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은 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와 사용하는 사업주가 다른 고용형태다. 사내하청이나 용역·외주, 민간위탁 모두 간접고용에 속한다. 형식적인 사용자가 둘이다 보니 간접고용 노동자는 헷갈린다. 사용사업주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사실상 급여를 지급하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노동자들과는 맞부딪히지 않는다. 도급업체 노동자에게만 위험한 일을 시키고 산업재해 책임을 지지 않거나, 최저임금 수준인 급여를 올려 달라는 노조와 협상할 이유가 없다며 버틴다. 간접고용이 ‘치사하고, 전근대적인 고용’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가리지 않고 법규제를 피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이 동원된다.

이달 14일부터 시작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간접고용’이 주요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티브로드·마필관리사를 비롯해 반월·시화공단의 초단기 파견노동자까지, 그리고 대기업·공기업·중소영세기업 가릴 것 없이 불법파견이 판을 친다. <매일노동뉴스>가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눈물을 강요하는 실태를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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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1. 진화하는 사용자, 간접고용 활용 급증
2. 간접고용 규제방안 논의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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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를 만드는 A사 광주공장 포장반에 투입돼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엄아무개씨. 그는 평상시 A사 제품관리과에서 발급한 포장계획서에 따라 A사 정규직과 업무 구분 없이 제품선별과 수동그라인딩·포장 업무를 수행했다. 연장근무도 주말특근도 A사 정규직과 함께했다. 엄씨의 출퇴근 시간과 연장근로시간 같은 근태현황은 A사 재고반 주임이 관리했다. 엄씨는 A사 정규직과 함께 안전교육을 받았다.

문제는 월급봉투의 두께였다. 엄씨는 원청인 A사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았고, 하는 일도 원청 정규직과 같았다. 그런데 기본급과 정기상여금·안전수당·공정지원금은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부당한 차별이라고 느낀 엄씨는 법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2009년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시정 신청을 내는 것으로 시작된 엄씨의 법정다툼은 2011년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엄씨가 파견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됐다. 엄씨가 사내하청업체의 도급근로자로 판단될 경우 차별시정 신청이 각하되기 때문이다.

전남지노위는 2007년 4월 노동부와 법무부·검찰이 함께 마련한 ‘근로자 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에 따라 엄씨가 파견근로자인지 아닌지를 따졌다. 지침에 따르면 도급업체가 사업주로서 실체를 갖고 있는지, 엄씨에게 사업주로서 지휘·명령을 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살펴야 한다.

전남지노위는 엄씨를 고용한 도급업체가 채용과 해고 등의 결정권을 갖고 있고 독자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면서 사업을 운영했다는 점에 비춰 사업주로서의 실체가 인정된다고 봤다. 다만 엄씨가 A사 정규직과 업무 구분 없이 근무하고, A사가 엄씨의 근태를 관리한 점 등을 이유로 엄씨에게 지휘·명령권을 행사한 주체는 A사라고 판단했다. 엄씨가 파견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전남지노위는 도급업체를 상대로 차별시정 명령을 내렸다. 전남지노위의 판단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그대로 인정됐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엄씨가 노동위 판정을 근거로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낸 불법파견 진정사건에 대해 노동청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광주지검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혼재근무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A사가 도급근로자에게 지휘·명령을 했다고 볼 수 없다”, “A사가 도급근로자의 근태를 관리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이번에는 도급업체가 나섰다.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노동위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도급업체의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은 그 뒤로도 이어져 2011년 대법원이 노동위의 판단을 인정한 확정판결을 내림으로써 지루한 공방에 마침표가 찍혔다.

검찰을 제외한 모든 기관이 엄씨를 파견근로자로 보고, 엄씨가 A사 정규직에 비해 임금 등에 차별을 당해 왔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차별시정의 책임은 A사가 아닌 도급업체에 물었다. 도급업체를 향해 엄씨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중지하고, 차별적 처우로 발생한 금전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A사와 도급업체의 관계가 도급이 아니라 파견으로 인정된다 할지라도 임금 등의 차별시정 대상은 파견사업주인 도급업체의 몫이라고 봤다.(파견법 제34조1항 참조)

엄씨 사건의 반전은 바로 이 대목에서 시작된다. 엄씨는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도급업체로부터 금전보상을 받았을까. 결론부터 밝히면 그는 도급업체로부터 일체의 금전보상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했다.

