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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기획-복지논쟁과 노동조합] "증세 없는 복지" 허무맹랑한 구호가 만들어 낸 기초연금 공수표시민사회 '보편적 복지증세' 제기 … 노동계 '복지논쟁 무풍지대'서 나와야
   
▲ 정기훈 기자

확실히 인기가 줄었다. 박근혜 대통령 얘기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이에서 아이돌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린 그이지만, 기초연금 논란의 여파가 크긴 컸다.

지난 25일 오후 '2013 서울 시니어페스티벌'이 열린 서울광장을 찾았다. 기초연금 논란에 대한 노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온도차가 느껴졌지만 “대통령이 잘했다”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김동복(72·가명) 할아버지가 언성을 높인다. “말로는 어르신 어르신 하더니만….” 자신 명의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현행 기초노령연금 수급대상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내놓은 기초연금도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데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국민하고 한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어기는 게 화가 나잖아. 어디 기초연금뿐이야. 전부 다 거짓부렁 사탕발림에 속았어.”

송철우(73·가명) 할아버지는 “이명박이가 정치를 못해서 그런 겨”라며 지난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4대강 관리비가 억수로 들어간다잖아. 부자들 세금도 깎아 주고…. 인사동 복지관에 가 봐. 하루에 노인네들이 1천명 넘게 온다고. 모이면 기초연금 얘기야. 준다고 했으면 다 줘야지 왜 안 주냐는 거지. 명박이 때문이야.”

송 할아버지는 이어 “박근혜야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하다 안 된 것이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팬심'은 여전했다.

정부에 대한 노인들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다. 노인이 가장 살기 힘든 나라가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1위다. 폐지를 주워다 파는 것 말고는 노후의 노동을 떠올리기 어려운 현실이다.

청바지에 야구모자를 쓴 멋쟁이 스타일 김규식(77) 할아버지.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로 구경왔다는 김 할아버지는 평소 소일 삼아 금연홍보 자원봉사를 하며 용돈을 번다고 했다. 자원봉사 활동비로 22만원, 자식이 주는 용돈 30만원, 국민연금 25만원, 기초노령연금 9만6천원을 받는다.

“혼자 살기는 괜찮아. 아픈 데가 없어서 병원비 따로 안 드는 게 천만다행이지.” 김 할아버지는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부모를 배신하지 않은 자녀, 지방자치단체의 노인일자리가 조화를 이룬 탓에 노후를 버틴다.

하지만 김 할아버지처럼 사는 노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현재 65세 인구 대비 국민연금 수급자 비율은 29%에 불과하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병들지만 공적연금의 보호망은 너무나 성글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박 대통령이 “65세 이상 어르신 모두에게 20만원을 드리겠다”고 약속했을 때 노인들이 그토록 환호한 이유다.


   
▲ 정기훈 기자

서울광장 앞 할아버지들 "기초연금? 거짓부렁에 속았어"

기초연금 논란은 ‘지급대상과 지급수준의 축소’로 요약된다. 지급대상이 당초 ‘65세 이상 노인 100%’에서 ‘소득 하위 70%’로 줄었다. 지급수준도 ‘20만원 일괄지급’에서 ‘국민연금과 연계한 차등지급’으로 바뀌었다.<상자기사 참조>

박 대통령이 기초연금 공약에 대해 말을 바꾼 이유는 한마디로 ‘여윳돈이 없어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세계경제의 침체와 맞물려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세수부족과 재전건전성의 고삐를 쥐어야 하는 현실에서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부자 노인까지 연금을 줄 정도로 나라살림이 넉넉하지 않다는 말로 공약 파기의 변을 대신한 셈이다.

이러한 해명은 국민 정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반기업 정서와 만나 “이건희 삼성 회장까지 20만원을 줘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며 ‘갑’으로 군림해 온 재벌에게까지 세금을 나눠 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건희 회장이 기초연금을 받지 말아야 될 이유는 없다. 그 역시 우리 사회의 일원이고, 엄청난 세금을 납부한 노인이기 때문이다.

