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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100문 100답] “공장 구내식당·편의점 계산대 … 노동자 곁에 있어야 할 책”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부르짖으며 세상을 떠난 지 43년이 지났다. 전태일은 불꽃으로 사그라져 전설이 됐지만 그가 목숨과 바꾸고자 했던 근로기준법은 긴 세월 속에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온통 한자투성이였던 근로기준법은 그새 한글로 바뀌었다. 청년 전태일이 대학생들을 찾아가 일일이 한자의 음과 뜻을 물어 가며 공부해야만 했던 근로기준법은 이제 초등학생만 돼도 누구나 막힘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게 됐다.

노동자 곁에 없는 근로기준법

그렇다면 이제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법이 된 것일까. 유감스럽게 여전히 노동법은 노동자에게 낯설고 불편한 존재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가 청소년을 고용한 919개 사업장을 일제 점검한 결과 85.9%가 노동법을 위반하고 있었다. 1970년대 ‘시다’로 불리던 어린 노동자들이 ‘알바’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지켜 주는 ‘현실의 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노동법을 배운 적이 없고 사회에 나와서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노동법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법이 됐다. 어쩌다 누가 노동법을 들여다본다 해도 법조문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 낸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노동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팔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생활 속 ‘실용서적’으로서 노동법 교재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수습노무사 시절 지도노무사로 인연을 맺었던 유성규 노무사가 한창현·박준우 노무사와 함께 <임금에 관한 모든 것, 임금 100문 100답>(매일노동뉴스·2만원·사진)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갑고 기뻤다. 과거 100문 100답을 시리즈를 펴낸 저자들과 편집인들의 역량이라면 결코 쉽지 않은 임금문제를 노동자의 언어로 쉽게 풀어낼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법인 참터에서 수습을 받던 시절 출장을 나가 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할 때나 사무실로 찾아온 노동자를 대할 때 항상 ‘눈높이 상담’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성규 노무사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임금 100문 100답>은 앞서 나온 <산업재해 100문 100답>을 읽어 볼 때와 마찬가지로 딱딱한 법률서적보다는 가벼운 ‘에세이집’을 본다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노동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고 또 앞으로 자신들에게 들이닥칠 것 같은 구체적 사례들을 중심으로 설명해 놨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제목처럼 ‘임금에 관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한 일부 주제들은 주의 깊게 읽지 않으면 의미가 금방 와 닿지 않을 만큼 어려운 내용도 있다. 하지만 100개의 질문은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현안과 부닥치고 해법을 고민한 사람이 아니면 놓치기 쉬운, 그러나 노동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식을 포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수많은 연구원·기자·디자이너들 중 자신들이 시간외 근로수당 적용의 예외가 인정되는 ‘재량근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실제로 경향신문에서 18년을 기자로 일한 필자도 노조위원장이 되고 나서야 왜 기자는 실제 근로시간이 아니라 매달 정액으로 시간외 근로수당이 책정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임금지급 유예·삭감·반납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서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한동안 혼란을 빚었던 경험도 있다. 얼마 전 추석 때는 고향의 친척 조카가 공사장 십장 밑에서 일하다 임금체불을 당했는데, 공사를 맡긴 건설업체에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도 봤다.

놓치기 쉬운,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사용자가 노동법을 위반하는 이유는 본인이 잘 몰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노동자가 노동법을 잘 모를 것이라는 얄팍한 판단도 밑바탕에 깔려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도서관이나 서고 깊은 곳에 꽂혀 있기보다 편의점 알바생들이 일하는 현금계산기 옆, 휴대폰 제조 협력업체의 구내식당이나 자판기 옆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퇴근 지하철 안 혹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한 장 두 장 가볍게 넘기면서 내용을 훑어보기만 해도 좋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 책을 평소 자주 일하는 공간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업장에서 노동법 위반 사례가 줄어들 것이다.

끝으로 “넌 수습이니까 3개월까지 최저임금의 90%만 줄 거야”라고 사장님이 말할 때 “전 계약기간이 1년 미만이니 최저임금 100% 다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아름답고 당당한 청년 알바를 상상해 본다.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버려야 했던, 아름답지만 너무나 비극적인 청년 전태일은 한 명이면 족하다.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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