제조업 불법파견 노동자의 차별시정 수난사

근로계약은 파견사업주(도급업체)와 맺고 업무지시는 사용사업주(원청)로부터 받는 간접고용의 일환인 파견근로자가 노동위에 차별시정 신청을 낼 경우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먼저 차별시정의 책임을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 중 누구에게 물을 것이냐 하는 문제다. 재정상황이 열악한 도급업체에게 책임을 묻게 되면 금전보상 등 구제를 받을 가능성은 현격하게 낮아진다. 통상 3년 정도 걸리는 소송기간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엄씨는 도급업체가 “회사사정이 어려워 금전보상을 해 줄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일체의 금전보상을 받지 못했다. 대신 사법기관으로부터 파견근로자임이 인정된 덕분에 원청인 A사에게 엄씨에 대한 고용의무가 발생했고, 엄씨는 A사로부터 그동안 미지급됐던 임금과 위로금 등을 받는 조건으로 퇴사했다. ‘사내하청 근로자 차별시정 진정사건’의 결말이다.

엄씨의 소송을 대리했던 이병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광주지사)는 “불법파견의 경우 차별시정 신청이 가능하게 돼 있는 현행 제도는 제도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노동자에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도급업체들의 재정 상황이 열악하고, 원청과의 도급계약이 폐지되면 폐업수순을 밟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노동자들은 어렵사리 소송에 이기고서도 실질적인 구제를 받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차별시정 제도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법적 구제의 어려움은 비단 차별시정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2월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받고도 ‘버티기’로 일관하는 현대자동차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현대차 본사가 불법파견 문제로 납부한 이행강제금은 35억5천700만원이다. 최병승씨 등 당사자를 구제하라는 노동위의 구제명령을 이행하는 대신 돈으로 때우겠다는 의도다. 이행강제금은 노동위 결정사항을 따르지 않는 사용자에게 이행을 강제하하는 수단으로 최대 4회까지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4회 납부를 하고 난 이후 명령을 따르지 않더라도 더 이상 처벌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불법파견 인정돼도 사용자 버티기에 속수무책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간접고용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내하도급근로자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법령 및 정책개선 권고’를 통해 “상시적인 업무에 대한 직접고용 원칙을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간접고용의 남용을 억제하고, 현행 노동관계법상 사용자 정의규정을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개정하라”고 노동부에 권고했다.

지난해 3월에는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원청을 상대로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 행사를 보장하는 내용의 법 개정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감독과 처벌을 주문했다.

대법원도 2010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관련 소송에서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원청업체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로 판단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일관되게 원청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구성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벌일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위장도급·불법파견 의혹을 폭로하고 노조를 조직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은 “노동조건 결정권한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쥐고 있는데, 지금 노동법 체계에서 교섭을 통해 요구할 길이 없다”며 “우리의 목소리가 원청에 닿을 수 있도록 통로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포괄적인 보호방안으로 현행 노조법 제2조의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조명받는 이유다.

국회 환노위에는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을 ‘노조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거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는 자’로 넓히자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노조활동을 이유로 조합원들이 소속된 도급·위임 그 밖의 계약을 해지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차원의 법안도 준비되고 있다. 은수미 의원실 관계자는 “을지로위 차원에서 하청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며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원청에 대해 하청노조가 교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간접고용 노동자 노조활동·교섭권 보장해야"

이달 현재 국회 환노위에는 간접고용을 규제하는 법률 제정안과 개정안 8건이 계류돼 있다.<표 참조>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골자로 한 사내하도급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내하도급법) 제정안을 제출한 상태다. 도급과 파견 외에 ‘사내하도급’이라는 제3의 고용형태를 인정하되,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원청 정규직과의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차별시정 제도가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구제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원청에 책임을 묻지 않는 방식으로 과연 권리구제가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은 산업 전반에 만연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자는 것”이라며 “사내하도급을 허용하면 무분별한 파견의 확산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파견법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른바 위장도급 형태로 파견법 적용을 피해 가려는 사례가 폭증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한편 국회 환노위 여야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을 포함한 간접고용 관련 법안들이 올해 정기국회에서 다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야당 관계자는 “11월 국회에서는 전교조 문제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고, 정리해고 요건강화를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발이 묶인 상태”라며 “하반기 국회에서 간접고용 관련 법안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여당 관계자도 “사내하도급법은 19대 국회 초기에 대선을 앞두고 사내하도급 문제가 이슈가 되자 만들어진 법안”이라며 “간접고용 문제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사내하도급법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고 귀띔했다.

노동계는 현행 법률만 엄격하게 적용해도 간접고용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파견과 도급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현행법 체계에서 정부가 불법파견에 대한 엄단의지를 보인다면 간접고용 문제를 시정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그러나 “노동을 최하의 가치로 여기고, 노동문제의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려는 박근혜 정부와 노동부에게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구은회 기자
제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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