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회 기자

 올해 4월 국회에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단계적으로 정년 60세가 적용된다. 법 시행까지 3년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년연장이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회장 박종희)가 6일 오후 서울 전국은행연합회 국제회의실에서 ‘정년 60세 시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추계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년연장 시대의 고용형태를 둘러싼 논쟁, 임금피크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을 둘러싼 쟁점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정년연장 햇수만큼 비정규직 고용 가능?

고령자법 개정안은 ‘정년 60세’를 노력조항이 아닌 강행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이 시행되면 나이를 이유로 한 해고는 부당해고가 된다. 정년을 60세 이하로 정한 기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의 효력은 무효가 된다.

그런데 고령자법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규정을 두고 있을 뿐 고용형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임금체계와 근속연수에 따른 호봉체계 등 기존의 근로조건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정년만 연장하는 방식 △정년을 연장하되 임금체계 개편을 동반하는 방식 △기존의 정년(예를 들어 55세)에 따라 근로계약을 종결한 뒤 퇴직금 등을 정산한 다음 60세까지 새로운 고용형태(촉탁직 등)와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가령 A라는 회사가 정년을 55세로 정하고 있다면, 2016년 이후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뒤 이들의 고용형태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법에 정해져 있지 않다”며 “정년이 연장된 시기의 고용형태를 노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열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년연장과 동시에 해당 근로자의 고용형태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해도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노동계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는 내용이다. 고용형태 전환을 둘러싼 노사갈등도 예상된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원장은 “퇴직금을 정산한 뒤 촉탁직으로 재고용하는 것을 정년연장이라고 볼 수 있느냐”며 “통상적으로 정년연장은 기존의 무기계약 고용계약을 연장하는 것이지, 비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해석은 정년연장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면 경영계는 이 같은 법해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동응 한국경총 전무는 “기존의 정년에서 고용관계를 종료한 후 60세까지는 매년 촉탁직의 형태로 고용관계를 연장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정년연장시 재고용, 파트타임근로 등 다양한 고용형태의 활용이 가능하다면 기업의 부담이 경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무는 이어 “개정된 고령자법이 정년연장을 위해 ‘임금체계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체계 이외의 근로조건의 변경도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금피크제 도입 피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 노조조직률이 10%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종전의 근로조건을 그대로 인정한 채 정년만 연장하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연장에 앞서 임금피크제 도입 등 근로조건 변경을 둘러싼 노사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가령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해 노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회사는 취업규칙 변경을 시도할 수 있다. 이때 전제조건은 취업규칙 변경사유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춰야 하고, 입증의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정년을 늘리면서 임금을 줄이는 방식’이라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고, 이른바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될 여지가 크다. 반면 단협 등으로 이미 정년 60세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이 개정법을 이유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시도할 경우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고,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후자의 경우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높아진다. 결국 임금체계 개편이 노사 일방에 유리한 방향으로 추진될 경우 노사관계의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년연장 시대에 걸맞은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 어느 쪽에도 추가 득실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사 간 힘의 관계에 따라 임금체계가 결정돼서는 안 되고, 오히려 노동자 생산성에 대한 ‘생애적 차원’의 보상을 고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안 연구위원은 “정년제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해진 연령에 이를 때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장기고용계약으로, 단기고용계약에 따른 사용자와 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관계가 생산성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며 “장기고용계약이 성립하려면 노동자의 생애생산성과 생애보수가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고용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입사 초기의 노동자에게는 생산성에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고, 이들이 나이가 들어 생산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때 급여를 급격하게 깎기보다는 젊은 시절의 기여도를 고려해 임금인상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임금상승곡선을 완만하게 조정하자는 제안이다.

“정년연장 노사갈등 전담기구 설치해야”

하지만 기업들이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하락의 폭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박호환 아주대 교수(경영학)는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년연장과 함께 반드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제로 “고령자들에게 별도의 직무를 부여해 그들에게 직무급을 적용할 경우 임금피크제와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기업들이 고용연장을 전제로 노동자들에게 근로조건의 저하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일본에서 도입됐다가 정리해고 수단으로 전락한 ‘변경해지고지제도’와 비슷하다. 근로조건 변동을 통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변경해지고지제도의 취지는 정년연장에 따른 조기퇴직 부작용을 줄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자르지 않을 테니 (불이익한) 근로조건 변경을 수용하라"는 식으로 변질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해 예견 가능한 일이다.

이에 따라 정년연장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분출할 경우를 대비해 정부가 분쟁조정 전담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노사관계가 전반적으로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60세 정년의 의무화가 노사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천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는 정년연장을 둘러싼 분쟁을 조정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이를 전담하는 전문기구를 설치·운영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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