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6일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마필관리사 산재문제 및 고용구조 개선을 위한 토론회. 정기훈 기자

2011년 7월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냉매가스 유출사고, 올해 3월과 5월에 각각 발생한 대림산업 여수공장 폭발사고와 현대제철 당진공장 아르곤 가스누출사고…. 최근 2년간 일어난 중대재해 사건들이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사망자가 모두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주로 위험하거나 힘든 일에 하청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산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산재를 당한 뒤에도 문제다. 간접고용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책임을 물을 만한 사용자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 산재가 발생하면 원청업체들은 책임공방에서 쉽사리 벗어난다. 영세한 하청업체들은 법적·경제적 책임을 질 능력이 없다. 최악의 경우 하청노동자가 부담을 떠안거나 산재 사실 자체가 은폐된다. <매일노동뉴스>가 제조·건설·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산재 실태를 점검했다.<편집자>

부산경남경마공원 마필관리사로 7년을 일했던 박아무개씨. 2011년 11월 서른넷 젊은 나이에 경주 보문단지 한 모텔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자주 말에서 떨어지고 말굽에 차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통을 끝내기 위해 그가 택한 방식은 세상과의 이별이었다. 박씨는 유서에서 “한 달에 최대 12번 당직을 서고 말을 타다 떨어져 골절상을 입고 뇌진탕에 걸렸는데도 해고위험 때문에 제대로 치료도 못했다”고 호소했다.

공기업인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서울·부산경남·제주경마공원. 마필관리사들은 이곳을 '산재공화국' 혹은 '전쟁터'로 부른다. 최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간 산재로 처리된 재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마필관리사들의 연간 재해율은 15~16%에 달한다. 우리나라 평균 재해율(0.7%)의 20배를 웃돈다. 공상 처리되거나 미보고 사고를 합치면 재해율이 34%를 넘을 것으로 연구소는 추산했다.

워낙 사고가 빈번하다 보니 당장 뼈가 부러지거나 장기손상을 입지 않는 한 자가치료를 하고, 뒤늦게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다.

목숨을 끊은 박씨가 일했던 부산경남경마공원의 경우 조교사와 마필관리사가 개별적으로 고용을 맺고 있다. 한국마사회에 고용된 노동자에 불과한 조교사가 마필관리사들의 산재처리를 달가워할 리 없다. 책임지기도 힘들다. 결국 산재에 대한 책임은 마필관리사 스스로 지거나 은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건설업계, 원-하청 ‘산재 폭탄 돌리기’

4~5단계에 걸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고착화된 건설업계에서는 산재 책임 떠넘기기가 ‘폭탄 돌리기’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말 울산시 남구 여천동 삼성정밀화학 염소 생산시설 증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차아무개(46)씨는 60킬로그램의 철근을 밧줄에 묶어 잡아당기던 중 어깨 인대가 끊어졌다.

전치 6개월의 부상을 당한 차씨는 자신을 고용한 전문건설업체에 산재처리를 요청했다. 전문건설업체는 “원청에 알아보라”고 했다. 차씨는 시행사를 찾아가 문의했다. 이번에는 “산재처리는 다른 시행사인 삼성에버랜드가 맡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와 함께 수차례 삼성에버랜드의 문을 두드렸다. 만남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차씨는 올해 2월 근로복지공단을 찾은 뒤에야 업무상질병으로 산재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차씨는 “원청과 하청을 오가면서 시간만 보내는 사이 건강상태만 악화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제적 부담을 피하려는 원청과 하청의 폭탄 돌리기에 애꿎은 건설노동자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다쳤지만 다친 게 아니다? 산재은폐 '심각'

산재 발생이 하청업체에 직접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이광주 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 기획국장은 “공공공사 발주시 정부가 건설사의 산재발생률을 주요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 지표로 활용하고 있어 건설사들이 산재다 싶으면 일단 피할 궁리부터 찾는다”고 지적했다.

계약상 불이익을 우려한 하청업체가 산재를 감추는 사례는 공공부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용역업체와 맺은 위탁용역 서비스수준협약(SLA)을 통해 산재사고 발생시 평가점수에서 감점처리를 한다. SLA 평가점수에 따라 공사가 용역업체에 분기별로 주는 기성금의 액수가 달라진다.

인천공항 청소노동자인 50대 후반의 임영순(가명)씨는 올해 3월 화장실 청소를 하다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턱골절상을 입었다. 업체 관계자는 SLA 평가점수를 이유로 임씨에게 산재처리가 아닌 공상처리를 요구했다. 자신과 동료들의 인건비가 깎일 것을 우려한 임씨는 공상처리에 합의했다.

그런데 업체는 막상 임씨가 치료비를 청구하자 “치료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며 전액 보상을 거부했다. 임씨는 치료비 100만원 지급에만 합의해야 했다.

건설업과 함께 하청노동자의 산재사고가 빈번한 것으로 꼽히는 조선업계의 경우 하청노동자의 산재 사망사고가 원청노동자보다 훨씬 많은 데다, 사고가 은폐되고 있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되기도 했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2001~2009년 조선산업 산재사망사고 만인율’을 조사한 결과 원청은 0.49인 반면 사내하청은 1.72로 세 배 이상 높았다. 산재사망사고 만인율은 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수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 원청노동자가 산재로 한 명이 숨질 때 하청 노동자는 세 명이 죽는다는 뜻이다. 사내하청 사망사고 만인율은 2002년 사내하청(1.25)이 원청(1.30)보다 낮았는데, 이후 역전돼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같은 기간 조선업계 업무재해율은 오히려 원청이 하청보다 높았다. 그런데도 사망만인율이 원청노동자들보다 하청노동자들이 높다는 사실은 하청업체들이 산재보고 건수를 낮추거나 은폐했기 때문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산재발생시 하청업체에 대해 '3진 아웃제'를 실시하는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 관행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잇단 중대재해, 노동부 뒤늦게 나섰지만…

하청노동자들에게 산재가 집중되는 이유는 원청이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하기 때문이다. 2007년 안전보건공단 조사에 따르면 원청 관리자들이 '하도급을 주는 이유'로 가장 많이 선택한 답변은 “유해위험 작업이기 때문”(40.8%)이었다.