2011년 서울시의 무상급식 논란 때에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다.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도 공짜밥을 줘야 하는가”였다. 당시 논쟁은 “부자 아이에게 공짜밥 안 돼”(선별적 복지)와 “가난한 아이에게 눈칫밥 안 돼”(보편적 복지)로 갈렸다. 2년여가 지난 지금 시민들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공공기관에 근무하며 세후 340만원의 월급을 받는 조아무개(41)씨는 3명의 자녀 중 2명이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조씨는 “무상급식이 아니었다면 우리 애들은 결식아동이 됐을 것”이라며 “무상급식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딸이 초등학교 때 무상급식을 경험했다는 간호사 김수진(42·가명)씨도 “무상급식으로 내지 않게 된 한 달 급식비용이 4만원이었는데, 1년치로 계산하면 내가 일하는 중소민간병원의 1년 임금인상분에 버금가는 액수였다”며 “태어나 처음으로 ‘투표하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월급명세서에 찍힌 세금이 아깝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다. 대기업 사무관리직으로 일하며 인센티브를 제외하고 500만원가량의 월급을 받는 임경민(36·가명)씨는 “국가가 아이들의 먹는 문제까지 일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고, 국가나 지자체는 저소득층 아동을 지원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손녀를 돌보며 집안살림을 챙기는 박숙자(67·가명) 할머니는 “정부 창고에 쌓아 둔 돈이 없다는데 굳이 부잣집 애들까지 무상급식을 줄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주장을 폈다. 월급이 세후 138만원이라 밝힌 대학교 청소용역 노동자 오명자(54·가명)씨 역시 “잘사는 사람에게 갈 혜택을 못 사는 사람에게 몰아서 줘야 한다”고 말했다.

무상급식에 찬성한 2명은 자녀를 통해 무상급식을 경험한 당사자다. 반대한 3명은 무상급식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복지제도를 직접 체험했느냐에 따라 입장이 갈린 것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무상급식에 반대한 응답자 3명 중 2명은 아예 소득이 없거나, 최저임금 노동자라는 점이다. 가난할수록 복지에 대한 욕구가 높을 것이라는 일반의 상식과는 거리가 있다.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기초교육학부)는 “한국인의 복지태도는 소득수준에 따라 분화되지 않으며 중간층이 저소득층보다 복지확대와 증세를 더 지지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지적된 바 있다”며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한국은 복지국가의 역사가 짧아 노동자들이 복지를 체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중앙 집중적인 노조나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진보정당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노동자들에게 객관적인 이익이 무엇인지 제시해 주는 기능, 계급이익을 위한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조정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 정기훈 기자

복지를 체험하기도 전에 민간보험에 익숙해진 사람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시켜 준다는 민간보험을 통해 생의 위협에 대처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실제 민간보험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명보험의 보험료 수입액은 한국 정부의 직접세 징수금액보다 많다. 국세청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06년 기준 직접세 세입은 62조8천억원, 생명보험 보험료 수입액은 66조4천억원이다.

무상급식을 지지했던 공공기관 노동자 조씨는 본인과 아내, 자녀 3명 앞으로 총 6개의 민간 생명보험을 들었다. 또 본인 앞으로 1개의 민간 연금보험을 들었다. 보험료로 한 달에 54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그는 “아파서 병원에 가면 국민건강보험으로는 보장이 안 되는 선택진료비나 비급여 항목의 비중이 너무 크다”며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가면 무조건 MRI를 찍게 하는데, 비용 부담 때문에 안 찍겠다고 하면 병원에서 그냥 돌려보낸다”고 건강보험 보장성의 한계를 지적했다.

연봉이 2천600만원이라고 밝힌 20대 여성사무직 고정민(27·가명)씨 역시 본인 앞으로 2개의 생명보험을 들어 놓은 상태다. 보험비는 한 달 14만원 정도. 고씨는 “건강보험은 당장 나에게 적용된다는 생각이 안 들고 세금을 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실비지급 혜택은 민간보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말했다.

