기업을 공격한다. 이건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자동차를 벌주는 꼴이다. 사고를 낸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 공기업은 자동차, 운전자는 정부에서 보낸 임원이다. 자동차 사고가 나면 운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자동차에게 뭐라고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공기업의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공기업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정책기관으로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내려 보낸 임원이 결정하는 대로 했을 뿐이다.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한 죄밖에 없는 일반 직원에게 죄를 씌우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문화를 사기업이 아니라 공기업이 주도한다. 과거 주 5일제나 비정규직 대책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도 공기업에 먼저 도입하고 사기업에 확산하는 경로를 택한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복지 수준을 따라잡으려고 공기업에 먼저 적용하는 것이고, 이는 사기업의 가이드라인이 된다. 특히 복지 수준이 과도하다고 비난하는데, 그 '과도한'의 기준점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OECD 국가 공공기관에 비해 과도한 복지라거나 1천명 이상 민간기업과 비교하니 과도하다고 지적하면 수긍하겠다. 어떤 때는 OECD 얘기를 했다가 어떤 때는 중소기업과 비교하면서 과도하다고 한다. ‘국민정서법’에 호소해 여기에 어긋난다고 옥죄는 꼴이다. 우리사회에서 복지는 지향점이 분명하다. 분명한 방향은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전체적인 복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초법적 잣대로 공공기관 단협 무력화 위험하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부채와 방만경영, 단협을 문제 삼으며 모든 책임을 노조에 떠넘기기를 위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다음주에는 공공기관 정상화대책을 발표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공공기관에 대한 전쟁선포다.

잘못된 정책 수행으로 발생한 부채, 부실한 경영으로 발생한 부채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고, 공공정책 수행을 위해 불가피하게 발생한 이른바 ‘착한 부채, 착한 적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하는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노사가 신의 성실로 맺은 단협을 존중해야 하고 초법적이고 월권적인 잣대를 들이대 단협을 무력화하고 파기하려는 조치를 중단해야 한다. 대화와 신뢰,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한 모범적 노사관계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권위기 돌파용으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잘못을 되풀이할 경우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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