지난해와 올해 산재사고로 하청노동자의 사망이 집중적으로 발생하자 정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올해 6월에는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노동부는 개정안에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작업의 유해성과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위반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청업체의 산안법 위반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원청업체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담았다. 8월에는 산안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유해·위험 작업에 대한 도급 인가범위를 기존 5명 이상 사업장에서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했다.

노동부는 내년 시행을 목표로 원청업체가 산재예방 관련법령을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산안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청업체 재해율을 원청업체 재해율에 합산·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죽음의 외주화, 솜방망이 처벌 바꿔야”

하지만 위험업무가 하청업체에 떠넘겨지는 산업구조와 고질화된 산재은폐를 바로잡지 않으면 백 약이 무효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산재예방을 위해 원·하청 재해율을 합산해 관리하겠다는 방안은 긍정적”이라면서도 “현재 80~90%의 산재가 은폐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정부 대책은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했다. 예컨대 사고로 병원치료를 받을 때 사고장소와 내용을 기록하고, 산재를 신고하도록 시스템을 바꿔 산재은폐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잇따라 터진 중대재해를 보면 원청업체가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그나마 원청업체가 처벌을 받더라도 실무자급에 제한되는 것이 보통이다.

대림산업은 올해 17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폭발사고를 냈다. 그런데 관련 기소자 11명(하청업체 유한기술 직원 3명 포함) 모두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지난달 3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대림산업이) 오랫동안 석유화학 발전에 봉사한 점을 참작했다”는 양형이유를 밝혔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국장은 “최근 노동부 대책을 보면 산재예방을 위한 원청의 관리·감독 책임은 강화하고 있지만 실제 사고가 터졌을 경우 원청의 책임강화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이어 “하청업체의 법 위반이 발견되거나 실제 사고가 났을 때 원청도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학태·김미영·배혜정·양우람 기자
 

정부 대책 실효성 거두려면 "하청노동자 참여 보장해야"

올해 대림산업과 현대제철에서 잇따라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고용노동부 법 개정 추진과 정치권의 입법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청노동자들의 산재예방 또는 산재사고 조사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 각종 대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방안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는 사업주가 산재발생 보고를 위해 산업재해조사표를 작성할 때 노동자 대표의 확인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건설업에서는 이를 생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발생한 대림산업 여수산단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의 노조가입률이 비교적 높은 편인데도 사고조사에 참여할 수 없다.

노동자가 안전보건 예방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는 직접고용된 노동자 위주로 설계돼 있고, 1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된다.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은 참여할 수 없다. 산재사고가 많으면서 사업장 이동이 잦은 건설노동자 입장에서는 제도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하청노동자들이 산재예방이나 사고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면 정부가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놓아도 서류상 대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며 “근로감독관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을 산재예방이나 사고조사에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김학태 기자

 

'빨간불' 켜진 철강업종 안전보건실태
자동차·조선보다 원청 책임성 크게 떨어져

올해 5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아르곤가스 누출사고로 하청노동자 5명이 사망하면서 철강업종 하청노동자의 안전보건 실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철강업종 하청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실태가 자동차업종이나 조선업종보다 열악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전비연)가 3~4월 자동차·조선·철강업종의 47개 사내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원·하청 노동자가 함께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업체는 자동차업종이 25곳 중 17곳, 조선업종이 12곳 중 7곳이었다. 반면에 철강업종(9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안전교육 주체를 보면 조선업종은 조사에 답한 6개 업체 중 5곳이 원청 소속 안전관리담당 직원에게 교육을 받았지만, 철강업종은 8개 업체 모두 하청직원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안전점검을 실시할 때에도 철강업종은 원·하청이 공동으로 하는 경우가 적었다. 자동차는 23곳 중 9곳, 조선은 12곳 중 7곳에서 원·하청이 함께 안전점검을 했지만, 철강업종은 10곳 중 2곳에 불과했다. 제조업 중에서도 조선업과 철강업의 중대재해 발생률이 높은데, 안전교육부터 점검에 이르기까지 철강업종 원청의 책임성이 조선업종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산재처리 여부를 답변한 철강업종 하청업체 7곳 중 산재사고를 보고하고 산재를 처리한다는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반면에 “산재 보고를 하지 않고 자기 비용으로 처리한다”고 답한 기업은 5곳이나 됐다. 자동차(18곳 중 2곳)·조선(9곳 중 2곳)보다 산재은폐율이 높은 것이다.

오민규 전비연 정책위원은 "조선업종 원청이 철강업종 원청보다 하청노동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아니다"며 "조선업종에서 전체 기능직 중 하청인력이 68.5%나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어쩔수 없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오 위원은 이어 “철강업종은 원·하청업체의 산재예방 인식이 떨어지는 데다 하청노조의 역사도 짧아 안전보건실태가 열악한 것”이라며 “정부의 감독과 사용주 책임을 강화하는 한편 원청노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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