민간보험에 의존하기는 고임금 노동자도 예외가 아니다. 연봉이 9천500만원이라고 밝힌 대공장 생산직 노동자 최창석(47·가명)씨는 민간 상해보험 2개와 암보험 2개, 연금보험 2개에 가입했다. 보험비로 한 달에 83만원이 빠져나간다. 그 역시 “큰 병에 대비하기 위해”, “노후가 불안해서” 민간보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월급의 상당액을 민간보험사에 지불하는 현실이 뜻하는 바는 단순하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삶의 위험에 대응하기에는 공적사회복지 기능이 미약하다는 뜻이다.

취재대상 중 소득수준이 가장 높았던 대기업 생산직 최씨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51시간. 그에게 “나라에서 제공하는 복지혜택이 늘면 연장근무나 특근시간을 줄여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나라의 복지정책이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특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그에게 복지는 “못 미더운 것”이다. 복지혜택을 기대하기 보다는 “벌 수 있을 때 더 벌자”는 현실을 택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복지국가 대신 기업복지 택한 노조

최씨가 다니는 공장에는 노조가 설립돼 있다. 노사관계 측면에서 해당 노조의 발언권은 꽤 큰 편이다. 정규직으로만 구성된 노조는 단체협상을 통해 국내 최고 수준의 기업복지를 획득해 왔다. 종종 언론의 비판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 대표적인 것이 ‘채용 세습’ 논란이다. 신규 채용시 정년퇴직자 등 조합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한 단협 조항을 놓고 두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용이나 복지에 대한 관심사가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다, 같은 공장 안에서도 비정규직에게는 최대한 파이를 덜 나눠 주려고 하는 기업별 노조운동의 관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2009년 발표한 논문 ‘왜 한국의 대기업은 복지국가 건설에 나서지 않는가’에서 파편화된 대기업 중심의 노사관계와 노조의 행위전략을 비판하고 있다. 양 교수는 “기업노조의 지도부가 이념적 지도에 따라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 보편주의적인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주창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계급정치 지향의 기업노조 리더십은 복지 소비의 경합성을 인지하고 있는 평노조원들로부터 불신임 받을 가능성이 크며, 이에 따라 지도부는 배제의 정도가 큰 복지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채용 세습 논란은 배제의 정도가 큰, 정규직 조합원끼리 파이를 나누기 위한 기업복지인 셈이다.

이처럼 공장 울타리 안에 머물려는 기업별 노조의 관행 뒤에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이아무개(44)씨는 해고 뒤 소득과 공적·민간 복지비용 지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려 달라는 취재요구에 “미안하지만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복직의 꿈을 접지 않고 일용직으로 일하는 그는 벌이가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4대 보험도 민간보험도 모두 남의 얘기가 됐다. 누구보다 복지혜택이 절실한 그에게 정작 사회복지를 발판으로 한 재기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절반 가량이 이씨처럼 하루아침에 삶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친 노동자다. 통계청의 ‘2013년 3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규모는 818만명(46.1%)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월 임금총액 기준 49.7%다. '100대 50'의 차별구조가 고착화하는 추세다.

이들에게는 패자부활전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같은 조사에서 비정규직의 국민연금·고용보험·건강보험 가입률은 각각 40%·43.9%·46.8%로 나타났다. 젊어서는 노동시장 안에서 차별을 당하고, 늙어서는 국민연금에서 이중차별을 당하는 것이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화물트럭 운전자 윤민식(45·가명)씨는 “생활비가 빠듯해 국민연금(임의가입)은 못 넣고 있고, 운전하면서 사고위험이 크다고 민간보험사들은 보험도 안 받아 준다”며 “없는 사람은 그저 죽으라고 떠미는 이런 나라에서 정말 살고 싶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 기초연금 공약이 공수표 된 이유

