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조합원들이 결국 해고자들을 안고 가는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노조사무실은 물론 대정부 교섭권까지 보장받지 못하면서 일상적인 노조활동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이 전교조 법외노조 추진에 반발해 대정부 투쟁을 선언함에 따라 노정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관련법 개정이나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등 제도개선 논쟁도 뒤따를 전망이다.



◇노조활동 위축 감수=전교조가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현재의 규약을 유지해 해고자들을 조합원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20일 전교조에 따르면 지난 16~18일 해고자 배제 규약개정 여부를 묻는 조합원 총투표에 앞서 진행된 각 지역지부·학교별 분회 토론회는 상당한 혼란 속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역지부장은 “한 분회장이 규약개정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서면 또 다른 분회장은 찬성에서 반대로 입장을 바꾸고, 앞서 규약개정 찬성으로 생각을 바꾼 분회장은 다시 반대로 돌아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조합원 총투표에서 규약개정 거부의사를 밝힌 조합원들이 68.59%로 적지 않은 비율이지만 현장에서의 고민은 매우 컸음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가 23일 이후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규정하면 전교조의 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정부 교섭에서 유지했던 노조측 교섭대표 지위는 사라진다.

2009년 법외노조가 된 전국공무원노조의 처지와 비교해도 훨씬 불리하다. 노조통합 직후 ‘노조 아님’ 통보를 받은 공무원노조는 통합 이전의 조직이었던 민주공무원노조·법원공무원노조의 법적지위가 살아 있어 교섭권을 일부 확보하고 있다.

전교조 소속으로 76명에 이르는 전임자도 각 학교장이 무급휴직을 철회하면 곧바로 현장에 복귀해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았던 본조와 16개 지역지부 사무실 운영도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전교조 조합원들은 법외노조의 길을 택했다. 정부 요구대로 규약을 바꾸게 되면 89년 설립 이후 비합법 기간 10년을 포함해 24년간 유지한 노조활동의 명분과 자주성이 통째로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들은 특히 규약을 시정하더라도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강경대응 방침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교조 관계자는 “규약개정 수용과 반대를 오가는 토론 과정에서 ‘이번에 비켜서도 칼날이 계속 들어올 것’이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교원노조법·ILO 협약 논란=23일 이후 노동부가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하게 되면 노정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노총은 전교조 법외노조화 추진에 반발해 다음달 10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시작으로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한 상태다.

현직 교원(교사)이 아닌 자의 교원노조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을 개정하라는 요구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는 관련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다.

전교조가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를 하게 되면 한국 정부의 국제노동기준 준수 여부에 대한 논쟁이 불가피하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설립신고 문제가 잇따라 터지면서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ILO 핵심협약인 87호와 98호를 비준하지 않아 현행 교원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상 문제조항이 생겨난 것으로 보고 있다.

87호 협약(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과 98호 협약(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 협약은 △모든 노동자가 차별 없이 자주적으로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 △노조활동에 따른 차별 금지 △자발적인 단체교섭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ILO 회원국 의무사항인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것이 전교조·공무원노조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며 “한국 정부에 책임을 묻고 조속히 비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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