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28일 박근혜 정부 들어 국무총리의 첫 대국민 담화가 발표됐다. 국무총리는 “모처럼의 경제회복 기미가 일부 기업의 파업조짐이나 사회 일각의 위법적인 행동 등으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며 “사회적 합의와 법 테두리를 벗어난 행위에 대해 엄정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새 정부의 첫 담화가 노동자에 대한 협박이라는 것도 기막히지만 ‘사회 일각의 위법적인 행동’이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 궁금하다.

담화문 발표 직전인 26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 5천여명이 국회 앞에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갖고 표준운임제 법제화·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직접운송의무제 폐지를 요구했다. 화물연대의 요구는 화물운송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비참한 노동조건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교통안전공단이 7월 화물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화물차의 운행시간은 1일 평균 9시간 이상이다. 4대 중 1대는 1일 평균 12시간 이상 운행하고 있다. 이는 도로에서 달리는 시간만을 조사한 것이다. 화물의 상하차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은 빠져 있다. 화물연대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한 달 314시간을 일한 컨테이너 화물노동자의 순수입은 고작 69만원이다. 시급으로 따지면 2천197원에 불과하다.

화물노동자들이 법정 최저임금 절반 수준의 살인적 보수를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벌화주·운송사를 정점으로 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이다. 재벌의 물류자회사-대형운송사-소형운송사 혹은 주선업체(알선업자)에서 화물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운임의 40% 이상이 중간에서 착취되고 있다.

이에 화물연대는 최저임금과 유사한 표준운임제 법제화를 요구해 왔다. 이명박 정부조차도 2008년 6월 법제화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까지도 강제력 없는 신고운임제 도입 방침만 밝히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법·제도는 살인적 노동착취의 또 다른 원인이다. 현행 법·제도는 화물노동자가 개인사업자라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중간착취와 노동재해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라는 화물노동자와 운수업체가 맺는 계약서는 노예계약서나 다름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갑(운수업체)은 을(화물노동자)에게 운송구간과 운송시간을 지정한다. 운송요율(보수)은 갑이 정하는 바에 따르며, 갑의 승인 없이 다른 업체의 화물을 운송하거나 차량을 운휴하는 것은 금지된다. 화물노동자가 운수업체에 종속적 지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수많은 조항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상조회를 포함해 어떠한 단체에도 가입할 수 없으며, 운송요율 조정을 요구하며 어떠한 집단행동도 할 수 없다는 반인권적 내용마저 버젓이 각서로 요구한다.

정부가 다단계 하도급 대책이라고 내놓은 직접운송의무제를 화물연대가 반대하는 이유도 역시 전근대적 화물운송업 구조 때문이다. 운송업체가 50% 이상의 화물을 직접운송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이때 ‘직접운송’은 화물차기사를 ‘직접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운송업체에 ‘직접 소속’된 화물차량을 의미한다. 따라서 화물 물량을 독과점하고 있는 대형운송업체들은 지입차주들에게 가뜩이나 낮은 운임을 더 낮추도록 강요하거나, 심지어 화물노동자들로 하여금 수천만원대의 번호판을 구입한 뒤 이를 상납하도록 하는 기형적 관행마저 생겨나고 있다. 화물차 한 대 없이, 화물운송노동자 한 명 고용하지 않고도, 화물노동자가 자기 돈으로 산 화물차를 운수업체가 지입하는 방식으로 화물운송업이 가능한 전근대적 구조를 없애지 않는 한 직접운송의무제는 운송업체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하는 역기능을 하게 된다.

복마전처럼 얽히고설킨 화물운송업의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화물운송을 실제 담당하는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안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2003년 5월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지난 10년간 화물노동자가 투쟁할 때마다 정부가 제도개선을 약속하고 자본이 운송료 인상에 합의했다. 그러나 번번이 부도수표로 귀결됐다. 38만 화물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으로서의 화물연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한, 화물노동자의 단체행동을 금지하고 장관이 강제로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한 위헌적 법·제도를 없애지 않는 한, 250만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노조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화물노동자의 비참하고 노예와 같은 처지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화물노동자 인권찾기 10만 서명운동’(unsu.jinbo.net)에 독자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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