이처럼 노동자들의 현실은 복지국가라는 말을 꺼내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복지는 세금을 먹고 자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복지국가의 발전은 국가의 재정능력 구축에 달려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형용모순의 구호를 들고나왔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줄푸세’는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은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기초연금을 둘러싼 논란은 결국 증세 없는 복지가 공수표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이와 관련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내만복) 등 보편복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은 구체적인 증세방안으로 사회복지세 신설을 제안했다. 복지에만 쓰는 목적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저소득층에게는 세금을 걷지 않되, 중산층부터 고소득자까지 소득에 따라 세금을 누진적으로 부과하자는 내용이다. 오건호 내만복 공동운영위원장은 “소득 상위계층에게 징벌적으로 세금을 걷는 부자증세는 '복지는 모두의 것'이라는 복지국가 원리에도 맞지 않고, 그런 방식으로는 세수를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보편적인 복지증세에 중산층이 폭넓게 동참할 때, 부자들에게 ‘나도 낼 테니 너도 내라’는 압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제안은 아직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머물러 있다. 노동계에서는 이를 ‘노동자 양보론’으로 인식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증세보다는 정치싸움을 위한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취재를 위해 만난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는 어떤 나라냐고.

“개인의 인권과 선택이 존중되는 나라”(대기업 사무관리직 임씨)
“노동자들이 권리와 주장을 외칠 수 있는 나라”(화물차 운전자 윤씨)
“먹고사는 데 불편이 없고, 누구에게나 도전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공공기관 정규직 조씨)
“어려운 사람들을 먹고살게끔 해 주는 나라”(대학 청소용역노동자 오씨)
“개인을 소외시키지 않는 나라”(20대 여성 사무직 고씨)
“아플 때 돈 걱정 없고, 배움의 기회를 돈으로 사고팔지 않는 나라”(전업주부 정씨)
“유전무죄 무전유죄 없는 나라”(옥수동 박씨 할머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책임져 주는 나라”(간호사 김씨)
“해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자고, 배고프면 먹고, 여유가 생기면 가족과 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를 주는 나라”(대공장 생산직 최씨)

고용형태와 소득수준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비슷했다. 뒤처지는 사람 없이 누구나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원한다는 대답이다. 복지국가는 먼 데 있지 않다는 뜻이다. 세수가 부족해 대선공약을 뒤집으면서도 줄푸세를 고수하는 정부에 대응하는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복지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 먼저 팔을 걷어붙인 시민사회는 '보편적 복지증세'를 구호로 걸었다. 복지논쟁의 무풍지대에 머물러 온 노동계는 이들과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

구은회 기자
배혜정 기자
 

 
   
 

대국민 사기극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공약을 내걸었다. 2013년 기초노령연금법을 기초연금법으로 전환하고 도입 즉시 20만원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다. 전국의 어르신들은 열렬히 지지했다. 기초연금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법 제정안은 당초 공약과 거리가 멀었다. 지급대상은 65살 이상 노인 중 소득 상위 30%를 제외한 소득 하위 70%에 속하는 이들로 한정됐다. 지급수준도 ‘20만원 일괄지급’에서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지급’으로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수 부족을 이유로 들었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처음부터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할 생각이 없었다"며 "사기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시민단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 등의 재정추계치에 따르면 당초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정부가 추가로 마련해야 할 재정이 25조원에 이르지만,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공개한 공약이행 재정은 14조7천만원에 불과하다. 10조원 이상이 부족하다. 게다가 공약과 달리 공약집에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운영’이라는 문구를 삽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처음부터 국민연금과의 연계를 염두에 둔 공약을 구상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국민연금은 모든 가입자에게 균등하게 적용하는 ‘균등연금액’과 가입자 소득에 비례해 산출되는 ‘비례연금액’의 합으로 구성된다. 가령 월소득 200만원의 소득자가 20년 가입해 월 40만원의 연금액을 받는다면, 이는 균등연금액 20만원과 비례연금액 20만원으로 나눌 수 있다.

