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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이 돼 버린 '기초연금'
무상시리즈가 환영받던 시절의 일이다. 무상급식에서 무상보육·무상교육·무상의료까지, 깃발만 흔들면 민심이 결집했다. 국민은 그 깃발만 보고 성원을 보냈다. 무상복지 혜택을 누리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이런 열망에 부응하려는 급진적 대안도 쏟아졌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기본소득'이었다.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령처럼 떠돌았던 공산당선언에 나올 법한 기본소득이라는 대안은 한동안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21세기에 다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된 자본주의 위기와 대안 부재가 혼령(기본소득)을 다시 불러낸 것이다.

세간의 평가는 냉정했다.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몽상에서 현실로 뛰쳐나와 실현 가능한 대안이 됐다. 비록 제한된 형태이긴 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선거 공약에 반영됐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기초연금이 그 예다. 박근혜 후보는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한다고 약속했다. 적어도 65세 이상 노인들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무상시리즈의 확대버전이었다. 역사상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인 60대 이상 노인세대는 박근혜 후보에게 사실상 몰표를 줬다.

그랬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7개월 만에 약속을 저버렸다. 기초연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차별연금·사기연금 방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26일 정부가 발표한 기초연금 최종안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기준 상위 30%를 제외한 70%에게 매달 10만~20만원씩 차등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등지급 기준은 국민연금 수령액과 연계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일정수준에 이르면 기초연금 수령액이 깎이는 구조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1년이 넘으면 1만원씩 깎이며, 20년에 이르면 기초연금은 10만원만 지급된다. 이러니 차별연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초노령연금법에는 2028년까지 국민연금법에 따른 금액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인상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2028년에는 기초노령연금 수령액이 자동적으로 20만원으로 인상된다. 50세 이상 연금 가입자는 2028년에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정부 방침대로 하면 50세 이상 가입자는 20만원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을 성실히 납부했는데도 기초연금을 적게 받는 역차별이 발생한다. 미래세대는 연금납부 부담만 질 뿐 그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정부안은 공적연금의 근간인 보편성을 망각하는 것이자 신뢰 또한 무너뜨리는 것이다. 공적연금에 매달 납입해 손해 보느니 민간연금보험으로 갈아타는 이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공약 파기도, 후퇴도 아니라고 못 박는다. 임기 중에 공약을 단계적으로 완료하겠다고 강변한다. 이러니 그 흔한 대국민 기자회견도 안 했다. 이날 열린 국무회의 말미에 "어르신 모두에게 못 드려 죄송하다"고 짧게 사과했을 뿐이다. 원칙과 신뢰의 아이콘인 박 대통령이 거짓말과 사기로 얼룩진 맨얼굴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여의도표 국회정치와 자신은 다르다고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3%를 공적연금으로 지출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0.9%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 공약대로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해도 소요되는 재원은 GDP 대비 1% 정도밖에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67%에 달하지만 공적연금에 의한 지원은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다. 기초연금 공약이 후퇴될 이유가 없다. 정부는 기초연금을 축소하면서 재원부족을 호소하는데 이 또한 설득력이 거의 없다. 재원이 부족하다면 부자감세를 중단하거나 증세를 하면 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과 정부는 되레 뒷걸음질했다. 이러니 복지공약이 줄줄이 후퇴하는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은 오로지 공안통치에서만 카리스마를 보인다. 야당과의 대화에서만 강한 여성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복지를 섬세하게 챙기겠다고 약속한 박 대통령의 유일한 강점은 이젠 사라졌다. 무상시리즈는 이제 흘러간 옛 이야기로 치부됐다. 박 대통령에게 무상시리즈는 찬밥 신세다. 현실 속으로 뛰쳐나온 기초연금은 이제 몽상에서나 가능한 대안이 됐다. 기본소득도 역사책에나 등장하는 급진적 정책으로 남게 됐다. 적어도 박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는….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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