당초 공약대로라면 현재의 기초노령연금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되면 그만이지만, 내용이 바뀐 기초연금법 제정안은 기초노령연금 10만원에 국민연금 균등연금액을 합쳐 20만원을 맞춰 주겠다는 내용이다. 20만원을 초과하는 균등연금액은 감액되는데,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감액규모가 커지는 구조다. 국민연금 성실가입자를 역차별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 법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갈수록 연금액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현행 기초연금노령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A값)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소득과 물가상승률을 함께 반영한다. 이에 반해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은 물가만을 반영하고 있어 갈수록 실질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우려된다.<그래프 참조>


구은회 기자

 

 


 "기초연금 사과하려면 우리한테 해야죠"
연금행동·청년유니온·참여연대 공동주최 "청년, 연금을 말하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정책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어질수록 액수가 줄어드는 방식으로 설계되면서 '미래 노년세대'인 청년세대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참여연대 통인카페에서 국민연금 바로 세우기 국민행동과 청년유니온·참여연대가 마련한 "청년, 연금을 말하다" 간담회가 열렸다. 기초연금·국민연금을 둘러싼 청년세대의 다양한 고민을 들어본다는 취지였다.

물론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 사이의 참석자 10여명 중 기초연금·국민연금에 대해 '조금 안다'는 사람은 두어 명밖에 없어 보였다. 기초연금은 '나와는 너무 먼 얘기'로 들리고, 국민연금은 '월급에서 자동적으로 나가는 돈'으로 여기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국민연금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는 질문에 한 참석자는 "아무것도 안떠오른다"며 "꼬박꼬박 내고 있긴 한데 65세 이후 받는 돈이라고 하니까 남 일 같다"고 말했다. "국민연금하면 공무원이 떠오른다"고 답한 이도 있었다.

65세 이후 얼마의 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도 계산법이 복잡해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답변도 나왔다. 20대 여성 김나리(가명)씨는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 등에 대해 알고 싶어도 계산이 너무 복잡하다"며 "도대체 A값은 뭐고 B값은 뭐냐"고 되물었다. 그는 "어려운 계산법 때문에 사람들이 더 무관심하게 되는 것 같다"며 "국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안'에 대해서는 참석자 모두가 '반대'에 손을 들었다. 공약을 파기하면서 이유로 들었던 '미래세대 부담론'에 대해서는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잔디 참여연대 복지노동팀 간사는 "정부가 우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초연금 수혜자를 대폭 축소시켜 놨는데 그런다고 자식들의 부담이 사라지냐"며 "결국 사적영역(민간보험)으로 부모님을 봉양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정책으로 드러난 정부의 입장은 명확한 것 같아요. '니네 부모는 니네가 책임져. 억울하면 민간보험 들던가'라는 뜻 아닌가요? 취업조차 쉽지 않고 설령 취직을 해도 일자리 유지에 대한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노후 준비가 덜 된 부모세대의 부양의무까지 이중으로 지게 되는 거죠. 2030세대들이 분노하는 이유입니다."

청년유니온 회원 김형모(36)씨는 "이미 국민연금 자체만으로도 소득대체율이 점점 낮아져 젊은 세대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데,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기초연금까지 차등해서 지급한다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대상은 어르신들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박근혜 정부가 죽어도 증세는 못하겠다고 하니, 차라리 나이로 차등을 두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정부가 육아보조금을 12개월 미만 20만원, 24개월 미만 15만원, 그 이상은 10만원씩 지급하는 것처럼, 기초연금도 65~69세 12만원, 70~74세 16만원, 75세 이상은 20만원씩 차등지급하자는 김씨의 제안에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공감을 표시했다.

대학생 이영철(25)씨는 "국민연금에 대한 각종 불신을 해소해야 할 정부가 무책임한 정책으로 되레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국민의 불안감부터 해소해 달라"고 주문했다.

배혜정 기자



 

 

구은회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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